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아이의 치과 진료가 예약되어있어 학교에 직접 데리러 갔다. 보통은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그날 하루만 엄마차를 타야 한다 신신당부를 하고 담임선생님께도 미리 연락을 드려 양해를 구했다. 선생님과 함께 줄 서서 기다리던 딸은 창문을 연 채 차를 몰고 들어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팔짝팔짝 뛰며 엄마를 큰소리로 불렀다.
차에 타서 오늘 하루 잘 지냈냐, 즐거운 일은 어떤 게 있었냐 한참 이야기하다 아이가 대뜸 "엄마, 난 휴대폰 언제 사줘?"라 묻는다. 휴대폰을 평소에 전혀 보여주지 않아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왜 사달라 하냐 되물었더니 대답이 청산유수다.
"이제 엄마가 학교에 가고 나랑 혹시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잖아. 아니면 이마트에 갔는데 내가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서 엄마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럴 때 엄마한테 전화할 거야."
학교에 가더라도 널 항상 데리러 나올 누군가가 있을 거고,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엄마를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 너에게 휴대폰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조목조목 반박을 해줬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엉엉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 같이 엄마차를 기다린 친구 누구는 휴대폰이 있는데 나도 갖고 싶다, 나도 그 친구처럼 엄마랑 문자 보내고 싶다 등등 마음속 이야기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치과치료가 끝나고 나서까지도 한참을 뾰로통했다 결국 아이스크림 데이트로 극적인 화해에 성공했다.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되었는데도 휴대폰이 집집이 뜨거운 감자인가 보다. 같이 버스 타는 친구 엄마도 등교 첫날 휴대폰을 사줄 거냐 물었다. 사주면 함께 사주고 안 사주면 같이 안 사주자고 했다. 중학생 되면 사줄까 생각 중이라는 내 말에 경악스러워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 변화는 없다. 앞으로 분명히 학교 끝나고 학원에 바로 가야 하는 상황이 있을 거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도 생길 거다. 그럼에도 굳이 휴대폰으로 아이를 확인하고픈 마음은 없다. 정 걱정이 된다면 아이를 연계해 줄 도우미분을 고용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선 시시티브이를 켜놓을 생각이다. 아이가 좀 더 제 몫을 해내게 된다면 반려동물 입양도 고려 중이다.
휴대폰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문자나 전화만 되는 일명 공신폰도 있고, 또 아이와의 문자 연락은 의외의 사랑스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래 친구가 중요한 시기엔 단짝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담임선생님이 단톡으로 뿌리실 공지사항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부모를 통해야만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된다.
다만 아직 너무 어려 자제와 절제가 쉽지 않다는 점이 걱정이다.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반 문자도 릴레이가 이어지다 보면 끝이 없다. 게다 내가 만나는 중학생들의 사건사고 대부분이 휴대폰에서 시작되다 보니 가능하면 사주는 시기를 늦추고 싶다. 일부러 유튜브도 보여주지 않고 휴대폰은 심지어 조작도 못하게 멀리한 나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그게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이미 휴대폰이 있는 친구들 덕에 자기도 가질 수 있는 나이란 걸 알았고, 문자와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휴대폰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 주제는 휴대폰이 될 수 없다 못 박긴 했지만, 엄마 아빠 휴대폰으로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정도는 허락해줬다. 그리고 휴대폰을 살 수 있는 자격엔 어떤 게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리딸이 스스로 생각한 휴대폰을 사기 위한 약속이다. 혼자 뭘 이렇게 많이, 그리고 열심히 적는 걸 이때 처음 봤다ㅎㅎ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또 그렇다고 마냥 디지털 미디어에 노출시킬 수도 없다. 한계와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늘어 고민이 많아진다. 나도 확신할 수 없는 곳에 무방비한 아이를 데려다놓자니 내 마음이 쉬이 놓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