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를 추모하며
멀리서 타지 생활을 하는 나는 매일 부모님과 영상통화를 한다.
항상 집에서 전화를 받으시던 어느 때와는 달리, 어제는 엄마가 집 앞 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침부터 정원에서 뭐해?"
"응, 어젯밤에 새끼 고양이가 다친 거 같아서 걱정돼서 나와봤어."
3년쯤이나 되었을까.
부모님이 집 앞에 돌아다니는 길냥이들을 살뜰히 챙기기 시작한 건
내가 키우던 나나를 맡아 키우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에 부모님께 나나를 맡길 때는
처음 고양이를 키우시는 터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어느새 능숙한 집사가 되어 몇 년째 집 밖 길냥이 들도 함께 보살피는
길냥이 부모님 노릇도 톡톡히 하고 계신다.
"쟤는 얼굴에 점이 있어서 얼룩이, 쟤는 털이 노오래서 노랑이,,,"
반도의 흔한 별명은 다 갖다 불러주며 그렇게 챙기던 길냥이들은
우리 집 정원 한켠에 놓인 창고 안에서 새끼도 낳고,
그 새끼가 혹여나 추울까 부모님이 만들어 준 나무집 안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며,
가끔은 엄마가 가꾸는 꽃밭도 산책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엄마가 아침에 다시 만난 새끼 고양이는
어제저녁 누워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모양이야. 아예 걷질 못하는 걸 보니.."
핸드폰 화면 속 영상으로 비친 새끼 고양이의 상태는
네 발을 옴짝달싹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누워있는 그런 상태였다.
"준비하고 병원에 데려가 보려고. 일단 뭐라도 먹여야지 싶은데..
그나저나 어미는 아픈 새끼를 두고 어딜 갔나 몰라."
새끼 고양이 입에 우유를 뜬 수저를 연신 들이대며 엄마가 말했다.
"먹기 싫은가 봐, 엄마. 그냥 둬, 먹고 싶었으면 벌써 먹었을 거야.
근데 어미는 진짜 어딜 갔데? 혹시 약해졌다고 새끼 버리고 그냥 가버린 거 아냐?
야생동물은 약한 자식은 버리고 막 그런다며 왜..."
언젠가 티비에서 본 동물들의 모습을 떠올린 내가 말했다.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누는데 문 앞에 어미가 등장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대차게 울어대는 새끼를 역시나 그냥 버리고 가진 않은 모양이었다.
엄마가 핸드폰에 비춰준 어미 길냥이는 마치
'나 여기 계속 있었어요'라는 듯 문 앞에 꼿꼿이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새 새끼가 혼자 있진 않았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엄마, 우리가 있어서 어미가 가까이 못 오는 거 같아.
엄마는 저 멀리 가있고, 핸드폰만 여기 놔줘. 내가 보고 있을게"
사람이 없으면 금방 아픈 새끼에게 다가가 볼 줄 알았지만,
어미는 새끼와 한 뼘 정도의 거리를 계속 유지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새끼를 핥아주며 어떻게든 자식을 살리려 애쓰는 모습보단
마치 새끼의 끝을 본 듯 모든 걸 포기한
화면 속 검은 점 같은 정지 자세의 어미의 모습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아침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새끼는
가망이 없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같은 날 오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니, 대체 멀쩡하던 애가 하루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 어디가 어떻게 아팠던 건데?
그냥 다리만 다친 거 아니었어!?"
비록 내가 보살피던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종종 화면으로나마 만나던 새끼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재차 엄마에게 물어댔다.
"의사 선생님도 정확한 병은 모르신다더라.
길냥이들이야 워낙 알 수 없는 병으로 많이 죽어가니까.. "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에는 이미 몸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이
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더 깊이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보다 더 마음이 아프실 엄마를 생각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
.
우리 집 새끼 길냥이가 죽은 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길거리의 다른 동물들도
알 수 없는 병을 앓다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갔을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갖가지 질병들을 그 작은 몸에 지닌 채 힘들게도 살아왔을 거리의 친구들에게
이 글을 남김으로써 작디작은 추모와 위로의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다.
비록 너희는 고통 속에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지상에 어떠한 인간 하나가 그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로 받았으면 한다.
[3년 전, 내가 반려동물에 관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날
빅이슈 잡지에 기고했던 글을 끝으로 긴 추모의 글을 마무리한다.]
헤밍웨이가 말했어.
"모든 인생은 제대로만 된다면 모두 하나의 소설 감이다"라고.
이 말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내 옆에 곤히
잠들어있는 강아지의 인생과 길거리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길냥이의
인생도 하나의 멋진 소설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나와 내 반려동물은 행복한 문체로 각자의 소설을 써 내려가고 있어.
만약 우리의 것과는 달리 슬픈 이야기로 가득 한 소설이 있다면,
그 끝은 꼭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리팍
MORI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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