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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Apr 21. 2022

도그 파크

스물한 번째 걸음

해가 한참 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주말 오후. 오늘은 도그 파크에 가서 개들을 가까이서 카메라에 담아볼 생각이다. 4월의 뉴욕은 폭설이 잦은 겨울과 우주의 모든 기운이 기지개를 켜는 상쾌한 봄 어느 사이에 있다. 얼어붙었던 모든 것이 깨어난다. 길 위의 가로수가 잠에서 깨어나고, 굳게 닫혀있던 건물의 문들이 열리고, 개들은 엉거주춤한 발걸음을 만드는 두껍고 불편한 패딩 옷을 벗어던진다. 길을 걷는 발걸음들에서 리듬이 흘러나온다.


왼손엔 아빠 손을, 오른손엔 하늘색 풍선을 들고 스타카토를 찍으며 신나게 걷는 여자아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자랑하는 모델과 그 선율을 연주하는 사진작가, 그 리듬들이 차마 닿지 못할 만큼 높은 뉴욕의 고층 빌딩들을 보며 감탄사를 노래하는 여행객들. 모두가 뉴욕을 연주하는데 나만 그 속에서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서있다.


마치 곡을 노래하는 합창단 사이에서 건너편 객석에 앉은 옛 남자 친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당황스러움으로 잔뜩 목이 메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 목메임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예를 들어 객석을 향해 이 XX 라 외치는 것 과 같은- 그런 목메임이지, 아침에 먹은 인절미 떡이 목에 걸렸다거나 하는 물리적인 목메임은 아니다. 굳은 것처럼 자리에 서서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도착한 도그 파크의 문 앞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개와 함께하지 않는 휴먼, 입장 금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목메임을 느끼며 서있는 이곳의 상황은 이렇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도그 파크 안에는 반려인들과 개들이 한데 뒤섞여 놀고 있다. 개들은 신나게 뛰어다니거나 하나의 공을 갖고 이리저리 굴리며 함께 놀고 있고, 반려인들은 도그 파크 내에 마련된 벤치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공을 던져주며 개와 함께 놀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는, 도그 파크 안은, 천국이다. 


반면 울타리 건너 바깥의 상황은 이렇다. 개들이 없는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을 한 채로 울타리에 몸을 잔뜩 기댄 채 뛰어다니는 반려견들과 사람들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속으로 모두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게 보인다. 


‘나도 들어가고 싶다-!’



그렇지만 여기 나처럼 목이 잔뜩 메인 채 울상이 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이곳에 놀러 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왔지 않은가. 다음 주 마감인 매거진 기고 날짜에 맞춰 도그 파크에 대한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고 스캔을 한 뒤 글을 마무리해서 -이럴 줄 알았다면 글을 미리 써두는 게 아니었는데- 잡지사에 보낼 나의 계획이 바위에 부딪쳐 으스러진 파도가 되어버렸다. 흩어져버린 물살을 보며 나는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최대한 카메라를 줌 zoom 해 눈앞의 장면을 당겨 촬영할 수도 없다. 이 순간만큼은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나를 원망한다. 그냥 여기 다른 이들처럼 울타리에 몸을 잔뜩 기댄 채로 -아니, 거의 상체가 울타리 안쪽에 걸쳐질 정도로- 최대한 몸을 뻗어 사진을 찍는 수밖에. 


지난날 도그 워커가 되지 못했던 그날이 다시 떠오르며 입에서 씁쓸한 계피 맛이 올라온다. 벌써 뉴욕에서 당한 두 번째 거절이다.


문이 있는데 왜 들어오질 못하니...


잘 담겼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다 감겨진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감상적이던 나는 잊혀지고 다시 이성적인 내가 돌아오니 방금 당했던 거절은 또 당연히 그래야 하는 마땅한 규칙으로 느껴진다. 그래, 만약 반려견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입장이 가능했다면-. 울타리에 몸을 기댄 채 안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뛰어노는 반려동물을 위해, 그리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개와 함께하지 않는 휴먼들은 그저 울타리 밖에 있어주는 것이 옳은 것임을 나는 그냥 그렇게 또 이해하기로 했다. 여전히 사진은 걱정스러웠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는 그제야 경쾌한 리듬이 흘러나왔고 내가 만들어 낸 선율은 뉴욕의 것과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당분간은 그저, 합창단의 맨 앞 줄이 아닌 구석 저 끝 자리에서 전체를 위해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뉴욕에서 당한 첫번째 거절이 궁금하시다면... > https://brunch.co.kr/@moripark/178



Youtube : 펫크리에이터 모리

Instagram : @mori_park




글/사진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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