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도넛, 귀덕 밤마실
제주도는 왠지 이국적이고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져서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힘들 때 가면 풀리고, 좋을 때 가면 더 좋은 제주도라는 로망이 있다.
친구의 회사 동료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제주도에 놀러 가더니 결국 제주살이를 한단다.
나도 그 제주 앓이를 늘 품고 있다. 언젠가는 제주에서 살아야지.
제주! 제주! 제주!
요즘 머리도 복잡하고 눈이 시려서 자연을 좀 봐야겠다는 참이었는데, 누군가의 제주살이는 기름을 확 부어준다.
안 되겠다. 띠롱! 제주도 티켓 알림이 카톡으로 오고, 좌석 예약을 하면서 실감이 난다.
제주! 제주! 제주!
요즘 날이 좋아서 제주도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공항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다.
다행히 나는 지문 등록을 해둬서 기나긴 대기 줄과 상관없이 바로 공항 게이트를 통과했다. 늘 검표 없이 자동으로 열리는 김포공항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지문 등록은 정말 하기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가장 지루하면서 설레는 장소는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이다.
탑승 예정 시작 15분 전부터 줄 서는 한국인. 그 줄 초반에 나도 줄 서 있다. 후후.
구름을 보려고 늘 창가로 예약한다. 창문 밖을 구경하면서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제주도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히히, 너무 좋아. 마음 꼬리가 프로펠러로 돌아간다.
약한 비가 내려서 분위기가 있었다. 이 정도 비에는 운행에 상관이 없구나..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면 딱인데.
어느덧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서 날아가고, 작은 지상이 펼쳐졌다.
창문의 빗방울은 세로에서 대각선, 가로결이 되더니 아예 다 날아가서 창문이 깨끗해졌다.
구름층을 통과해서 올라가니 세상에-! 비 오는 흐린 풍경은 없고 한없이 맑고 하얀 구름만이 보였다.
평소의 보송한 솜구름이 아니었다. 습기가 많고 온도가 낮아서인지 마치 눈 밭 같은 구름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번 비행에서 가장 멋졌던 장면이 나타났다!
동그란 무지개라니!! 그리고 그 안에 비행기 그림자가 있다!
너무 신기하고 영화처럼 멋진 장면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찰칵 찰칵.
그리고 곧 제주도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제주도 공항의 캐릭터는 꽤 귀엽다. 들뜬 마음에 이번에는 캐릭터랑 사진 찍을까? 생각했는데 핸드폰으로 버스 시간을 보던 친구 N이 외친다.
"버스 왔다!!"
정말 유리문으로 버스가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지. 버스 문이 닫힌다. 아이고, 다음 버스는 40분 뒤에 온다. 캐리어를 안고 달렸다. 간신히 출발 직전의 버스를 탔다. 휴ㅡ 감사합니다.
숙소에 얼른 짐을 두고 애월로 향했다.
흐아아~~ 구름 좀 봐!
몽글몽글한 구름은 제주의 돌처럼 하늘 가득 있었다.
햇빛이 쨍하니 뜨거웠지만, 바닷가 바람 덕분에 돌아다니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서울도 요즘 날씨가 좋은데, 제주도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애월에는 바닷가를 따라서 카페가 정말 많다.
그중에서 눈에 띈 랜디스 도넛 카페.
아이언 맨, 로다 주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도넛이라고 광고하는 걸 봤다.
예전에 미국에서 먹은 도넛은 너무 기름진 축축한 타입이라 꺼려졌지만, N은 일단 뷰가 좋을 것 같다며 입장.
그래, 뷰를 먹으면 되지~
도넛을 1층에서 사서 2층의 카페에서 먹을 수 있었다.
막상 빈 속이라 도넛을 보니 배가 요동친다. 덜 기름질 것 같은 도넛으로 4개를 골랐다.
