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이다. 어린이병원은 이제 안녕이다.
40년 가까이 어린이로 살았다. 선천성 질환은 성인이 되어도 어린이병원을 다녀야 했다. 20대까진 그나마 괜찮았는데, 임신해서는 많이 불편했다. 태중의 아이에게 얼마나 큰 문제가 있길래 벌써 병원에 왔을까 하는 동정의 시선은 불쾌했다. 멀쩡한 내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미웠다. 괜히 엄마 때문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런 취급을 받는 건가 싶어 속상했다.
어린이병원 3층엔 소아심혈관센터와 소아암 병동이 있다. 무엇이 더 중하고 경한지 내가 판단할 순 없지만,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곳에 앉아있는 작고 어린 아이들을 보는 건 힘들다. 가만히 누워 검사를 받지 못해 억지로 재워 엄마 품에 안겨있는 아기, 검사가 끝나고도 늘어져있는 아기를 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듬성듬성한 채 불안한 눈빛으로 병동을 바라보는 아이, 병동 앞 긴 대기시간 동안 애쓰고 지친 보호자들까지.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광경에 눈을 둘 곳이 없다.
1층 엑스레이실 앞에선 아이들이 떼로 울고 있다. 그저 사진일 뿐인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소리 높여 운다. 누구 어머니, 누구 지금은 될까요? 가 돌림노래처럼 들린다. 모사가 님? 내 얼굴을 확인하곤 울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순서를 끼워 넣는다. 그렇게 내 차례는 자꾸 앞으로 당겨진다.
다시 3층에 올라가 검사실 앞에 앉았다. 뒷자리 아이는 계속 기침을 한다. 코로나 시국에 거슬릴 법도 하지만 어느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다. 기침으로라도 뱉어 살아있음을 표하는 것에 감사하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총출동한 가족도 있다. 품에 안겨있는 아기는 이름도 없이 이○은아기로 안내판에 떠있다. 여기에 올라오기까지의 긴 여정이 눈에 그려진다.
눈물이 나 힘들다. 엄마가 된 이후론 더 그렇다. 뛰노는 내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여 슬퍼진다. 그래서 어린이병원이 싫다. 다 큰 어른이 어린이들 사이에 멀뚱히 앉아있는 것도 별로지만,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은 건 더 싫다. 1층에서 제각각이던 울음소리마저 3층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생명의 기운이 사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저마다의 공포가 얼굴에 새겨져 있다.
지연 없이 진료실에 들어가 교수님을 마주했다. 결과를 살피던 교수님은, 이건 심장에선 정말 간단한 질병이고 오히려 혈압이나 콜레스테롤 관리가 필요한 나이가 됐다며 순환기내과로 보내주겠다 하셨다. 진짜 본원에 가도 되는 거냐 되묻는 내게 "그럼요, 그쪽에서 전반적으로 보는 게 더 나을 거예요."라 답하셨다. 이제는 선천성 질환 차원에서 일어날 일을 걱정하기보단 늙어가는 과정의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단다. 남들과 같은 걱정만 하면서 살면 된다는 말처럼 들려 기뻤다.
엄마가 안고, 스스로 걸어, 혼자 지하철을 타고, 마지막으론 차를 운전해 가는 것으로 39년의 어린이병원 여정이 끝났다. 더는 아이들 사이에서 울음을 참으며 빨개진 눈으로 오가지 않아도 되고, 살면서 한번 볼까 말까 한 모습을 때마다 보며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