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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Mar 04. 2024

딸의 침대

마음이 깃들다.


딸은 안방에서 나랑 함께 잔다.



전남편이 집을 떠난 뒤,

어느순간 자연스럽게 딸이 안방으로 왔다.



안방은 나와 딸의 공간이다.

붙박이장 일부도 딸의 공간이고

화장대에도 딸의 물건들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딸방은 창고방이 되어갔다.



그 방은 정사각형이고

우리집에서 제일 작은 방이라

침대, 책장, 책상을 넣어두었는데

지금은 침실의 기능도, 공부방의 기능도 애매해졌다.




고3이 된 딸과 논의한 끝에

그 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덩치 큰 침대를 처분해야했다.



다행히 언니가 조카 침대가 다리가 흔들거린다며

가져가겠다고 해서 언니네로 보내기로 했다.




딸의 침대




언니가 가지러 오기 전에,

 침대를 구석구석 닦기 시작하는데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10여년 전,

인테리어공사를 끝내고

애들아빠와 함께 가구브랜드 밀집한 상가골목으로 

가구를 사러 가던 날이 떠올랐다.



가구 브랜드 실장님이 영업을 하기도 전에,

주저없이 매장에서 가장 이뻐보이는

값비싼 원목침대를 주문했다.




어린 시절,

"나만의 공간"이 너무나도 간절했고

핑크빛 벽지에 하얀 가구 등

공주님 방을 갖는 것이 꿈이었던 내 안의 소녀가 깨어났던 것 같다.



침대가 배송되던 날, 딸보다 내가 더 기뻤다.

그렇게 나의 소원을 딸을 통해 채웠던 것 같다.




정작 딸은 어릴땐 엄마가 좋아서 옆에 자고

좀 커서는 혼자인 엄마가 걱정되어 또 옆에서 자고



그 침대를 많이 써보지도 않고 결국 보내게 된 것이다.



큰 애에게 

침대 보내는 데 괜찮냐고 톡을 보내니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하는 걸 보면

딸의 침대는 나에게 더 소중했던 것 같다.


주말에 언니와 형부가 와서 침대를 가져갔다.



휑~해진 딸방에

공시공부할 때 쓰던 독서실책상 하나를 더 넣고

서랍장과 문구수납함을 넣어두었다.



딸은 침대가 없으니

공부하다 눕고 싶다는 유혹이 덜할 거 같다며

정말 공부방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서운한 건 내 몫일 뿐..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와 가전,

작은 그릇부터 소품들까지 모두

그 모든 것들이 추억과 기억이 담겨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새로 구입하고 새출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야 아픈 기억도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팠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아이들을 낳고

부대끼며 살아왔던 공간,

매일 함께 했던 가구와 가전

여러 소품과 물건들.



물건들에 내 마음이 깃들어있다는 걸 

침대를 떠나보내며 깨달았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대신,

남아있는 삶을 선택했다.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더 걸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련있어 보일지도 모르고

 그 기억들이 날 더 짓누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천천히 떠나보내는 걸 선택했다.



소중한 기억들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픈 것은 아픈 것 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대신, 새로운 것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이상 마음이 깃드는 대상을 만들고 싶진 않는 것 같다.



우리집에서 쓸모를 다하고 떠나버린 침대..

새로운 곳에서 더 쓸모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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