02.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이야기.
삿포로 2일 차.
오늘은 아이누족 민족 역사박물관에 간다.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하루 일정을 통으로 비웠다.
아이누족 역사박물관은 [시라오이] 역에 있는데, 삿포로역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시라오이]
아이누족 언어인데 [넓게 펼쳐진 물줄기가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역 이름이 아예 아이누족 언어라고?
이 원초적이고 날 것의 단어가 나를 너무 흥분시켰다.
화요일 아침 삿포로역.
출근하는 인파가 만들어내는 건조하고 탁한 공기 사이.색을 달리하고 있는 나는. 여유롭게 그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관광지에서 보지 못한 실제 삶을 사는 현지인들의 굳은 표정은 한국과 다를 게 없다. 혼자 여행 온 한국 여자가 티켓표가 읽히지 않아 쩔쩔매고 있어도 굳이 내 알 바 아닌 것이다.
1시간 거린데.. 왔다 갔다 기차비 7만 원.
대한민국 교통비 진짜 만세.
호쿠토 열차 지정석.
열차는 금방 찼다. 신기한 건 러시아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 열차 내 방송도 러시아어로 따로 나왔는데 알고 보니 러시아와 일본이 아이누족을 두고 영토분쟁을 하고 있다고. 생김새만 보면 사실 아이누족은 러시아인에 더 가까워 보이긴 한다.
시라오이역.
박물관을 보러 오는 관광객이 아니면 이 역을 이용하는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매일같이 정해진 일을 하고 있고.
한낮에도 차 한 대 안 다니는 곳.
사람이 다 사라져 버린 동네라면 아마 이런 분위기일 것 같다.
역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우포포이'라는 [아이누족] 테마의 국립 시설이 있고 그 안에 [아이누족 민족 역사박물관]이 있다.
[우포포이] 도 아이누족 말인데 '다 같이 함께 노래하자'는 뜻이라고.
입 안에서 동글동글한 사탕 굴리는 느낌이 난다.
대체 어떤 말을 쓰는 사람들인 걸까!!
우포포이 마스코트 '투레폰'과 인기 애니 '골든 카무이'포스터가 정문에 걸려있었다.
어마어마한 타임테이블.
관람 외에도 아이누족의 언어, 요리,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떻게 이걸 놓치고 돌아가냐고! 이래서 그냥 하루를 통으로 비워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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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어떻게 움직여야 꽉 차게 즐길까?
머리 굴릴 새도 없이 스텝분들이 다가와 맞춤형 동행 가이드를 해주셨다. "다 봤어? 그럼 저기로가!" "이거 보고 나면 저 뒷 건물로 5분 내로 가야 돼!" 식의 밀착 케어 덕분에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해볼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박물관에서 본 아이누족 이야기를 썼다.
(혹시 이 부분에서 관심이 뚝 떨어졌대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세상에는 이런 존재도 있다는 걸 꼭 알아주었으면 해요.)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에 정착해 살던 원주민이다. 그들만의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가 있었고 모든 자연물에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신은 절대적이고 숭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의존하며 지내는 친밀한 관계였다. 인간이자연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신과의 관계도 조화롭게 유지된다고 믿었기에 자연을 해하거나 필요이상으로 취하는 일이 없었다.
주로 곰, 수달, 담비의 털을 이용해 모피를 만들었고
자수와 비즈공예가 발달 했다.
아이누족에게 곰은 신(카무이)이 잠시 인간세상에 육체를 빌어 내려와 인간에게 고기・모피・뼈・영적 축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사진은 곰을 희생시켜 고기를 나누기 전 신에게 먼저 감사 인사를 올리는 모습.
바다에서는 주로 연어를 잡아먹기도 하고 가죽을 말려 신발을 만들었다. 자연이 주는 재료를 빈틈없이 사용하던 아이누족의 모습.
아기를 업을 때 썼던 포대기.
뭔가 위태로워 보인다..
