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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Jul 18. 2018

어제, 한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길냥이를 추모하며


멀리서 타지 생활을 하는 나는 매일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한다.

항상 집에서 전화를 받으시던 어느 때와는 달리, 어제는 엄마가 집 앞 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침부터 정원에서 뭐해?"



"응, 어젯밤에 새끼 고양이가 다친 거 같아서 걱정돼서 나와봤어."




3년쯤이나 되었을까.

부모님이 집 앞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을 살뜰히 챙기기 시작한 건

내가 키우던 나나를 맡아 키우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에 부모님께 나나를 맡길 때는 

처음 고양이를 키우시는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느새 능숙한 집사가 되어 몇 년째 집 밖 길냥이 들도 함께 보살피는

길냥이 부모님 노릇도 톡톡히 하고 계신다.





"쟤는 얼굴에 점이 있어서 얼룩이, 쟤는 털이 노오래서 노랑이,,,"





반도의 흔한 별명은 다 갖다 불러주며 그렇게 챙기던 길냥이들은

우리 집 정원 한켠에 놓인 창고 안에서 새끼도 낳고, 

그 새끼가 혹여나 추울까 부모님이 만들어 준 나무집 안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며, 

가끔은 엄마가 가꾸는 꽃밭도 산책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엄마가 아침에 다시 만난 새끼 고양이는 

어제저녁 누워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모양이야. 아예 걷질 못하는 걸 보니.."




핸드폰 화면 속 영상으로 비친 새끼 고양이의 상태는

네 발을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누워있는 그런 상태였다.



"준비하고 병원에 데려가 보려고. 일단 뭐라도 먹여야지 싶은데.. 

그나저나 어미는 아픈 새끼를 두고 어딜 갔나 몰라."



새끼 고양이 입에 우유를 뜬 수저를 연신 들이대며 엄마가 말했다.




우유라도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려는 엄마와 그마저도 힘에 부치는지 계속 누워만 있던 길냥이



"먹기 싫은가 봐, 엄마. 그냥 둬, 먹고 싶었으면 벌써 먹었을 거야. 

근데 어미는 진짜 어딜 갔데? 혹시 약해졌다고 새끼 버리고 그냥 가버린 거 아냐? 

야생동물은 약한 자식은 버리고 막 그런다며 왜..."




언젠가 티비에서 본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린 내가 말했다.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누는데 문 앞에 어미가 등장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대차게 울어대는 새끼를 역시나 그냥 버리고 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엄마가 핸드폰에 비춰준 어미 길냥이는 마치

'나 여기 계속 있었어요'라는 듯 문 앞에 꼿꼿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새끼가 혼자 있진 않았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엄마, 우리가 있어서 어미가 가까이 못 오는 거 같아.

엄마는 저 멀리 가있고, 핸드폰만 여기 놔줘. 내가 보고 있을게"





문 앞에 앉아 엄마와 나, 그리고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던 어미 길냥이




사람이 없으면 금방 아픈 새끼에게 다가가 볼 줄 알았지만,

어미는 새끼와 한 뼘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끼를 핥아주며 어떻게든 자식을 살리려 애쓰는 모습보단

마치 새끼의 끝을 본 듯 모든 걸 포기한 

화면 속 검은 점 같은 정지 자세의 어미의 모습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침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새끼는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같은 날 오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니, 대체 멀쩡하던 애가 하루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건데?

그냥 다리만 다친 거 아니었어!?"




비록 내가 보살피던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종종 화면으로나마 만나던 새끼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재차 엄마에게 물어댔다.




"의사 선생님도 정확한 병은 모르신다더라. 

길냥이들이야 워낙 알 수 없는 병으로 많이 죽어가니까.. "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에는 이미 몸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이

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더 깊이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보다 더 마음이 아프실 엄마를 생각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

.



우리 집 새끼 길냥이가 죽은 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거리의 다른 동물들도

알 수 없는 병을 앓다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갖가지 질병들을 그 작은 몸에 지닌 채 힘들게도 살아왔을 거리의 친구들에게 

이 글을 남김으로써 작디작은 추모와 위로의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다.



비록 너희는 고통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지상에 어떠한 인간 하나가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로 받았으면 한다.




[3년 전, 내가 반려동물에 관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

빅이슈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끝으로 긴 추모의 글을 마무리한다.]







헤밍웨이가 말했어.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모두 하나의 소설 감이다"라고.


이 말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내 옆에 곤히

잠들어있는 강아지의 인생과 길거리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길냥이의

인생도 하나의 멋진 소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와 내 반려동물은 행복한 문체로 각자의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어.

만약 우리의 것과는 달리 슬픈 이야기로 가득 한 소설이 있다면,

그 끝은 꼭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리팍

MORI PARK



Instagram : https://www.instagram.com/moripark_p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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