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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 Oct 21. 2024

개방 병동과 엄마 -1

엄마의 입원, 개방 병동, 의료진과 환자들

작년 10월 초 가을이 한창일 때 엄마는 심한 불면증과 불안장애 증상으로 정신과 개방병동에 열흘간 입원하셨다.

보통 입원환자 본인만 입원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경우 보호자의 동행이 허락되어 나도 같이 들어오게 되었다.

엄마는 2021년 5월쯤 유방암이 발견된 뒤 2023년 봄까지 2년여 힘든 항암 치료와 유방절제술을 받으면서 몸이 쇠약해져 거동이 부쩍 불편해지셨다. 아무래도 연세가 80대 후반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워낙 초기에 발견된 것이어서 다행히 완치되었지만 젊은 사람에게도 힘든 치료인지라 잠을 잘 못 주무시곤 했고 입맛이 없어 잘 못 드신 채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있거나 누워만 계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몸 특히 다리 근육이 급격하게 빠져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불면증뿐 아니라 이명까지 오고 엉덩이 근육이 빠지면서 요실금까지 생겼다. 안 그래도 그리 당당하고 자존심 강하던 분이 집안에서도 걷다가 여러 번 넘어지고 팬티에 자꾸 실수하다 보니 점차 위축되어 가다가 별거 아닌 일에도 심하게 예민해지고 불안해하는 증상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엄마의 변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자존감 하락이 자기 비관으로 이어지면서 불안 증세로 연결되기 쉽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불안 증상과 불면증이 많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었다.


한동아 어떻게든 엄마의 불면증이라도 좋아지게 하려고 나름 애썼다. 잠만 잘 자도 덜 예민해지고 마음의 안정을 비롯해 입맛이 돌아온 것에도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생겨서 결국 암 치료 담당 의사 선생님께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소개받고 통원치료하게 되었다. 그런데 종합병원의 특성상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환자 상태를 관찰하기 어려워 보호자 및 환자와 몇 분 대화하고 증상 설명을 들어본 후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증상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약 용량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정신과 약만 드시면 말과 걸음도 더뎌지고 하루종일 늘어져서 잠만 주무시려 하는 것이었다. 언뜻 아이의 봉사 활동으로 요양원에 들렀을 때 보았던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그곳의 노인들은 모두 누워있었으니까.  나중에 이러한 엄마의 증상을 말씀드리니까 선생님은 약의 정확한 처방이 필요하다면서 입원을 권유했다. 약 종류의 변화와 용량을 조절하며 24시간 상태를 관찰하면서, 적어도 엄마가 밤에 잘 주무시고 낮에 활동을 원만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맞는 약과 적절 용량을 찾을 때까지 입원해 보자는 취지였다.


사실 정신병동에 대한 편견으로 괜히 엄마를 입원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여러 차례 권유를 거절했다. 상태 악화로 결국 입원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입원 당일까지 그만둘까 말까 많이 갈등했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른다. 으레 정신과 입원병동이라고 하면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연상되었고 그 안에서 고생할 엄마를 상상만 해도 너무 가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밝고 좋았다. 모든 병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통창이 커서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복도를 왕복운동하고 있었고 복도 중간에 마련된 프로그램실 창문으로 수업하는 모습도 보였다. 공동거실은 널찍해서 몇몇 환자들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신문, 책 등을 읽고 있었다. 처음엔 들어오기 싫다던 엄마조차 시간이 갈수록 점차 마음에 들어 하셨다. 얼마나 금방 마음에 드셨는지 입원 첫날밤부터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적극 추천하고 딸이 데려왔다고 자랑하실 정도였다. 간호사선생님과 의사 선생님들 모두 좋으신 분들이었다. 입원 생활 열흘간 단 한 번도 얼굴 붉히거나 무뚝뚝한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환자들과 얘기할 때 미소부터 지으면서 친근하게 대하셨다. 특히 나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대화 시 못 알아들으면 수기 도움이 필요했는데 선생님들은 매번 그리 도움을 흔쾌하게 주셨다. 입원 닷새째 되니까 아예 종이와 펜을 가지고 다니시더라.


