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이 살아가는 게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삶은 결국 의미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흘러가니까요. 작은 목표라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 건 결국 삶을 흘려보내는 것과 다름없어요. 목표 없는 삶은 편안할 순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허탈함만 남습니다."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 하라>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의미가 있을까? 있다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만일 없다면 나는 왜 살아가고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의미, 즉 목적이 있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하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사유의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빛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희망이 생기고 꿈을 찾아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는 삶에 의미를 잊은 채 좀비처럼 살았다. 육체는 살아있으나 꿈과 희망이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며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방향을 잃었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뭔가 있는 척을 했지만 실상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공허함.. 그 무엇으로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매일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내가 설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중심을 잃은 채 위태롭게 외줄을 건너고 있었다.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을 포기하고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버티며 지내온 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진짜 나는 없고 단지 누군가의 모조품만이 존재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은 그에게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 주었고 그는 드디어 몸짓이 아닌 꽃이 되었다. 나의 삶 역시 하나의 몸짓, 즉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런 나의 삶에 의미가 생겼고 꿈과 목표가 생겼다. 글쓰기는 내 삶을 꽃으로 바꾸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빈 껍데기에 알맹이라라는 씨앗을 뿌렸고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나 꽃이 되어 간다. 무수한 삶이라는 퍼즐 조각 중에 딱 하나의 퍼즐이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서 나머지 조각들도 서서히 자신의 의미를 찾고 있다. 글쓰기는 메말랐던 내 마음에 비를 내렸고 여기저기 의미라는 새싹이 피어나고 있다.
공허함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공허함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삶의 의미다. 삶이 고통으로 견디기 힘든 이유는 내 삶에 목적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공허하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 결국 살아서 무엇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한다. 스스로 살아갈 이유를,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각자 모두 가치가 있는 일이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수많은 방법 중에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방법은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몇 글자 끄적이는 것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그동안 보지 못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숨겨진 자신을 찾은 사람만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글쓰기는 매 순간 흔들리는 나에게 등대와 같이 항상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때 글쓰기를 통해 방향을 찾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꾸준히 글을 써 나갈수록 점점 멀리 있는 꿈과 목표가 가까워진다. 내 삶이 지금 좀비와 같이 방향을 잃은 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글쓰기에 도전하고 시작해 보자. 나의 목표와 가치를 글로 풀어보고 삶에 의미를 반영해 보자. 그동안 잿빛으로 어둡기만 한 내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되어 살아갈 이유를 더욱 명확하게 비춰준다
# 아침의 작은 성공이 모여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만듭니다
# 아침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