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슬픔 같았던 비

#5 독립궁, 전쟁박물관

by 아샘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입구의 홀로 나와 큰 화면의 반전 영상을 보는 그 시간
큰 비가 내렸다. 그 비는 큰 슬픔 같았다.
반전 영상은 빗소리와 함께 아프게 가슴을 쳤다.





독립궁(independence palace)


왕궁과 역사관을 돌아보는데 입장료는 650,000동이다. 독립궁, independence palace는 독립궁으로 불리기도 하고 통일궁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영어로 independence라고 표기하니 독립궁이 더 맞겠다. 프랑스 식민지 당시 노로돔 궁전이었다가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55년 독립궁으로 불렸으며 1962년 쿠데타로 인한 전투기 폭격으로 무너진 뒤 1966년 새로 리모델링된 궁전이다. 이후에 남베트남 대통령궁으로 쓰이다가 1975년 탱크가 입성하며 베트남 전쟁 종료를 상징했다고 한다.


palace라는 단어에 걸맞은, 그동안 유럽에서 보아왔던 왕궁의 화려함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하노이의 호찌민 집무실에 비하면 꽤 화려한 편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궁전의 모습은 아마도 더 화려했을 텐데, 현재는 남베트남 당시 대통령의 집무실이었던 기억만 보존 중이다.

궁에 들어가면 지하에 영상실이 있다. 이곳에서 궁의 변천사를 담은 영상물을 먼저 관람하면 좋다. 식민지 시절 화려한 왕궁의 모습과 이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전 후 변천과정 또 남베트남 대통령의 집무실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베트남 전쟁으로 궁전이 함락되던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관에서는 남베트남 시절 호찌민의 사회 전반과 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전시물을 볼 수 있다.

대통령 집무실 공간들
지하벙커


palace라고 이름 지은 곳에서 나는 왕궁의 모습을 추측하기보다 오히려 베트남이 독립을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냈고, 어떻게 투쟁했는 가를 더 많이 엿볼 수 있었다.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 등 항전의 역사


독립궁은 치열했던 독립전쟁과 그 전쟁을 이겨낸 베트남의 처절한 상황을 palace의 변천과정과 엮어냈다. 식민지 시절의 모습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독립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을 잔뜩 느끼게 해 준 장소였다. 아마도 이때부터인가 보다. 사이공으로 불렸던, 다분히 자본주의적 도시라는 호찌민이 전쟁을 품은 도시로 다가온 것은. 엊그제 시티투어에서 본 그 화려함을 지닌, 빈컴센터 hotpot 앞에서의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을 품은 호찌민은 그 안에 전쟁의 상흔을 촘촘히 갈아 넣은 듯했다.





호찌민 전쟁박물관 관람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고엽제 피해 사진, 반전활동 사진 등 거의 사진으로만 전쟁을 건조하게 설명한 곳이다. 세계 최초로 반전운동의 시작을 알린 곳이 베트남전이라고 한다. 박물관은 전쟁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고증하고 가감 없이 드러내어 그저 주제에 따라 부스 안을 걷는 것만으로도 전쟁의 아픔이 전해져 왔다.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와의 1차 전쟁과 미국과의 2차 전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곳은 소위 우리가 말하는 월남전, 미국과 싸운 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입장료는 40,000동이다.



첫 번째 공간은 전쟁의 전반적 상황을 전한다. 전쟁의 규모, 참전 현황, 전쟁의 발발 이유와 진행단계 그리고 타 전쟁과 비교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를 그래프와 자료 등을 통해 소개한다. 파견된 한국군이 어떻게 활동했는지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레퀴엠'이란 타이틀을 붙인 공간이다. 60-70년,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전쟁이라 당시 정말 많은 종군기자가 참여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 집집마다 설치되던 시기였다. TV를 통해 전쟁의 무모함이 슬슬 일어나던 시기, 용감한 사진가와 기자들이 전쟁터에서 '전쟁이 무엇인지'를 촬영했다. 그리고 그 참상은 신문으로 잡지로 그리고 티브이로 전송되었다. 그 기자들이 본인들의 사진을 기증했단다. 전시관에는 그 사진에 대한 스토리가 기록되어 있다.

기자의 이력과 기자의 모습, 기자가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기자들이 전쟁 중에 베트남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사진사와 기자들이 달려가 전쟁이 어떻게 삶을 망가뜨리는 지를 여지없이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가까스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총상을 막아낸 카메라, 그저 보통 사람들이 전쟁 중에서 삶을 살았던 모습, 목숨 걸고 전쟁터를 벗어나려고 강을 건너는 모습, 전쟁 중에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 포탄이 터져 놀라서 울면서 달아나는 모습까지, 널리 알려진 베트남을 상징하는 사진 한 두 컷 정도만 기억하던 나는 이 공간이 왜 필요한 지를 절감했다. 베트남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낱낱이 드러내는 공간, 이곳은 장송곡이란 의미의 레퀴엠이라 불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부스는 전쟁이 끝난 후의 참상을 담았다.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것도 힘든데, 산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고난은 더 처참했다. 그 처참함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전했다. 현재는 그들도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텐데, 고엽제의 피해는 대를 잇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들을 위한 작은 기부는 자연스럽다.



마지막으로 전시관 입구로 다시 내려오면 당시 미국의 상황을 전한다. 전쟁반대를 외쳤던 미국 대학생 시위대의 모습, 같은 이유로 반전을 외쳤던 세계 여러 나라의 메시지가 영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짐하게 만든다. 베트남 전쟁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너무나 많은 죽음과 참혹한 삶을 남겨줬고, 우리 모두는 그 사실에 대해 진실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이다.


전시관을 다 돌아보고 입구의 홀로 나와 큰 화면의 반전 영상을 보는 그 시간 큰 비가 내렸다. 그 비는 큰 슬픔 같았다. 반전 영상은 빗소리와 함께 아프게 가슴을 쳤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앉아서 가슴을 치는 아픔이 그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픔이 조금 가라앉은 듯 한 때 일어나 박물관 옆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한잔 마셨다.



2022년 5월 27일, 호찌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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