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들어오는 창 앞에 피아노를 놓을 거예요. 그냥 피아노가 아닌 그랜드요. 그것도 아주 큰 그랜드 피아노예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연주하고 싶으니 방향도 고려해주세요. 가끔은 친구들과 소소한 모임도 할 계획이니 수도와 작은 싱크대를 놔주시고, 탁자와 의자가 들어갈 공간도 있어야 해요. 창문과 문을 제외하곤 방음공사도 부탁드려요."
막히는 시간을 피해 오후 3시쯤 악기사에 방문했다. 드디어 소망하던 피아노를 구매하는 순간이다. 넓은 공간에 차례로 늘어선 피아노 사이를 걸어간다. 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본다. 쨍쨍한 소리, 카랑한 소리, 또롱한 소리, 악기마다 내는 소리가 다르다. 그중 가장 동글 거리고 따스한 느낌의 피아노를 골랐다. 새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칠 힘이 남아있을 때까지만 버텨주면 된다.
회색과 탁한 붉은색이 교차된 방음 카펫이 바닥에 깔려있다. 소리를 흡수할 수 있는 방음재들이 가득한 잿빛 방음벽이다. 입구 쪽은 밖을 자유로이 볼 수 있도록 통창으로 만들었다. 해가 비추면 블라인드로 살짝 가릴 수 있다. 원목 탁자와 의자는 피아노 반대편인 오른쪽 벽으로 붙였다. 그 옆 작은 싱크 위엔 나무 선반을 달아 그릇과 컵, 잔을 올려놓았다. 옷걸이도 가져다 놓고 실내화도 준비했다. 뒤쪽 벽은 허리께 오는 수납장으로 가득 채웠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시간과 함께 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드디어 피아노가 들어온다. 눕혀진 채 다리와 분리되어 운반된 피아노는 제자리에 세워진다. 반질반질 윤이나는 겉면을 쓰다듬는다. 상단 뚜껑을 열어 고정시키곤 자리에 앉았다. 괜히 손을 꺾고 뻗으며 스트레칭을 해본다. 심호흡 후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곡은 뭘로 할까, 몇 달 동안 고민 끝에 결정한 그 곡이다. 들어주는 사람 한 명 없지만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
불을 끄고 문을 잠근다. 나오는 길이 아쉬워 몇 번을 돌아본다. 간판 하나 없는 썰렁한 곳이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장소다.
쓰고 보니 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빌기엔 너무 많고 디테일한 소원인 것 같다. 그냥 내가 이것저것 다 할 테니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말해야 하나. 매일 열심히 부르는 기가 지니-가 그냥 들어줬으면 좋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