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_달려라 포비
기록 없이 5킬로를 달린 날
물컹한 진액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면 눈을 뜬다. 강아지 포비가 만화 주인공 라바처럼 내 얼굴에 침을 잔뜩 발라놓아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지 6주 차, 녀석은 나날이 성장한다. 급기야 나보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 내가 들고 있는 줄에 매달려 뛰어야 한다. 하지만 뛰기보다 냄새 먹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나마 잠에서 덜 깬 정신으로도 산책이 가능하다. 6개월에 8킬로가 넘는 강아지가 얼마나 더 클지 가늠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감는 하네스와 단단한 목줄을 사서 강아지 산책 시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뿐이다. 이렇게 잘 달리는 강아지라도 먹이 사냥이라기보다 채집에 가까운 아침 나들이에서 조깅을 강요할 수는 없다.
나 혼자 달리기를 즐기고 출근을 하면 발걸음이 가볍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은 누구에게나 솔직해질 수 있는 날이다. 마치 강아지 포비가 배를 내밀며 쓰다듬어 달라고 완전 무방비 하듯이 말이다. 나에 대해서 충만한 감정을 느끼니 가릴 것도 없이 그냥 내 감정을 가식 없이 드러낸다. 이는 강아지가 견주를 신뢰하듯이 나도 내 주변을 신뢰해야만 가능한 감정 표현들이다. 엄마 앞에서만 가능했던 감정 표현을 가감 없이 내 보였기에 상처를 많이 입기도 했지만 다시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신뢰하고 주변을 신뢰해야 사회 구성원들이 솔직해진다. 상대에 대해 방어적이기보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포비가 나에게 배를 내밀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