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공부가 아닐 때 진짜 공부가 된다

실력은 애정과 비례해...

by 나하진



요시에상과 실컷 수다를 떨고 3층으로 올라와 짐을 풀었다. 평일이니 4인실방을 혼자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손님 한 명이 올 거라고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다... '이 시간에 손님이 올까?' 오려고 했는데 맘 바뀐 거 아니고선 이렇게 늦게 올리가 없지. 펼쳐놓은 캐리어를 그대로 두고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하는데 조심스레 방문이 열렸다. 아. 왔네......

내가 일궈 놓은 나만의 편한 공기가 문 틈새로 흘러나간다. 흑흑. 혼자 쓸 줄 알았는데... 맞다 캐리어!!!

'오시는 줄 모르고 캐리어를 펼쳐놨네요. 바로 치울게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이걸 일본어로 해야 되니 타이밍과 행동이 자꾸 두박자씩 느리다. 이게 얼마나 답답할 지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라. (일본어능통자라면 이런 답답함을 극복하신 지 오래되셨겠지만 저는 아직이라)



'あ、ごめんなさい。今すぐ..! (아 미안해요 지금 바로..)'를 뱉고 '치우다'는 카타즈케루. '치울게요'는 존댓말이니까 카타즈케마스. 응응 카타즈케마스네!라고 하자- 고 떠올리는 순간!


“아!!! 두세요! 괜찮아용~”돌아온 한국말....

‘오잉? 하.. 한국 분이신가?’ 목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차림새를 빠르게 스캔.

나만의 누적 데이터로 얼른 국적을 유추해 본다. 부운명 일본사람인데. 아아닌가 일본에서 오래 산 한국인인가?


"한국분이세요?"

"아, 아니요! 저 일본사람이에요 ㅎㅎ~!"

라고 하는데. 나는 순간 나한테 장난치는 줄 알았다.


왜? 너~~ 무 뉘앙스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그녀가 일본사람이 맞다면 나는 엄청 충격 먹을 것 같았다. 여권을 보여달라고 안그러면 못믿겠다 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일본인이 맞았고, 나는 이 짧은 순간에 굉- 장한 쇼크를 먹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눈 대화는 단 두 마디뿐이였거든.

'그냥 두세요~ 괜찮아요'

'아 아니요 저 일본사람이에요'

대단한 문법이나 단어가 조합된 문장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왜' 그녀를 한국인이라 착각했을까. 여기서 내가 믿고 있던 언어에 대한 상식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일본어를 공부한 지 5년 정도 됐다. 일본어가 좋았던 건 문자의 모양이 예뻤기 때문에. ㅇ이나 ㅁ처럼 닫힌 모양이 잘 없어서 변형이 자유롭다. 디자인에 따라 한자처럼. 막 갈겨놓은 낙서처럼 보이기도 하는 폰트 자체에서 매력을 느꼈고 발음이 귀엽잖아. 자주 들어가는 '떼, 은' 발음이 듣기 좋았다. 공부를 막 시작 했을 땐 한국어와 일본어가 닮은 점이 많구나 (한자 베이스라 똑같은 발음이 많아서)라고 생각했고, 좀 더 공부했을 땐 반대로 두 언어가 얼마나 다른 언어인지 알게 되었다. 같은 표현이라도 일본어는 조심스럽고 간접적인 기조로 표현하는데. 독해 공부 할 때 긴 문단을 한국말로 해석해 놓으면 굉장히 짧게 끝난다. 책에 공백이 텅텅 빈다.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라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마 그 책이 한국어로 되어 있다면 두께가 굉장히 얇아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일본어는 뭔가를 딱 집어 말하지 않고 부연으로 갖다 붙이는 표현들이 많기 때문에 문장을 정확히 말하는 것도 어려운데 일본식(?)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굉장히- 굉장히 어렵다.


예로, [오늘은 쉽니다]라고 간단히 써두면 될 것을. 일본에서는 [오늘은 휴업으로 하게 해 주시기를 받겠습니다 (직역도 안되는. 한국인 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런 식의 말 들이라든가.


