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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이들이 내 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

by 하루한끼

부모님은, 친정가족들은, 절친들은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고 터놓고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럴 것이다 생각을 해도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도 내 아이들만은 내 편일 것이라 생각은 했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정에 헌신한 엄마가 살아온 걸 보았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겼습니다.


내 아이에게 부모는 나 하나만이 아니란 걸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엄마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아빠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그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상처받은 저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이혼을 서로 합의하고

조정신청서를 쓰던 즈음

남편은 집을 나가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혼하기까지 서너 달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저는 많은 심적변화를 감당하고 있었고

불안정한 증상이 이따금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큰 아이는 아빠를 챙깁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어디서 잘 자는지

잘 지내는지 궁금해합니다.


곧 아빠 생일인데

무슨 선물을 해줄까 그 고민을 계속합니다.

저에게 아빠 옷이나 발사이즈를 물어보기도 하고

어떤 것을 해주면 좋을지 의논도 합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아빠가 여자가 생겨 엄마가 맘고생한 거 알 텐데

얼마나 힘들어한 거 봤을 텐데,

엄마, 아빠 싸우는 걸 보고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도 봤으면서

왜 재는 저렇게 아빠를 챙길까?


내심 너무 서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그런 생각들로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의 글들을 검색을 많이 했습니다.


도대체 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성인이 된 그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냉정해지기도 하고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그래 그렇지, 나도 그랬지 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일시적으로 공감할 순 있어도

절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순 없습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자고 질문합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떠올려 봅시다.

당신은 현재 엄마 편입니까?

아니면 아빠 편입니까?


어머니 아버지 중 어느 한쪽을

그 존재를 아예 부정할 수 있나요?


저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습니다.



불화가정에서 자란 저는

엄마가 아빠한테 맞는 걸 몇 번이고 목격했습니다.

견딜 수 없던 어머니는 가출을 자주 하셨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도 손찌검을 하셨습니다.


너무 어릴 때는 엄마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크면서

엄마는 왜 우릴 보호해주지 않았냐?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우리를 방치했냐 원망도 했습니다.



성인이 된 어느 날은

엄마의 여러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폭력이 정당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엄마, 아빠가 서로 맞지 않았구나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었구나 이해하면서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서운해하십니다.

왜 내 편을 들지 않느냐고

나 맞고 살아도 이혼만은 안 하고 가정을 지켰다며

자신을 인정해 달라 하십니다.


고달픈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가 측은하기도 하지만

아버지 역시 맞지 않는 사람과 사느라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당사자가 아닌 자식의 시선이지요.


...

이혼가정에서 자란 분들 역시

저랑 별반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봅니다.


그리도 저는 저를 돌아봅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었나?


나의 강박적인 불안도는 주위를 통제를 해야 안심이 되었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 사람은 더 벗어나려고

용을 쓰고 머리를 굴리고 그렇게 일탈을 즐겼나 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외도를 이해한다거나

정당화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부부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분명히 남편이 맞습니다.


시간이 지나

나 자신의 역사를 기록해 나가며 객관적으로 보니

서로 맞지 않는 사람이 만나 힘들었던 거지요.


아이들도 성인이 되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비운 후로는

아이가 아빠를 많이 챙겨도 괜찮습니다.

면접교섭 때 찍은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하하 호호 어찌나 재밌게 먹고 농담하고 노는지,

어이없기도 했지만..

그 순간 큰 아이가 아빠와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니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합니다.


부부가 사이가 좋으면

아이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살 텐데,

큰아이는 아빠와의 끈이 떨어질까 염려하는 것처럼 보여

슬프기도 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어떻게 서운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


엄마(혹은 아빠) 편을 들고

비양육자인 부모를 강하게 부정하는 아이는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양육자인 부모 편을 들지 않으면

그 부모마저 나를 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으니

아이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부모 어느 누구나 내 아이가 야물고 똑똑하길 바랍니다.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길 바라죠.

비양육자인 부모가 재산이 많은 경우

내 아이가 실속을 챙기며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무조건 내 편만 드는 게 좋은지

그 어떤 것이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세요.



내 아이들의 인생은 내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선물입니다.


날 엄마로 만들어주었고

한 사람으로서 더 성장한 삶을 살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했던 십수 년이

당시에는 버겁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기억들이 아련하고 행복했습니다.


둘째는 아들이라 성인이 되면

아빠의 입장을 더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바람은

그저, 엄마가 우리를 잘 돌봐주시고

노력 많이 하셨구나 정도로 기억해 주면

그것만으로 족합니다.


자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건 참 힘들지요.

두 아이가 성인이 되는 그날이 짧지도 길지도 않지만

서서히 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어려운 숙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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