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티븐 킹이 '캐리'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린 이유

by 아침산책

1973년 겨울, 메인주의 낡은 트레일러 하우스. 세탁기와 건조기 사이에 겨우 끼워 넣은 작은 책상에서, 한 남자가 타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방금 쓴 세 장의 원고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남자가 바로 스티븐 킹이었다. 그리고 그가 버린 원고는 훗날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될 '캐리'였다.


가난한 교사의 도전


당시 스티븐 킹의 삶은 팍팍했다. 아내 타비사는 던킨도너츠에서 야간 알바를 했고, 그는 햄든 아카데미라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여름에는 산업용 세탁소에서 일했고, 관리인과 주유소 직원으로도 뛰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꾸려가기도 벅찬 시절이었다.


킹은 자기 타자기조차 없었다. 아내가 대학 다닐 때 쓰던 올리베티 타자기를 빌려, 세탁실에 임시로 마련한 책상에서 글을 썼다. 그가 주로 기고하던 곳은 '캐벌리어'라는 남성지였다. 여성 누드 사진 뒤에 묻힌 그의 단편들은 그에게 '남성 작가'라는 꼬리표와 날선 비판을 안겨주었다.


"당신은 거친 남자 얘기만 쓰잖아요." 한 독자가 그에게 말했다. "여자에 대해서는 못 쓰죠. 여자가 무섭나 봐요."


킹은 이걸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캐리'의 불씨가 시작되었다.


여자 탈의실에서 시작된 이야기


학교 관리인 일을 하면서 여자 탈의실을 청소하던 어느 날, 킹의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소녀가 생리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기가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장면. 다른 애들은 그걸 보고 비웃고 놀려댔다.


텔레키네시스(염력)에 관한 기사에서 읽은 내용과 합쳐지면서, 이 아이디어는 더욱 흥미로워 보였다. 킹은 타자기 앞에 앉아 샤워실 장면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페이지를 쓰고 나서, 그는 손을 멈췄다.


네 가지 이유


킹은 자신의 회고록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서 원고를 버린 네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이야기가 자기 마음을 건드리지 못했다. 둘째, 주인공 캐리 화이트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셋째, 배경과 여자 조연 캐릭터들을 만족스럽게 그릴 수가 없었다. 넷째, 가장 중요한 건 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남성지에는 헐벗은 치어리더 사진들 넣을 자리를 충분히 남겨둬야 했기 때문에 긴 소설은 인기가 없었어요. 그게 남자들이 진짜로 그 잡지를 사는 이유니까요.” 킹은 씁쓸하게 회상했다.

"2주, 어쩌면 한 달을 들여서 내가 좋아하지도 않고 팔지도 못할 중편소설을 쓰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포기했죠.”


그는 원고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쓰레기통을 뒤진 아내


다음 날, 킹의 아내 타비사는 세탁실 쓰레기통을 비우다가 구겨진 종이 세 장을 발견했다.

그녀는 담배 재를 털어내고 구겨진 종이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킹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 원고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거 계속 써봐." 그녀가 말했다. “결말이 궁금해."

킹은 고개를 저었다. "난 고등학교 여학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타비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내가 도와줄께."

그리고 그녀는 결정적인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건 뭔가 될 것 같애. 진짜로."


50페이지를 쓰고 나서


타비사로부터 10대 소녀의 관점에 대한 조언을 받으며, 킹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캐리 화이트는 맘에 들지 않는 캐릭터였고, 수 스넬이 자기 남자친구를 캐리와 프롬파티에 보내는 동기도 신빙성이 없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있어어요. 작가로서의 전환점이라고 할까요. 타비사는 그걸 직감했고, 저도 원고를 50장 정도를 쓰고 나서는 깨달았지요."


1972년 12월, 킹은 '캐리'를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결심하고 장편소설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는 가짜 잡지 기사와 문서들을 만들어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다. 이 과정은 꽤 재미있었다.


1973년 11월, 킹의 원고는 편집자이자 친구인 빌 톰슨에게 전달됐다.


인생을 바꾼 전화 한 통


1974년 4월 5일, '캐리'는 3만 부 초판으로 세상에 나왔다. 1975년 4월에는 뉴 아메리칸 라이브러리에서 페이퍼백으로 나왔다.


얼마 후, 빌 톰슨이 킹에게 전화를 걸었다. '캐리'의 페이퍼백 판권이 시그넷 북스에 40만 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37억 원. 상상도 못 할 금액이었다.


특히 1976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가 개봉된 뒤, '캐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400만 부나 팔렸다.


작가 자신의 평가


아이러니하게도, 킹은 1983년 플레이보이 매거진 인터뷰에서 '캐리'를 "서툴고 예술성이 없다"고 평했다. 자기 데뷔작을 완벽하게 사랑하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창작 면에서도 경제적으로도, '캐리'는 타비사와 저에게 탈출구였어요. 우리는 그 책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죠."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전설


오늘날 스티븐 킹은 5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장편소설 65편, 단편소설 200편,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 각색.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모든 게 쓰레기통 속 구겨진 종이 세 장에서 시작됐다.


타비사 킹은 단순히 원고를 건진 게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재능을 봤고, 그가 보지 못한 가능성을 믿었다. 그녀는 그에게 계속할 용기와 여성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줬다.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만든 것의 잠재력을 믿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 구겨진 종이를 펴서 읽고 “이거 뭔가 될 것 같애”라고 말해줄 누군가다.

스티븐 킹에게 그 사람은 타비사였다.


그리고 그 세 장의 종이는 그의 작가 인생을 바꿨다.


https://morningwalkai.com/ebooks/?idx=4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