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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K모닝 Nov 06. 2023

요리의 재발견


얼마 전 친구의 소개로 신랑과 함께 틈틈이 정주행 한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이 드라마는 강창래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말기 암을 선고받은 아내(김서형)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요리를 배우는 남편(한석규)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병이 깊어질수록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늘어난다.

남편은 오직 아내의 소중한 한 끼를 위해 좋은 식재료와 건강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쏟으며, 서툴지만 음식과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


출처 : Watcha  이미지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감정이 이입되어 종방을 본 지 며칠이 지나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암 선고를 받은 아내가 남 일 같지 않고,  서툴지만 요리를 배워가는 남편도 내 모습 같아 동병상련을 느낀다.

부부로 평생 산다고 가정한다면, 언젠가 누군가 한 명은 먼저 보내야 하는 상황은 반드시 온다.  

그 상황이 서둘러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상황이 되면 나 역시 신랑을 위해 기꺼이 요리를 하겠지?

한편, 음식에 대한 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우리는 평생 먹고산다.

먹고. 살고… 최소 50 대 50은 되었어야 했다.  

한국에서 나는 먹는 것과 사는 것에 20:80 정도의 비중을 두고 살았던 것 같다.

음식은 나에게 단순히 배를 부르게 하는 수단이었다.

일을 하기 위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필요조건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후에도 10여 년간을 친정엄마의 전적인 보살핌으로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를 이만큼이나 키웠다.

그 과정에서 양육과 직장에서의 커리어는 기억하지만, 음식에 대한 존중은 내 안중에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원래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라, 뚝딱하면 나오는 건 줄 알고 살았다.

그 안에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다는 음식의 가치를 깨달았을 리 만무하다.   


영국에 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기댈 친정엄마도 안 계시고, 오롯이 내 가정은 내가 책임져야 했다.

많이 늦은 감이 있는 진정한 독립이었다.

밥솥에 밥만 겨우 할 수 있는 정도,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미역국, 떡볶이 정도였던 내가 갈비찜을 하고, 김치, 아귀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정착 초기에는 매 끼니를 준비할 때마다  2-3시간이나 소요되어서 요리는 힘들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 되어 버렸다.

영국에서 먹고. 사는. 것의 실질적 시간 소요 비중은 50:50이 되었지만, 심적으로는 여전히 20:80 비율로 음식을 홀대하고 있었던 나를 발견한 것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남편이 아내를 위해 만드는 요리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성장하 듯,  나도 이 드라마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해 놓치고 있던 생각들을 다잡아 보게 되었다.  

먹고사는 것에 마음속 비중을 50:50으로 맞추고 음식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려 한다.  


요리는 사랑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거니까.
그 사람이 먹고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하고,
그 사람이 먹고 건강해지면 나도 건강해지는 거야.


의무감이었다고 생각했던 요리가 사실은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나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었다.  

우리 아이들과 신랑이 내 요리를 먹고 맛있어하고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맛있는 음식은 마음으로 만들어진다.


음식은 삶의 기록이야.
내가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만 보면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어.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어떤 사람들과 만났고,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말이야


음식은 삶의 발자취였다.  무엇을 먹고살았는지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고, 지금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있다.  음식은 그 시절 추억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삶의 질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음식이다.


요리는 과학이자 예술이야.
과학적으로 식재료의 성분과 구조, 열과 압력,
화학반응과 물리변화 등을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고,
예술적으로 재료와 기술, 감각과 감성을 조화롭게 표현해야 하거든


요리를 과학이자 예술이라 감히 논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확실히 식재료에 대한 지식과 요리에 대한 응용력은 점점 늘어간다.

요리할 때 맛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덤으로 얻게 되는 스킬이다.


나는 음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고, 음식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이미 나누고 있었다.  내가 하는 요리가 내 삶과 가족에 미치는 의미와 가치가 결코 작지 않음을, 음식은 가족을 하나로 모으고 식구로서 지탱하게 하는 구심점이라는 것을 닫게 해 준 고마운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음식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더욱 갖게 되었고, 요리를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나

여러 가지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나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고자 영양과 맛, 사랑과 감사를 요리에 담아주는 나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맛있게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는 나

음식에 대한 삶의 무게를 인식하고, 한 끼 식사에 대한 정성과 소중함을 아는 나


이제 일상의 행복을 즐길 준비가 되었다.  


I AM READY!


5년간 작성해 온 나의 요리 레시피 아니 요리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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