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3남매 중 차남이다. 큰아빠 부부는 딩크고, 우리 집은 나 하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대는 누가 잇냐며 아빠와 엄마에게 대놓고, 또 은근히 압박을 주셨는데 그때마다 짧은 월급에 둘씩 낳아 기르고 싶지 않다, 핵가족 시대에 대를 잇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시며 나 하나만 키우셨다.
엄마는 5남매 중 둘째로 그 옛날 서울로 유학 와 비싼 여대를 다니셨다. 격동의 시기에 대학생이었던 탓에 학교를 절반이나 다녔나 몰라, 라면서도 맨날 학교 아래 커피숍만 갔어도 다니긴 다닌 거야, 하신다. 진짜로 그 말이 맞는지 한동안 여성운동에 가담하셔서 미스코리아 공중파 방송 금지 피켓시위도 하시고, 드라마 모니터링도 꽤 오래 하셨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여성으로서의 독립성이 길러졌다. 경제적 자립이 기본이라 배웠고,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라 들었다. 동시에 여성이라 할 수 있는 일-임신과 출산-은 분명 축복이지만, 양육은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 하셨다. 여성이라서, 여성이니까, 라는 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났나, 첫 설을 앞두고 명절 당일 시집과 친정을 번갈아가며 가자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펄쩍 뛰었다. 결혼하면 응당 시집을 먼저 가고 명절 당일까지 보내고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 했다.
제사가 있으면 음식 준비라도 핑계를 대겠지만 시집은 제사가 없는 반면 친정은 제사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이다. 전통이란 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는 전통을 잘 가꿔나가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집은 늘 그래 왔다. 좋은 의견을 제시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분들이라 믿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딸이 무슨 죄길래 우리 부모님은 여생 동안 명절 당일에 자식 얼굴 한번 못 보냐!" 고 소리를 지르고야 끝났다.
논리와 이성과 합리를 무기로 남편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뒀다.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게 웃긴 일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 내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후로 시어머니께서 눈치껏 하길 바라는 전화와 설거지 문제 역시 피차 바쁜데 각자 집에 알아서 전화하는 걸로, 온 가족이 돌아가며 설거지하는 걸로 정리했다.
세상에 그런 대접을 해야 하는 사람도, 또 받아야 하는 사람도 없다. 일방적인 희생이나 강요는 모두를 병들게 만든다. 옛날에는 다 그렇게 살았다 한들 그것이 모두 옳지도 않고 따라야 할 필요는 더욱 없다. 어떤 것이 더 좋을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 따른다면 서로 덜 억울한 명절이 될 수 있다. 가정마다 쓸데없는 일은 버리고 남은 일은 함께 나누는, 따뜻한 명절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