'나는 밥을 먹을 것입니다'란 표현은 교과서에서 가르쳐줘도 '이제 밥 먹으려구요' 라는 표현은 알아서 체득해야 하는. 문어체와 회화체의 간극 같은 것.

그런것들이 요즘 내 일본어 코마 상태에 크게 한몫하는놈들인데. 오늘 그 뿌옇게 떠다니던 놈들을 눈앞에서 봐버렸으니.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한국인이라면 공통적으로 쓰고 있는 한국식 [뉘앙스]가 있다. 너무 당연하게 쓰고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만에 법칙(?) 같은 거랄까.

이걸 발견해 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는데 뭔가 말을 시작하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거. 맞장구칠 때 "헐~" "진짜?" "미친 거 아니야!"라든가. "응"의 높낮이만으로 모든 대화가 가능하고, 공감하는 얘기가 나왔을땐 우선 한 번 놀래주고 " (어?!) 나도 그래"라고 한다. 그 (어?!)의 존재. 그 '어?'가 언어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녀의 국적을 혼동했던 것도 문장이 유창해서. 발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추임새의 활용 때문이었다. 아마 교과서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단계였다면 펼쳐진 내 캐리어를 보고 "괜찮습니다. 그냥 두세요"라고 딱딱하게 말했을 텐데

"(아!) 그냥 두세요 괜찮아용~" 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 (아!) 위력. 그 짧은 외마디가 얼마나 그 언어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지. 무울론. 물론 동사의 변형. 부정문 수동형 경어 이런 게 안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동안 언어를 너무 딱딱하게 배우고 있진 않았나 되돌아보게 했다. '이준'이 나오는 드라마 '미스터 백'을 스무 번도 넘게 돌려봤다고. 한국의 로맨틱 드라마가 너무 좋다고 했다. 한국을 한 번도 와본 적 없다던 그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는 일본을 일 년에 서너 번은 오는데. 괜히 그녀와 나의 언어실력을 비교하게 되며 찜찜해지는 기분과 동시에 굳이 그 나라에 가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마음만 있다면 저 정도 실력은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의 칭찬에 몹시 쑥스러워하면서 일본어 공부하기 좋은 드라마 몇 개를 종이에 적어주었다.





방금 버벅거렸던 말을 혼자 누워 옹알이해본다. 지금은잘된다. 근데 그때는 안 됐다. 눈을 보고 말하면 말문이 턱 막혀 버린다. 글은 읽는다. 듣는 것도 많이 나아졌다.근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질 않는다.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과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빨리 말하려하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이 하얘져버린다. 으악.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책상 위 올려져 있는 책 속 문장들을 몽땅 다 외워 버리고 싶다. 흑흑. 신이시여. 애초 제가 일본어를 기본으로 하고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입장으로 태어나게 해 주시지 그랬어....라고 기도하려다 그 경우는 지금보다 곱절로 힘들 것 같아 바로 취소한다.. 그래 한국어는 진심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언어가 확실할 것이다. 그냥 현재에 감사하고 지금 이 답답함을 잊지 않고 돌아가서 더 더 열공해야지 다짐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언어를 마스터한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한 언어를 오래 공부해 오신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최근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 나오는 미쳐버린 문장들에 호흡까지 가빠질 만큼 감탄하다 문득 내가 이렇게 감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번역자분의 넓은 혜안. 비슷한 많은 단어 중 하필 그 단어를 셀렉해 내는 언어적 센스 덕분이라는 걸 깨닫고 한번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아마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그 나라의 정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이해하는 생각보다 훨씬 더 폭넓은 의미의 '받아들임'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자 그 너머 세계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과 동경, 애정. 그런 것들이 언어를 배우는 데 참 중요한 요소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비단 언어공부에만 국한되지 않는. 삶의 모든 종목에 통용되는 원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고. 좋아하는 걸 하면 다른 것 보다는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하다 보면 잘하게 되니까. 잘하게 될거니까. 돈이 안된다고? 그건 뭐 모르겠다. 그래도 잘하게 되면 돈이 되지않을까? ㅎㅎ 두서없이 주절주절 써 내려간 이 페이지의 결론은 그러니까. 나는 일본어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서 이렇게 속앓이를 했다고. 당신도 혹시 이런 경험 있는지.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건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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