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재 바다, 명월 초등학교 카페
#사랑하는 협재 바다와 비양도
다음 날, 내가 제주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협재 해변으로 갔다.
한낮의 협재 바다는 물이 꽤나 빠져나갔다. 물이 멀리까지 나갔을 때 젖은 백사장을 밟으며 바다 가운데로 가보는 것도 낭만적이다. 기온은 높아도 바닷물이 차가워서 몸을 담근 사람들은 없었지만, 햇볕이 따사로워서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줍는 사람들은 많았다.
에메랄드빛 협재 바다 위의 비양도는 너무도 선명하게 잘 보였다.
난 비양도가 좋다. 비양도를 지나갈 때면 눈으로 실루엣을 그려본다.
비양봉에 올라가다 마주친 귀여운 아기 흑염소들은 잘 컸으려나-
숲 어딘가에서 메에-소리만 들리던 아기 염소들과 우연히 눈이 마주치고 아기 염소들의 가녀린 소리는 뚝.
(∂¸∂) !? (˚Ω˚) ¡¿ ㆀ
서로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왜 여기 있어?'
아기 염소들이 놀랄까 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비양도를 보면 그 장면이 생각나서 웃게 된다.
# 다시 가고 싶은 명월 국민학교 카페
협재 바다와 비양도를 눈에 담고, 카페로 이동했다.
처음에는 폐교를 구경하러 온 건가? 당황스러웠다.
N.. 여기 왜 온 거야..? 뭔가 역사가 있는 곳인가? 물음표를 가지고 일단은 둘러봤다.
역시 국민학교 초등학교에는 밤 12시에 눈을 뜨는 동상이 있다.
독서는.. 다음에 뭐라고 쓰여있었나?
독서는.. 하고 있니?
독서는.. 눈을 뜨고?
약간 날도 흐려져서 폐교 분위기는 충분했고, 마침 아무도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호러 영화 도입부의 오프닝 엑스트라가 된 기분이었다.
과거 학창 시절에 내가 잘못했던 게 있었나 잠시 생각하게 만든 표지판.
좀 더 들어가니 산뜻한 하늘색으로 새로 페인트칠이 된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는 무슨 사연(?)이 있는 곳인가? 하며 설명 표지판을 봤더니 아하, 여기는 폐교를 카페로 전환한 곳이었다.
카페였구나. 흐흥. 다행히 엑스트라는 벗어났다.
카페 내부는 은은한 조명에 나무 인테리어로 따뜻한 느낌이다.
긴 복도를 따라 바 형식으로 자리가 있었다. 쭉 이어진 창문을 통해서 학교 뒤편이 보였다.
나무 바닥의 복도를 보니 청소 시간에 앉아서 열심히 문지르던 왁스 칠이 생각났다.
왁스 광으로 누가 더 반짝이나, 그때는 그것도 놀이였다. 음.. 나만 늘 뭐든 놀이였나?
커피는 진하면서 뒷맛이 맛있는 쓴 맛과 구수한 향미가 남는 기분 좋은 맛이었다.
당근 케이크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면서 '당케의 전당'에 올랐다! 사진을 보니 다시 떠오른다. 쩝.
넓은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를 구경하면서 진한 카푸치노를 호르륵.
애들과 개들은 뛰면 자동으로 웃는다. 다리와 입꼬리가 연결돼 있나 보다. 너무 귀엽다.
내가 뛰어다닌 것도 아닌데 배가 고파졌다.
저녁 식사는 검색해서 봐 두었던 '옹포 83'이라는 곳으로 정했다.
제주의 야자나무를 배경으로 한 이순신 동상은 광화문과는 다른 느낌.
#자극적이지 않은 옹포 83
기본으로 나온 귀여운 강낭콩과 신선한 샐러드는 등장과 동시에 사라졌다.
이름에 제주도 느낌이 가득한 '톳 크림 파스타'와 '게우 리조또'를 주문했다.
크림 파스타는 크림이 꽤 진득했고, 곁들여 나온 페스츄리도 맛있었다.
게우 리조또는 예상보다 맛이 연했지만 신선한 재료와 정성껏 만든 한 그릇이 감사했다.
정말 손이 많이 가겠는걸.. 요즘 요리에 약간 관심이 생겨서 요리조리 구경.
넓은 파스타 그릇은 싹싹 비워졌고,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었다.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어제의 보름달 같은 둥근 간판이 떠 있다.
제주도의 넉넉한 하루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