아이누족 문양이 박음질된 인형옷들.
기모노를 닮은 듯 하지만 기모노보다 소매폭이 좁고 총장이 짧다.
보면 볼수록 '아이누족 일본인이랑 아예 다른 존잰데?' 란 생각이 든다.
이런 데에서는 딱히 당기는 메뉴도 아닌데 당장 배고프니까 비싸게 주고 사 먹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로 먹을 걸 사 왔다. 이제 이걸 어디서 까먹을까... 가 고민이었는데 도시락 싸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이런 공용휴게실이 박물관 내 많았다.
한 끼로 충~ 분한 내 점심 흐흐. 일본 오면 한 끼로 제일즐겨 먹는 조합이다. 계란샌드위치에 요거트. 다 먹고 오차로 입가심까지 해주면 정말 깔끔하다.
휴게실 내부벽이 편백나무로 돼있어서 들어가자마자 진한 나무냄새가 났다. 아! 아까 박물관 오기 전 채벌장이 있었는데? 여기 왠지... 나무가 되게 좋은 거 같아....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가구 쇼핑 할 때 '여기 쓰인 나무는 어디 건가요? 홋카이도 나무가 전 좋던데 '라고 아는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풉..
언젠가 그 ‘한마디’를 해보는 날이 꼭 오기를.. 가장 뷰가 좋은 곳에서 점심을 때웠다.
최근에는 아이누족의 후손이 아이누족이 사용했던 악기로 대중음악을 하는 케이스도 많이 늘어났다고.
캐릭터가 뚜렷해서 재밌다.
*대표적인 뮤지션 OKI DUB의 홈페이지: https://www.tonkori.com/
전통악기 톤코리를 연주하는 오키 덥 아이누 밴드.
그들이 하는 음악은 이런 느낌이다.
*출처: chikar studio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1tkLjoic69k
모든 공연, 전시의 설명은 아이누족 언어로 선소개되고이 후 일본어-> 영어 순으로 이어진다. 찾는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인걸 감안하면 그 반대의 순서가 편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 방식이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아이누족의 땅이구나 라는 체감을 들게 한다. '너희가 놀러 온 거지 , 우리는 원래부터 이 땅에서 이런 말을 쓰며 살았다고' - 하는 느낌.
아이누족의 민속춤, 노래 공연은 촬영이 불가능했는데 소리가 너무 기이해서 쇼크 먹었다.
기침 소리, 흐느끼는 소리, 킁킁 대는 소리, 규칙성 없이들쭉 날쭉한 높낮이에 새 울음소리 같은 것들이 섞여 처음 듣기엔 살짝 공포스러웠다.
(실제 공연영상)
*출처:ウポポイ民族共生象徴空間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FatW8TANJo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오던 아이누족은 1869년 일본의홋카이도 개척 계획이 시작되면서 탄압받기 시작했다.
당시 서구국가를 표방하던 일본 정부는 미국의 농업행정가로부터 홋카이도는 땅이 비옥하고 깨끗한 물이 풍부해 농사짓기 좋은 땅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이후 홋카이도를 새로운 곡창지대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어업과 채집이 주였던 아이누족은 하루아침에 본인들의 삶의 방식을 금지당하고 땅은 몰수되어 농지로 개간되거나, 홋카이도로 이전한 본토인들에게 나눠졌다.
아이누족어를 포함한 전통 의례, 종교, 문신, 의복을 못 입게 됐고 대신 일본어 교육과 일본식 생활을 강요당했다.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 없던 아이누족은 급속히 빈곤화되어갔다.
단일민족을 중시하는 일본은 아이누족의 존재를 계속 인정하지 않았는데 최근에서야 아이누족을 일본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했다.
이유는 아이누족을 일본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아이누족의 정체성을 근거로 영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 일환으로 2020년이 돼서야 지금의 [우포포이] 시설을 일본에서 지어줬다고. 아이누족 입장에선 이제라도 인정해 주니 고마웠을까?
