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산책 Jan 14. 2024

아내의 죽음

아내가 죽은 지 11년이 지났다.


아내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장례차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울음을 참지 못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들이 성인이 되었다.


아내가 가고 난 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 수많은 책을 읽었다. 임사체험, 전생, 양자물리학, 불교, 유체이탈. 사주.


아마존에서 수십 권의 책을 전자책으로 주문해서 읽었다. 사주에 관한 책도 읽고, 한글책이 이해가 안돼서 영어로 된 사주책까지 사서 읽었다.


매년 내가 예산부터, 사회, 결산까지 혼자 다 하는 외국기업의 인사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있었다. 11월에 하는 행사 이외에는 매달 별도의 모임이 있는데, 거의 1년 만에 나갔다. 한 여자 임원이 물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마누라가 죽어서 좀 경황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여자의 놀란 표정이 기억난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듣고 깜짝 놀라는 그 표정을. 아내가 죽고 나서 거의 2년간을 죽음에 대한 책만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만 했던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인간들은 정말로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는구나."


그러나 나에게는 죽음은 나의 생각의 전부였다. 그때는.


그래서 그 수많은 책들을 읽고 나서 나는 결론을 얻었을까. 답은 "아니요"다. 죽음은 음식과 비슷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그 음식에 대한 설명이나, 사진이나, 그 무엇도, 실제로 그 음식을 먹어보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다.


죽음은 죽어봐야 안다는 것. 내가 죽음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얻은 유일한 깨달음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있다. 나는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인간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천박한 세계관의 노예였다.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의 과학은 바닷가의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고, 바다를 전부 아는 것처럼 좋아하는 아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지 못하는 물질 (Dark Matter)가 우주의 80퍼센트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이 세상의 20 퍼센트 밖에는 알지 못하는 무지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무지한 존재들이 신의 섭리를 얘기하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내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 세계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홀아비만 할 수 있는 조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