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귀엽다는 말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섰다. 통모짜 핫도그가 먹고 싶다는 초등학생 딸과 상가가 밀집해 있는 동네로 향하는 길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제법 번화한 거리에 다달았다. 학원이 끝났는지 건물에서 나오는 학생이 여럿 보였다.
'어? 많이 보던 교복인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복임을 알아챔과 동시에, 학생 무리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 학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어? 선생님!"
내가 수업 들어가는 학반의 학생들이었다.
"어? 안녕!"
옆에 서있던 학생들도 모두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근무하는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편이다. 짧은 출퇴근 시간이 매력적이라 고민 없이 기간제 교사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학기 초엔 동네에서 학생들을 마주칠까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3개월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안심하고 다녔는데 무방비 상태로 적에게 노출된 느낌이랄까. 사는 곳이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공개할 마음이 없었기에, 순간 당황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더 신경 쓰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딸은 어리둥절해했다.
"학원 갔다 오는 거야? 얼른 집에들 가라. 잘 가~"
두 손을 흔들며 얼른 보내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와 동시에 무리 중 한 명이 옆에 있던 봉고차에 대고 소리쳤다.
"야, 여기 S선생님 있다~!"
그러자 봉고차 안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아... 안녕."
이렇게 인사를 잘하는 아이들이었던가. 너네 수업시간에 다 자거나 멍때리던 애들 아니었니. 학원은 왜 다니는 거야.
그때 한 여학생이 외쳤다.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귀에 꽂혔다.
"꺄~ 개 귀엽다!"
그 학생의 시선은 내 옆에 멀뚱멀뚱 서있던 딸을 향해 있었다.
"그, 그래. 얘들아 잘 가. 안녕!"
아무렇지 않은 척 아이들과 인사하고 딸의 손을 잡아끌었다. 원래의 목적지를 향해 조용히 걸었다. 그때, 딸이 말했다.
"엄마가 아는 언니오빠야?"
"응. 엄마가 가르치는 학생들이야. 여기 학원 다니나 봐."
"아... 엄마, 아까 그 언니가 나한테 개 귀엽대."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오히려 딸이 입을 열었다.
"왜 언니오빠들은 개라는 말을 붙이지? 진짜 이상해."
"그러게..."
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짜 귀엽다는 표현이었다고 느꼈는지 제법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뒤, 교내에서 그 여학생을 만났다. 평소 수업시간엔 거의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교과서 대신 다른 것에 늘 열중하던 아이였다. 학교 밖에서 마주쳤던 게 꽤 특별한 경험이었는지, 전과는 다르게 먼저 아는 체 하며 다가왔다.
"샘, 안녕하세요."
"어, 안녕?"
그리고는 친근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선생님 딸 개 귀엽던데요?!"
"..."
칭찬인데 면전에서 들으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뭔지모를 찜찜함이 있던 그 날, 다른반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슬쩍 물었다.
"좋거나 이쁠 때 '개'라는 말을 붙이는 거... 100% 좋다는 뜻 맞아?"
"네!"
"근데 느낌이 뭔가 이상해서... 나쁜 의미는 없다는 거지?"
그리고 알게 됐다. 나름대로 순화해서 쓴 말이라는 걸. 강조의 의미를 담고 있는, 더 속된 표현을 한 단계 정화해서 붙이는 수식어라는 설명도 들었다.
그 후로 몇 주가 지났다. 그 여학생은 여전히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는다. 때로는 학교 밖에서만 만나야 반가운 사이도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