보통 회진 풍경을 생각하면 의사가 뒤에 인턴과 레지던트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덤덤한 어조로 환자의 상태와 진료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금방 나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엄마의 주치의 선생님은 여자분이셨는데, 병실 입구에서부터 밝고 큰 목소리로 “어머니 간밤에 잘 주무셨어요? 식사 어떠셨어요? 변비 괜찮으세요?” 하고 여러 안부를 물으면서 들어오시고선 엄마 손을 꼭 잡고 침대 위에 20여분 간 앉아 얘기 나누다 가셨다. 물론 이 일련의 행동들은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동시에 대화를 통해 인지력, 어휘력, 판단력, 기억력 등 전체적으로 정확히 상태를 관찰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안다. 그럼에도 너무 고마웠던 것은 침대 위에 앉은 엄마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옆에 덩달아 앉아 손 꼭 잡고 웃으면서 엄마를 편하게 해 주려는 섬세한 마음새였다.  매일 회진 때마다 변함없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모습에 나랑 동갑이었지만 참 존경스러웠다. 의사와 환자 보호자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개인적으로 친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가끔 사적인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둘째와 선생님의 아이 나이도 비슷하더라. 살짝 사춘기에 들어간 아이에 대해 부모로서 의견을 짧게 나누기도 했다. 아무리 정신과 의사더라도 세상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은 쉽지 않은 존재 구나 싶었다.


입원 환자들 대부분 의외로 스스로 들어오거나 부모 동의하에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개방병동의 경우 폐쇄병동과 다르게 불면증이나 경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약으로 조절 가능하고 일상 대화와 생활이 가능한 사람들이 정확한 증상 관찰과 약 조절을 위해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기가 있는 용도실에 물병 물을 채우러 가다가 입구에서 남편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입원 수속을 밟으려 혼자 들어오는 아내를 우연히 보았는데 참 우아하고 멋진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어떤 날엔 아무리 봐도 20대 후반인데 바리바리 책을 담은 에코백을 메고 혼자 들어온 청년도 보았고 른 날엔 양복 차림으로 서류 가방과 배낭을 메고 들어오는 남성도 보았다.  입원해서도 일할 생각인가 싶었다. 그들 모두 외부에서 보았을 때 전혀 정신과 병동에 입원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엄마는 불면증이 있는 여성 환자들만 모인 4인실 방에 배정되었는데 그 방에서 만난 사람들도 스스로 들어오거나 가족 권유로 들어왔다고 한다.  다른 병실 환자들 역시 타인에게 지나친 관심을 두지 않았고 특히 서로 비슷한 상태임을 알아서인지 배려가 컸다. 열흘간 그녀들과 얘기 나누고 같이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마음이 유리같이 여리고 섬세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흔들리고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걸까 그래서 생각이 너무 많아 잠을 잘 못 이루나 싶었다. 엄마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어떤 일상적인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았거나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해하는 을 보면서 당황한 적이 좀 있었다. 그들은 엄마뿐 아니라 누군가 낮잠을 자면 병실을 나갈 때 슬리퍼를 끄는 소리 안 나게 아주 살살 나갔다. 특히 한 아주머니와 젊은 여학생은 엄마 식사를 끝낸 후 입을 닦아드리고 옷에 흘린 음식을 치우는 동안 식판을 어느새 말없이 대신 치워주곤 했다. 나는 잘 못 듣고 엄마는 가는귀가 먹었다 보니 간호사실에서 약 먹으러 나오라고 공지하는 것을 가끔 놓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누구든 다가와서 같이 가자고 알려주기도 했다. 사실 나는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와 발음을 잘 구분 못하다 보니 누군가 말을 걸면 무척 불편했다. 보청기의 특성상 상대방의 목소리와 발음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조용한 배려들이 참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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