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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과 Aug 11. 2019

흐르는 강물처럼

창작자의 권리



 대학원에서 졸업작품이자 처음으로 작업하는 장편 다큐멘터리로 '상실'에 관한 주제를 담아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유년시절에 느끼는 상실감과, 어른들이 동일하게 상실해가는 시간과 아픔들에 대해 열심히 관찰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노력중에 있다.  얼추 만들어가며 될 것 같았던 이 작업은 내게 나의 이야기도 해야만 하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듯 했다.  결국 이 영화의 신은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창작자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마치 상대방의 아픔을 듣기 위해 먼저 자신의 아픔을 꺼내야 하는 우리들의 대화처럼,  정말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지 묻는 듯 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하는 부담이 다가오자, 일종의 '생존'으로 다가온 나의 영화와 나의 이야기는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나의 상실과 두려움들과 대면해야 했다. 


극 중 형은 동생의 플라잉 낚시를 보며 예술같다고 느낀다.

 

 70살이 넘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 소설로 썼고, 그 소설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영화화가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판한 자신의 이야기였으며, 자신이 자라온 인생을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말에 빗대어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이다. 영화는 잔잔하게 이어지며 극적인 사건도 없지만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들이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세밀함이 느껴진다. 극 중 동생의 낚시를 보며 예술같다고 느끼는 장면, 자신의 빵에 생선조림을 넣어 먹자는 막무가내 동생의 행동에 갑자기 화가 나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들,


 이렇게 누군가는 자기 이야기를 꺼내 풀어내며 씨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빌려 예술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어느 감독은 신이 부여하는 창작자의 권리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말했다. '생존'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에게만 창작자의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예술을 접할 때, 나의 어딘가를 찌르는 듯한 반응을 느끼게 하는 예술들이 있고, 심드렁하니 이거 어디서 보거나 들은것 같은데 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예술(?)들이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진짜 자신의 것들로 예술을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것을 직면할 수 없어 타인의 것들로 급조해서 예술을 하는 것인지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된다.

 

 우리 모두의 인생엔 한편의 영화씩 모두에게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숨겨진 한편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자들이 예술가가 아닐까 싶다. 낚시질을 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낚시질을 하는 누군가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모든 것을 잃어가고 상실한 후 인생을 회고하는 한 사람의 읇조림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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