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날

100일 글쓰기 - 72

by 모사가


피곤한 날이었나 보다. 보통 아이를 8시 반쯤 재우는데, 함께 잠들어버렸다. 글쓰기도 해야 하고 들어야 할 음악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오후엔 학교 상담, 저녁부턴 아이 숙제 봐주느라 씨름을 했더니 몸이 정신을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커피를 모두 투샷으로 3잔이나 마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사실은 쓸 소재가 없어서였나 싶기도 하다. 요즘의 삶은 바쁘지만 너무 단순해 새로운 자극이 없다. 오늘이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화요일이었지만 사람들의 잇단 코로나 확진으로 상담은 취소됐고, 피아노 레슨은 비슷했고, 잠시 도서관에 들렀다, 아이 픽업해 집에 와 숙제시키고, 담임선생님과 전화 상담한 게 전부다. 심지어 다른 요일엔 일부러 가지 않는 이상 집 밖에 나갈 일이 아이 등하교 때 외엔 없다.

얼마 전 꼭 필요한 것 외엔 사지 않겠다 마음먹은 후론 쓸데없이 돌아다니지도, 또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소소한 기쁨과 함께 자잘한 죄책감도 없어졌다. 대신 도서관에 가 이런저런 책들을 빌리고 읽는다. 의외로 많은 도서관이 주변에 있고 동네에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을 공간도 꽤나 많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옆자리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좋아 가끔 이어폰을 빼기도 한다. 물론 아이가 등교한 잠깐에 한정되지만 말이다.

신변잡기를 길게도 쓴다. 하루 분량을 채우려다 보니 일기도 아닌, 수다도 아닌, 이런 요사스러운 글이 나온다. 포기하지 않았다는데 의미를 두어야지 생각하지만 밀려오는 자괴감은 어쩔 수 없다. 문득 100일이 참 긴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면서 무슨 용기로 100일이나 하겠다 했는지, 그때의 내가 살짝 미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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