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버스나 타도 됐었다. 길음역 가나요? 이 한마디가 귀찮아 한대를 보냈다. 버스 안내표지판을 스윽 훑어보니 모든 버스가 길음역을 갔다. 다음 버스를 탔다. 길음역 가나요? 네, 다음 정류장에 내리세요. 사실 걸어도 문제없는 거리였다.
매 주말 백화점에 갔다. 반짝거리는 것들을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산다. 사람이 보고 싶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갔지만 최소한의 대화로 물건을 구매한다. 구매하는 행위를 즐기러 가는 걸지도 모른다. 차를 주차하고 1층으로 올라와 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 또 지하철을 탄다. 백화점은 나만의 환승센터다.
지하철엔 사람들이 많다. 웃는 사람, 자는 사람, 멍한 사람. 나는 어떤 쪽의 사람일까 생각한다. 무서운 사람, 우울한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바란다는 건 그렇다는 걸 인정한다는 이야기일까.
백화점에서 나오면서 립스틱 하나를 샀다. 불황의 증거를 입술에 덧입힌다. 난 그래도 불행하지는 않잖아, 좀 더 주홍빛 도는 건 없나요. 결국 내 눈에만 차이가 보이는 다홍빛 빨간 립스틱을 집었다. 내 얼굴에 깃든 깜깜함을 지워주세요, 아멘. 하나님은 립스틱만큼은 즉각적이지 않으세요.
육아는 행복하다. 분명 기쁘고 즐겁고 벅차다. 예쁘다, 사랑한다, 으스러질까 무서워 내 소중한 아기를 조심스레 꽉 안는다.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는. 화를 내지 않는다. 아가야, 나는 네가 아들이기를 바랐단다. 여자의 삶은 고단해. 너는 똑똑하지 않기를 바라. 아니, 나보다 훨씬 똑똑해서 이 이상한 세상을 바꿔주렴. 아니야, 그냥 예쁘고 참하게 커서 잘난 남자한테 시집가렴. 미안, 엄마가 미친 소리 했어.
서른 살의 내 딸이 주말마다 백화점을 헤매고, 시간을 잃어버리고, 아는 것을 잊어간다. 끔찍하다. 비참하다. 나를 버리며 키운 내 딸만큼은 세상에 좌절하지 않게 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가야. 너는 너의 인생을 살렴. 치열하고 끈질기게 살아내렴. 너를 지키렴, 제발.
* 가장 외로웠고 힘들었던 때에 썼던 메모입니다. 컴퓨터를 정리하다 발견했는데, 그때의 내가 아직도 안쓰럽네요. 어린 아이를 두고, 휴직과 퇴직으로 사회와 단절됨을 느끼는 많은 부모님들께 위로를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