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하고 치사하며 옹졸한

- 나도 어쩔 수 없는 학부모 -

by 모사가


좀 솔직해져 보자. 나는 대체 아이에게 어떤 걸 원하는 걸까. 가져오는 수많은 숙제와 안내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 건지 말이다.


세상 어느 부모가 내 자식이 공부 못하길 바라겠나. 나도 내 딸이 반짝거리는 두뇌로 똑 부러지게 공부도 잘하는 예쁜 학생이길 바란다. 물려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되짚어도 대단하게 출세한 사람이 없으니 결국은 공부가 살길이다.


요새는 다들 엄청나게 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7살이면 영어는 당연하고 세 자릿수 덧셈에 곱셈 나눗셈도 한단다. 글밥이 제법 되는 글도 줄줄 읽고 독서에 빠져 엄마가 제발 자러 가자고 호소하는 아이들도 수두룩이란다. 알고 있던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커야 한다는 소신으로 간신히 한글과 알파벳을 떼고 10까지의 덧셈만 시켜 학교를 보냈다. 매일같이 뛰어놀고 티브이도 실컷 보고 때마다 철마다 여행을 다녔다. 그래도 될 거라 생각했고,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막상 학교에 가니 아이는 평범하다. 재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 내내 평범했던 적이 없는 나는 아이에게 자꾸만 욕심이 난다. 의미 없는 검사인 줄 아는 지능검사 결과도 아이가 오른쪽 끝에 위치했으면 좋겠고, 숙제도 항상 완벽하게 해 갔으면 좋겠고, 시키지도 않았으면서 영어 분반의 윗반이었으면 좋겠고, 랜덤으로 주는 질서 점수도 매번 가산점을 받았으면 좋겠다. 부질없고 쓸데없는 경쟁심인 줄 알면서도 불쑥 고개를 드는 못된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속으론 애끓이면서 겉으론 세상 보살 같은 엄마인 척한다. 도서관에 매일같이 1학년 권장도서를 빌리러 가면서, 책은 흥미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고 공부는 길게 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더 많이 시켜서 보낼 걸 그랬나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더러 왜 똑똑한 딸을 방치했냐 타박하던 아이 친구 엄마의 말이 계속 맴돈다.


이런 나를 보는 게 너무 기가 차고 한편으론 괴롭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을 보며 일희일비하고 걱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사실 내가 심지가 굳지 못해서다.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의 불안감을 딸도 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앵무새처럼 영혼 없이 떠드는 바른 소리에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2학기엔 꼭 영어 분반 중 윗반을 갈 거라며 의지를 불태운다. 입으로만 뱉지 않았지 온몸으로 내뿜는 엄마의 기운을 알아차렸나 보다. 아니면 왜 자기는 영어 못하냐 펑펑 울었던 마음으로 심기일전해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옆에서 하나씩 가르치고 도우며 잘하고 있다, 잘할 수 있다를 계속 반복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성장은 계단식, 아이들의 꽃피는 시기는 다 다르다 등등 아는 모든 교육학적 좋은 소리들을 속으로 되뇐다. 다그치지 않고 닦달하지 않기를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오늘도 평화로이 일과를 마쳤다. 일상은 잘 굴러간다. 아이는 행복한 날이었다며 엄마 사랑해하곤 잠들었다. 문득 아이의 행복을 빌었던 날들이 떠오른다. 지금도 행복해졌으면, 이라 변명하고 있다. 미래의 행복이 현재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먼 훗날의 행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잠들지 못하는 밤이 시끄럽다.


연잎을 쓰고 연꽃을 그려넣은 마음이 예쁘다. "왜 낙서했어?!" 대신 "연잎이 혼자 있어 외로워 보였구나?"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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