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너에게로

100일 글쓰기 - 88

by 모사가


* 몇주 전 써놓고 올리지 않은 글입니다. 왜 올리지 않았는지 이유는 모르겠어요. 다른 하고 싶은 말이 넘쳐났던 날인가 봅니다. 오늘처럼 의욕이 없는 날도 있는 것처럼요.



작년 봄, 나 세우기 상담 프로그램을 신청해 참여했었다. 유치원 학부모 대상의 집단상담이었는데, 참여하신 다른 어머님들과 관계도 좋았고 상담을 끌어주신 수녀님께서도 의욕을 보이셔서, 올해 다시 상담을 시작하게 됐다. 이번엔 그동안의 나 세우기가 잘 되었는지 점검하고 가족 세우기에 들어간다.


상담하러 가는 날은 신이 난다. 휴직 중이고, 코로나라 누굴 만날 수도 없어 관계의 폭이 좁아지다 보니 마음 놓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에 가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부모님과 굉장히 친밀하지만 오히려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남편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소하고 별것 아니지만 신경 쓰이는 자잘한 것들을 상담에선 여과 없이 털어낸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고통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있었지만 사라진 것에 대한 상실감, 애초에 없었던 것에 대한 박탈감, 이 셋 중 어떤 것이 인간에게 괴로움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누군가는 현실의 각박함때문에 과거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픈 욕망이 삶을 짓누르고, 어떤 이는 과거의 어느 때가 계속 발목을 붙잡아 벗어나기 어려워 몸부림친다. 무엇이 더 힘든가를 상상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은 고통 속에 자신을 밀어 넣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만한 나보단 결핍한 그 언젠가의 나를 더 열심히 찾는다. 그리고 기꺼이 아파한다.


내게 제일 부족한 점은 타인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은 하지만 공감은 어렵다. 정말 힘들겠다, 얼마나 아팠니, 마음을 읽어주기보단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를 먼저 떠올린다. 실은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 대신 공감을 했어야 됐던 것 같다. 상담에 참여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나 자신의 내적 변화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한정된 폭의 사람들, 특히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 생각이 편협해지고 공감능력은 떨어졌다. 나이가 들며 그런 경향이 심해진다 하니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과 경험은 절실하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재단하지 않는 넓은 눈과 공감과 포용의 따뜻한 가슴을 갖고 싶다.


수녀님은 오늘 '나에게서 너에게로'라는 말씀을 내게 주셨다. 삶이란 건 결국 인간의 선택이지만 인간다운 삶은 분명히 있다. 멀찍이 떨어져 상대를 손님처럼 대하면 상처는 없을지언정 인간다울 순 없다.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삶을 통제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타인의 세계와는 저절로 만날 수 있다. 남을 이해한다는 건 그런 거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자연스레 다가가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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