아이누족의 전통 악기. 뭇쿠리를 배웠다. 개그맨들이 웃길 때 하는 눈알 빠지는 소리가 난다. 그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몇 가지 기교로 다양하게 연출하는데 가만 듣다 보면 더 이상 웃기지 않고 묘하다. 자연의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 악기로 감정표현이나 고백을 하기도 했다고.
15분 정도 배우고 뭇쿠리 두 개를 사서 나왔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남편이랑 뭇쿠리듀오를 결성해 봐야지.
(뭇쿠리 소리)
*출처:ウポポイ民族共生象徴空間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gOeh-TL_YI4
(아이누어 라디오 방송)
*출처:アイヌ語ラジオ講座
https://www.stv.jp/radio/podcast/ainugo/index.html
희미해지는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는 아이누족의 모습.
마지막으로 아이누족 전통복 입는 체험을 했다. 이걸 가장 마지막에 한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혼자 왔기 때문에 부끄러웠고, 사진을 찍어달란 부탁을 해야 한다는것. 삼삼오오 놀러 온 일본인들 사이에서 줄을 서 기다리는 게 조금 그랬다. 하하.
그렇지만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는데!
부끄러움을 꾹 참고 바구니에 짐 내려놓고 들어가니 손가락으로 1을 만들며 혼자냐고 묻는다. 제발...
딱 봐도 혼자잖아요......
뒤에 서있던 일본인들이 먼저 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오매 진짜 미친다. 가이드분이 포토스팟을 알려주셨고, 사진 찍기 시작하는데. 세상에.
나 또 프로의식. 쑥스러웠던 맘 어디 가고 웃고 있잖아?
곧 잘 포즈를 취하니 요구사항이 많아진다. 팔을 벌려봐라. 바닥을 사선으로 봐라. 그릇 닦는 척을 해봐라 등.
이 순간만큼은 완전 관종이되.. 뒤에서 구경하던 오바상들 저런 귀여운 아가씨 처음 봤다며 칭찬해 주셨다.
김수진 쑥스럼 극복 성공. 얏따!
마지막 체험까지 완벽히 끝내고 5시가 넘어 삿포로로 돌아왔다. 내내 구경하느라 남편이 보낸 연락을 못 봤다. 쌓인 메시지를 보니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뭐야. 나 제법 이 시간에 녹아들고 있잖아? 이상한 뿌듯함이 든다.
이렇게 점점 희미해져 가는.
없어지기엔 너무 아름다운아이누족의 문화와 삶의 모습을 보니 내가 아직 모르는작고 힘없는 것들이 또 뭐가 있을까 찾아내고 싶어졌다.
작고 인기 없는 것들.
나는 그런 쪽에 마음이 쏠린다. 그래서인지 이번 아이누족 투어는 매년 두번씩 와도 (비행기표 가격을 감안하더라도) 질리지않겠다 싶을만큼 좋았다 . 세상에 이런 존재도 있어요 알리는 마음으로 써본 이번 글. (ps. 재미없어도 여기까지 완독 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아이누족도 좋아할 거예요)
어제오늘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슬슬 아파온다. 밖에서 찬바람을 계속 맞으니 볼도 텄다. 어디 뜨끈하게 지지고 싶네. 그 그. 바닥 지글지글하게 데워가지고 두꺼운 이불 덮고 방바닥에 늘어져버리는 그 느낌. 그 느낌이 너무 그립다.
호텔 베드의 이불은 너무 차갑다.... 기관지와 피부가 상하던 말던 연신 더운바람을 뿜어대는 무식한 천장히터기... 이 나라 사람들... 매해 이런 식으로 겨울을 났던건가.... 온천으로는 해소가 안되는 냉기가 몸 속 어딘가 계속 남아있다.
내일은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옮긴다. 사장님과 무슨 대화를 해볼까 떠올리다가 그대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