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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과 벌점

by 아침이슬

"선생님, 교무실 청소 할 거 없어요?"

"선생님, 저 오늘 수업 잘 들었는데 상점 주시면 안 돼요?"


학교에는 교내 생활규정에 근거한 상점과 벌점 제도가 있다. 교사에게는 상점과 벌점을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상점과 벌점은 각각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계산된다. 벌점이 일정 점수 이상 쌓이면 학부모 상담이나 선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상점과 벌점에 연연하는 이유이다.


학교라는 곳에 처음 발을 내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외재적 동기를 이용해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았다. 이런 제도 없이도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는 거 아닌가.

몇 주 후, 내가 자만했음을 깨달았다. 각종 제도와 규제는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는 법.


처음엔 심하게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 위주로 벌점을 부과했다. 내 딴에는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그들에게 페널티를 준다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별 타격이 없었다. 벌점 따위가 무서웠다면 수업을 방해하지도 않았겠지. 무엇보다, 벌점을 주는 과정에서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들 이름만 계속 호명하는 상황이 생겼다. 별 타격도 없는 벌점을 계속 남발해 봤자 크게 좋아지는 건 없었다.


작전변경. 벌점 대신 상점을 주기로 했다.

수업시간에 대답을 잘하거나, 집중을 잘하는 학생들에게 상점을 줬다. 수업 중 깨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상점을 주는 날도 있었다. 부정적 강화보다는 긍정적 강화가 낫다고 믿었다. 수업시간에 나와 눈 마주치고, 내 질문에 대답하고, 나와 호흡하며 수업을 잘 따라오는 아이들을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음을 반성했다.


학창 시절, 나는 수업 중 엎드리지 않고 매시간 선생님의 모든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던 학생이었다. 심지어 수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으로 여기던 기술가정이나 교련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과의 눈 마주침이나 내 대답에 대한 끄덕임과 칭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동기부여였다. 그때를 떠올리자, 더더욱 벌점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도 수업을 성실하게 듣는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빛을 교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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