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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의 목표는 분명하다.
학생의 자기주도성 함양, 학습 동기 유발, 미래 사회 핵심 역량 강화, 다양한 진로 탐색 기회 제공.
이 중 어느 하나도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목표가 실제로는 작동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교육부는 과목을 쪼개어 늘려놓으면 나머지는 학생 스스로 해결할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으로 실패를 내포한 낙관일 뿐이다.
만약 고교학점제가 바르게 작동한다면, 학생의 선택은 곧 진로와 전공으로 이어져야 한다.
상경계 학생 A: 고2부터 수학Ⅰ·Ⅱ, 미적분을 배우고 진로 선택 과목으로 경제 수학을 택해 수요·공급 함수, 최적화, 확률적 의사결정을 익힌다. 국어에서는 경제·경영 관련 텍스트를 분석하며, 사회탐구에서는 경제·사회문화, 정치와 법, 세계지리로 시야를 넓힌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과학 기초를 통해 통계·코딩을 배우며 전공으로 연결된다.
공학계열 학생 B: 고2에서 수학Ⅰ·Ⅱ, 미적분을 기반으로 삼고, 고3에서 인공지능 수학으로 벡터·행렬·확률·최적화 개념을 익힌다. 과학탐구에서는 물리Ⅱ와 정보과학을 선택하고, 과학과제연구에서 빅데이터 분석과 AI 윤리를 탐구한다. 국어에서는 과학기술 텍스트를 읽고 논술로 정리하며 전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라면 학생의 과목 선택 → 학문적 기초 → 대학 전공 → 미래 역량이 하나의 경로로 연결된다. 이것이 고교학점제가 내세운 원래의 목표다.
대학은 이러한 과정을 강제할 수 없다. 학교마다 과목 개설이 달라, 어떤 학생은 선택 기회를 얻지만 다른 학생은 애초에 시도조차 못한다. 지역별·학교별 격차는 불가피하다.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 대학은 결국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가를 고려할 수 없다. 오직 몇 점을 받았는가만이 입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학생의 과목 선택은 공허해지고, 대학 입시의 실질적 기준은 여전히 성적 줄 세우기뿐이다.
교육부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공동교육과정, 온라인 수업, 거점학교 운영 같은 대책을 내놓았다². 그러나 실질적으로 구축할 역량은 없다. 교사 인력도, 인프라도,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하다.
그 결과 더 이상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했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학생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시간을 채우고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과목을 찾는 일뿐이다.
교육부가 내놓을 수 있는 평가는 뻔하다.
“설문조사”라는 형식으로, 선택 과목은 충분했는가? 수업은 만족스러웠는가? 같은 문항을 던지고, “만족도 70% 이상”이라는 수치를 결과로 발표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문은 전혀 본질을 담지 못한다.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실제로 늘었는지, 핵심역량이 강화되었는지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¹.
그럼에도 교육부는 이를 체계적으로 적용하지 못한다. 정밀한 지표를 만들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가장 쉬운 방식으로 “만족도”라는 모호한 수치만 내세우는 것이다.
결국 설문지는 정책의 성패를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성공을 포장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 제도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딱 좋다.
학생은 “우린 선택했을 뿐, 과목이 엉망인 건 교육부 책임”이라고 말한다.
교육부는 “선택권은 줬는데 학생들이 동기를 못 찾은 것”이라며 학생 탓을 한다.
대학은 “과목 경로가 제각각이라 공정하게 반영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외면한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제도는 공허한 껍데기만 남는다.
고교학점제가 이상대로 작동한다면 학생의 선택은 진로와 전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택과 입시가 단절되어, 학생이 얻는 것은 자기주도성도, 핵심역량도 아니다. 남는 건 오직 눈치다.
입시에 불리하지 않게, 성적 따기 좋은 과목을 고르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 된다. 반대로 “미련하게” 자기 길을 고집한다면 남는 건 재수·삼수뿐이다. 고교학점제는 미래를 준비하는 제도가 아니라, 눈치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제도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실패하지 않는다. 애초에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를 가를 방법 자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핵심역량이 강화되었는지 아닌지를 검증할 지표가 없다. 만족도 조사 몇 장으로 ‘70% 긍정’이라는 수치를 만들어내면 언제나 성공처럼 포장된다.
고교학점제는 실패할 수 없는 제도다. 실패를 측정할 방법이 없으니, 언제나 성공으로 기록된다.
OECD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AAC(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와 같은 국제적 평가 체계는 문해력, 문제해결력, 메타인지적 학습 역량 등을 측정하는 정량적 도구로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교육부는 격차 해소를 위해 공동교육과정, 온라인 수업, 거점학교 운영을 제시했으나, 이는 발표된 대책일 뿐 실제 실행 역량은 매우 제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