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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20. 2022

쇼팽, 왈츠 2번 라장조 Op.34-1

100일 글쓰기 - 33


쇼팽은 20여 곡의 왈츠를 남겼다. 왈츠는 춤곡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쇼팽의 왈츠는 춤추기에 적합하지 않다. 애초에 춤을 추기 위한 목적으로 작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쇼팽의 특징인 템포 루바토(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춤추기 적합한 곡이 op.18 화려한 대 왈츠와 op.34-1 화려한 왈츠, 이 두 곡 아닌가 싶다. 그중 op.34-1을 지난 쇼팽 콩쿠르 참가자의 연주로 열심히 듣고 있다. 벌써 4개월이 지났고 2라운드에서 탈락한 연주자임에도 아직 질리지 않는 걸 보면 좋은 연주와 순위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도입부는 마치 종소리 같다.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하게 이야기 나누던 남녀가 땡땡땡 울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춤추기 위해 달려 나간다. 그렇게 16마디 동안 준비를 마친 청춘남녀는 마주 보고 인사를 나누며 춤추기 시작한다.

상대를 탐색하며 몸을 움직이고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빠른 리듬과 함께 감정이 고조되며 바삐 움직이며 멀어진다. 이어지는 느린 리듬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온다. 아슬아슬한 대화가 제법 길게 이어진다. 먼발치와 눈앞을 오가는 서로의 거리에 어지럽다. 마음이 닿지 않는 상대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이 다가오며 반복되는 음들 속에 시야가 넓어진다. 긴장이 풀리고 여유가 생긴 탓이다. 흘끗 옆사람을 살피다 마주치는 눈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왈츠는 끝난다.

춤출 수 있을 법한 적당한 템포에 부드러운 오른손의 멜로디를 얹고 다시 왼손의 왈츠 리듬이 더해진다. 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며 그림을 그려낸다. 남녀가 빙글빙글 돌며 스치는 손끝에 설레고, 시선의 끝에 마주치는 눈빛에 상기되는 그 느낌을 정말 완벽히 표현해낸다.

언제 들어도 설레는 곡이다.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다. 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밝아진다. 음악의 무서운 힘이다.




* 젊은 시절 키신의 연주입니다. 키신은 앙코르곡이 많기로 유명하고, 시작 전 곡목을 알려주는 친절한 연주자이죠. 영상의 연주도 어느 리사이틀의 앙코르 중 하나인 듯합니다.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sl0BXQOID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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