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주제 파악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고 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해서, 괜히 마음이 동한다고 나서거나 잘할 수 있는 걸 뒤로 빼거나 하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능력 범위 내의 것만 한다. 그러다 보니 실패하는 일이 적다. 대신 일단 시작하고 나면 남들이 보기엔 실패라 할 수 있는 일도 나에겐 과정일 뿐이다.
임용고사를 3번 봤다. 첫해엔 어떤 시험인가 알아보느라 봤고, 두 번째 해엔 시험을 앞두고 6개월간은 공부에만 전념했다. 합격 커트라인과 0.3점 차이가 나게 떨어지고 나선(물론 그 0.3점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다), 대학원도 다니고 기간제 교사도 하면서 다시 시험 준비를 했다. 공부만 한다고 붙을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긴 시간 동안 반복하는 게 합격의 비법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몇 년이 됐든 하다 보면 붙겠는데?라는 마음으로 긴 레이스를 준비했다. 다행히 운이 내편이었는지, 그해에 예년보다 웃도는 선발인원이 발표되며 무난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스물넷에 졸업하고 스물여섯에 첫 발령을 받기까지 2년의 시간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암흑기다.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조차 다른 길을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는데, 정작 나는 괜찮았다. 공부가 지겹고 하기 싫은 게 문제였지 딱히 떨어질 거란 생각은 없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언젠간 붙겠지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어쩌면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고 혹은 자기 포장일 수도 있다. 붙고 났으니 그런 말을 하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애초에 되지 않을 일은 절대 시작하지 않기에 어떻게든 해내긴 했을 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이는 엄마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요구한다. 열심히 호박을 볶고 있는데 따님이 치즈를 달라 말했다. 가뜩이나 요리도 못하는데 치즈까지 자르면 호박이 탈 것 같아 아이에게 못 준다 했다. 그냥 응, 잠깐만 해도 될 일을 엄마 호박 볶고 있어서 치즈를 줄 수 없다고 굳이 갈무리를 지었다. 교과서 집필도 매주 토요일마다 나가야 하는 게 아이를 위해 좋지 않고 또 나의 체력도 받쳐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과감히 포기했다. 주변에선 그렇게 큰 출판사 팀에 들어가기가 쉬운 줄 아냐, 영광스러운 일이지 않냐, 등등 엄청 아쉬워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든 잘 되려면 약간의 무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봤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어떤 땐 내가 손해도 보고 또 어떨 땐 이득도 보고 그런 유연함이 있어야 오래간다 들었다. 내가 어려운 부분이 바로 그 무리다. 뻔히 예측되는 힘듦이 싫어서 회피하고 도망간다. 스스로 정해놓은 동그라미 안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삶이 늘 비슷하고 재미없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과의 실패가 아닌 과정의 실패다. 강 건너 불구경은 해도 불 끄러는 못 가는 게 나란 인간이다. 참 옹졸하다.
그래서 100일 글쓰기의 의미가 크다. 복직 전 무언가 해보고 싶어 신청했지만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솔직히 100일은 기대도 안 했고 길어야 50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지금까지 안 빼먹고 쓰고 있어 놀랍다. 혹시 이것도 내가 할 수 있을 법한 일이었나 하는 의심을 지우긴 어렵지만 그래도 즉흥적으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온 건 엄청난 발전이다.
계획 없이 저지르는 도전을 하나둘 늘리다 보면 어느 날 훌쩍 가방만 들고 떠날 수도 있으려나. 기대에 부풀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