커피는 너무 싱거워서 아쉬웠지만 공복에 자극이 안 될 정도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카페의 뷰, 도넛의 맛은 정말 좋았다. 랜디스 도넛은 축축하지 않고 오히려 깔끔했다. N의 선택에 박수 짝짝짝. 그리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관광지인데 웃으면서 눈을 맞추며 응대하다니.
"와~ 여기 좋다~" N과 바닷가가 보이는 마지막 창가 자리에 앉으며 신났다.
바닷가 풍경을 눈으로 더듬다 보니 저 멀리 비양도가 보였다.
난 금릉~협재의 바다가 너무 좋다. 그리고 비양도에는 우도나 다른 섬보다 왠지 더 애정이 있는데, 이러다가 나중에 비양도에 사는 거 아닐까.
제주도에 왔으니 협재 바다를 보러 가야지. 비양도를 보니까 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오늘은 '귀덕 밤마실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협재는 내일 가야지. 여행과 먹을 것에는 계획이 착착 생긴다.
커피를 마저 후루룩 마시고, 테이블 위의 도넛의 가루를 닦고 나서면서 다시 1층의 도넛 가게에 들렀다. 기념품처럼 한 상자를 더 사서 귀덕으로 출발.
귀덕의 프리마켓에 도착했다. 프리마켓은 이미 열렸지만 아직 공연 시작하려면 시간이 남아서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N이 말했다. "저기 포스터에 나온 거북이 등대까지 가보자!"
그러고 보니 석상들 뒤로 거북이 등대가 보이네. 도넛 이후 N에 대한 신뢰도 상승.
열심히 항구를 향해서 걸었지만, 거북이 등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없어서 아쉬웠다.
어망을 펼쳐서 꼼꼼하게 손질하는 아저씨들과 커다란 석상이 덩그러니 있을 뿐, 크게 구경할 거리 없는 작은 어촌의 항구였지만, 서울 사람인 나에게 흥미로운 산책길이었다.
항구를 반 정도 되돌아오는데 음악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열정적인 공연이 멋졌다. 음악을 들으면서 프리마켓을 구경했다.
음악 공연이 끝나고 얼굴을 하얗게 분장을 한 남자가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눈길을 끌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바로 마임 공연이 이어졌는데, 능숙하고 유쾌한 공연이 너무 재밌어서 웃다 보니 해가 졌다.
마임이스트 삑삑이라고 했는데, 왜 삑삑이인지는 공연을 보니 알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삑삑'하는 소리만을 내는데, 신기하게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듣게 됐다.
처음에는 '공연이구나'하고 보다가 점차 빠져들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하하하 웃고 있었다.
하도 웃어서 얼굴 근육이 풀렸는지 공연 본 후의 사진 표정이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밝았다.
밤에도 음악 공연으로 분위기가 더 무르익었다.
사진을 찍는데 불빛이 카메라에 반사돼서 밤하늘에도 푸른빛이 수놓아져서 더 멋지게 기억된다.
귀덕 밤마실 프리마켓은 빵집, 서점 등 인근 상점에서 직접 나와서 판매하는 형식으로, 작은 마을 잔치 느낌이라 친근했다. 10팀 가량의 셀러들과 공연하는 팀도 서로 오래 아는 사이인지 편하게 즐기는 흥이 있는 잔칫날. 나 같은 방문자 티가 나는 사람에게도 눈이 마주치면 친근하게 웃어준다. 허리가 곱은 할머니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동네 사람들 모여서 소박하지만 그 날 하루 즐거운 날. 이런 게 제주의 매력이 아닐까.
나도 밤마실을 다녀온 제주 주민이 된 듯, 따뜻해진 미소를 안고 셀러 팀이었던 '달코롬 맛존디'라는 빵 가게에서 치아바타와 쿠키를 샀다.
숙소로 돌아가는 밤 길은 슈퍼문처럼 커다란 보름달 덕분에 영화 세트장처럼 너무 멋졌다.
마무리까지 멋진 엔딩. 까만 하늘에 시린 듯 하얗고 커다란 보름달.
역시 제주! 제주!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