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번역본으로 읽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원서로 되풀이해서 읽은 이 책은 조지 기싱이라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국 소설가의 유일한 걸작이다. 이 외에도 많은 소설을 썼지만 어느 책도 성공하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 책은 현실에서 성공하지 못한 책벌레가 쓴 일종의 자기위안을 위한 허구의 이야기다.
기싱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지만 공부를 잘해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수재였다. 그러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매춘부와 정의감과 사랑이 섞인 감정에 빠져서 그녀와 결혼하고, 학교를 중퇴한뒤, 책을 써서 생계를 해결하는 인생을 택한다. 그 매춘부와는 이혼하게된다.
정상적인 경로를 밟을 수 있었고, 학문적인 소질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인생의 선택 때문에 그는 반골기질의 작가가 되었고, 노동계층의 어려움을 묘사한 소설을 여러권 발표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는 그가 오로지 펜에 의존해서 살아가던 말년에 쓴 책이다. 기본 줄거리는 기싱 본인과 똑같이 삼류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어렵게 살던 작가가 동료작가가 유산으로 남겨준 상당한 돈을 받게 되면서 전원으로 은퇴하여 유유자적한 생활을 3년 정도 하다가 조용히 죽는다는 이야기다.
현실은 이와 전혀 달라서 기싱은 재혼한 프랑스 여인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다가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다. 열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도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읖조렸다고 하니 타고난 책벌레인 것은 틀림없다.
가난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 갈망을 가진 청년이 평생을 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로또 당첨 비슷한 행운으로 편안한 만년을 보낸다는 이 책의 설정은 점심 값을 아껴가며 책을 사보았던 나의 20대 대학시절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당시의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치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음미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헨리 라이크로프트는 런던의 허름한 자취방에 살면서 잡지사에 글을 팔아서 하루 하루 연명하는 무명작가다. 성공을 최고의 미덕으로 보는 현대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라이크로프트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물론 20대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먹을 음식이 없을 때도 글을 팔아 번 돈으로 헌책방을 기웃거리며 라틴어 고서를 사서 읽는다. 책을 살 돈이 모자르면 식비를 책값에 쓴다.
고전어에 소질이 있었던 저자답게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에 관한 글도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문학청년 시절의 회상, 은퇴한 전원에서 즐기는 고독과 자연에 대한 예찬, 당시의 영국사회에 대한 문명비판. 이런 내용들이 섞여있어서 내러티브가 있는 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책에는 주인공이 자신은 고전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감식안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하루 먹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문학노동가인 반면 사회는 점점 교양이나 문학적 소양과는 담을 쌓은 자본가들이 만드는 천박한 세상으로 변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자주 보인다.
아직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금전적 가치가 없는 지식에 대한 열정이나 순수한 예술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은 너무나 낡아버린 것이다.
나의 대학시절에 이 책은 항상 나의 가방 속에 있었다. 이건 정말 내 이야기인데 라고 생각했던 구절이 있다.
함께 책을 읽고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에 관한 글이다. 문장이 아름다와서 옛날에는 영문학 교재로도 쓰였던 기싱의 글을 오랫만에, 거의 30년만에, 번역해본다.
“나는 종종 책의 한 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싶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어 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공감을 하고 이해할 것이라고 변함없이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하나라도 있는가? 아니, 나의 감상에 대체로 공감해줄 사람이라도 있는가? 그러한 지성의 조화는 드문 일이다. 인생을 통틀어 우리는 그러한 조화를 갈망한다. 그런 욕망은 악마처럼 우리를 몰아가서 황량한 장소로 이끈다. 너무나 자주 그런 욕망의 끝은 진흙탕에 빠지는 결말이다. 우리는 결국 그런 꿈은 망상이란 것을 깨닫는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은 이런 것이다. 너는 혼자 살아야 한다. 그런 운명을 벗어났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물론 그렇게 상상할 동안만 행복하다. 그런 행복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적어도 쓰라린 환멸은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항상 진실을 직면하는 게 옳은 일이 아닌가? 헛된 희망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포기하는 마음은 점점 깊어지는 평안함으로 보상을 받는다. ”
I think sometimes, how good it were had I some one by me to listen when I am tempted to read a passage aloud. Yes, but is there any mortal in the whole world upon whom I could invariably depend for sympathetic understanding?—nay, who would even generally be at one with me in my appreciation. Such harmony of intelligences is the rarest thing. All through life we long for it: the desire drives us, like a demon, into waste places; too often ends by plunging us into mud and morass. And, after all, we learn that the vision was illusory. To every man is it decreed: thou shalt live alone. Happy they who imagine that they have escaped the common lot; happy, whilst they imagine it. Those to whom no such happiness has ever been granted at least avoid the bitterest of disillusions. And is it not always good to face a truth, however discomfortable? The mind which renounces, once and for ever, a futile hope, has its compensation in ever-growing ca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