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백일이다. 겁 없이 시작했던 도전이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계획으로 가득 찬 인생에 무계획으로 점철된 글쓰기를 끼워 넣었다.
작년 한 해 나의 화두는 내려놓기와 비워내기였다. 마음속 욕심이 화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탐욕이 되어가는 걸 보기 두려워, 욕심을 내려놓고 화를 비워내려 애썼다. 상황이 어떻고 처지가 무엇이든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견뎌내 보자 다짐했다.
남편은 신은 불공평하다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파견을 가지 못 해 승진이 불투명해지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 한탄한다. 남편의 눈에는 뜬금없는 휴직에 들어가고 커리어를 포기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 나의 미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평온히 일상을 예전과 다름없이-무려 학교에도 가지 않고-살아가는 겉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렇다고 싸울 필요도, 서운할 이유도 없다. 각자의 인생이 우선이고 가장 소중한 건 당연하다. 나도 남편도, 하나뿐인 나의 인생을 열심히 지키며 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시련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다를 수 있다.
남편에게 준비되지 않은 때에 욕심을 냈기 때문이라 이야기했다. 그저 살다 보니 인생이란 꼭 내뜻대로 되지 않고 흘러가다 보면 어딘가에 와 있더라 싶은 게 있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신이 예비하신 길이 될 테고, 없는 사람들이라면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이다. 나라고 신앙심이 별다르진 않지만, 예비하신 길에 반항하지 말고 순응하고 순종하라 덧붙였다. 초월한 그 어떤 존재가 나를 위해 준비한 맞춤형 삶이라 생각하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싶어 초탈해진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기면 그리 안달복달할 것도 없다. 너무 못나게만 죽지 않으면 되겠구나 마음먹는다.
글쓰기는 이글거리는 내 마음과 머리를 차분하게 만들어줬고, 다시 신을 찾게도 해줬다. 인생에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거의 첫 번째 일이나 마찬가지인 이 글쓰기가 어쩌면 우연이 아닐 거라 생각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배웠고, 내가 자리한 곳을 묵묵히 지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다. 지금, 여기의 삶이 가지는 가치를 깨달았으며,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가 주는 감동도 크게 받았다. 나의 좁은 식견과 지경이 넓어지는 경험도 했다.
백일 간 삶의 단편을 기꺼이 나누어주고 또 환대해주신 여러분과의 작별이 아쉽다. 동료들 사이에서, 여러 만남의 장에서, 가족과 함께, 지금처럼 멋지게 살아낼 모두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하루하루의 두터운 이야기를 언젠가 무심코 집어 든 책에서 만나는 우연이 있길 바라본다.
반가웠고, 반갑고, 또 반가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