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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Feb 01. 2020

아기매트 위에서도 신발을 벗지 않는 호주 엄마들


아이가 8개월이 지났을 무렵 작년 이맘때쯤, 우리는 동네 플레이 그룹(Playgroup)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문화센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호주에는 동네마다 3-4세 이하의 영유아들이 같이 놀 수 있는 플레이 그룹이 있다. 다만 한국의 문화센터에는 책도 읽고 노래나 율동을 선생님과 함께 따라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면, 호주의 플레이 그룹은 아이들끼리 같이 모여서 자율적으로 놀기만 하는 곳이다.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노래를 부를 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호주 엄마들은 육아에 지친 그들 스스로를 위한 수다 떨기에 더 바쁘다. 처음 플레이 그룹을 방문했을 때 담당자는 아이들이 ‘사회화(socialize)’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노래든 율동이든 숫자든 알파벳이든 뭐라도 하나 가르치기 위해서, 아이를 플레이 그룹에 데리고 갔던 한국인 엄마는 한동안 8개월 아이에게 사회화가 무슨 의미일까 골똘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처음 플레이 그룹에 갔던 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기매트 위에서도 절대 신발을 벗지 않는 호주 엄마들이었다. 그때 아이는 제대로 기지도 못하고 매트 위에서 배밀이를 하고 있었는데, 손뿐만 아니라 옷의 배부분이 새까매져서 집에 왔다. 서양인들이 집에서 신발을 신고 다닌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아기들이 누워있고 기어 다니는 매트 위에서도 엄마들은 태연히 신발을 신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어딜 가나 손 세정제나 소독제를 흔히 볼 수 있고 손 위생을 엄격히 따지는 것에 반하여, 발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렇게 관대한 위생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 나로서는 조금 의아했다. 플레이 그룹에서 뿐만 아니라 사실 호주에서는 야외 잔디밭이나 콘크리트 시멘트 바닥에서도 그냥 아기들을 잘 풀어놓는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밖에서는 모래나 잔디 외에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호주 엄마들은 어디서나 아이가 기어 다니도록 두는 모습에 나는 매번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시멘트 바닥에서도 기어 다니도록 이렇게 풀어놓는다!


구강기에 있는 아기들은 모든 물건들을 입으로 먼저 가져간다. 우리 아이도 한창 물고 빨던 시기라 플레이 그룹의 온갖 장난감들을 자꾸 입에 넣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곳 장난감들이 많이 더러운 편이라, 나는 계속 아이 입으로 가져간 장난감들을 뺏고 그러지 못하도록 쪽쪽이를 물려놓았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호주 엄마들 누구도 아이가 장난감 빠는 것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흐뭇하게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옆에 앉은 엄마들과 끊임없이 수다를 떨면서, 자신의 아이가 침을 많이 묻힌 장난감들을 쓱쓱 닦아놓는 것이 전부였다. 식당에서도 아기 의자를 빌리면 나는 아이가 앉기 전에 물티슈로 꼭 닦았는데, 호주 엄마들은 그런 유난을 떨지 않고 아이를 그냥 앉혀서 먹였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흘리거나 더럽힌 것은 반드시 치우고 갔다.


아이가 입으로 장난감들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일부러 쪽쪽이를 물려놓았다



아이가 돌 무렵에 동네 놀이터에서 한국 엄마 둘과 함께 어울린 적이 있다. 그 두 엄마는 이미 아이들이 둘씩 있는 나에게는 선배 엄마들이었다. 그때 아이가 모래사장에서 모래를 먹고 있는데도 내가 계속 놀게 두니, 자신들은 첫 아이가 돌 무렵에는 모래에서 놀게 할 꿈도 꾸지 못했다며, 내가 너무 깔끔 떨지 않고 매일 밖에 데리고 다니며 막(?) 키우니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정확히 내가 호주 엄마들을 보며 매번 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온갖 바닥에서도 아기들이 기어 다니며 세상을 탐험하도록 두고, 뭐든 물고 빨며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스스로 탐구하도록 두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반팔 반바지를 입고 동네 공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늘 아이를 여기에서 키우려면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단련시켜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내 속에서 나온 내 자식이 아닌 것만 같다. 나는 어릴 때 소심하고 친구들도 잘 사귀지 못해서 혼자 노는 아이였는데, 아이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누구에게도 잘 다가가고 또래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논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다지만 나는 매번 그런 내 아이를 볼 때마다 조금 놀랍다. 처음 플레이 그룹을 방문했을 때 담당자가 말했던 ‘사회화(socialize)’는 어쩌면 아이보다 엄마인 나에게 사실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이제는 이방인의 탈을 벗고 이 사회의 구성원들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고 결심했지만, 플레이 그룹에서 아이를 눈에서 떼지 못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다른 엄마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지 못하는 유일한 엄마가 바로 나이다. 그래도 그런 조용한 사람들의 주특기가 보고 듣고 관찰하는 것인 만큼, 지금 이렇게 호주 플레이 그룹 탐방기(?) 글도 쓰고 있는 것 아닐까.


사실 여기에 사는 주변의 한국 엄마들을 봐도 동네 플레이 그룹에 나가는 엄마들은 많지 않다. 한국 엄마들끼리 만나서 어울리고 아이들을 같이 놀게는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 플레이 그룹에서는 배울(?) 것도 없고 (문화센터 같은 프로그램도 없고) 엄마들이 심심하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더군다나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아닌 나라에서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나는, 이 플레이 그룹을 통해 여기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배운다.

어떤 아이가 갑자기 다른 아이 손을  잡으려고 하면 
“Gentle! Be gentle, Shake hands with a friend.”
(친절하게, 부드럽게, 친구와 악수하자.)
라고 말하며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을 ,

아이들이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겠다고 우기면 
Share! You can share it with your friend.”
(같이 해야지, 친구하고 같이 가지고 놀아야지.)
라며  다른 엄마가 싸움을 중재할 ,

미끄럼틀을 타는데 어떤 아이가 거꾸로 올라가려고 하면 
It’s the wrong way. Wait and take your turn.”
(그렇게는 반대 방향이야.  차례를 기다리렴.)
라며 아이를 미끄럼틀 계단 쪽으로 데리고 가서  서게 하는 엄마를  ,

나는 아이 훈계용 영어와 동시에 이곳의 훈계 방식을 배운다. 그리고 배려와 양보와 질서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호주 엄마들을 보며 여기에서 우리 아이를 키워도 좋겠다는 믿음이 든다.




크리스마스 연휴와 여름방학이 끝나고 이번 주에 학교도 플레이 그룹도 다시 시작이다. 플레이 그룹 2년 차 초보 엄마는 올해도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배우고 자랄 것이다. 리스닝만 하지 말고 20개월 아이와 함께 말문도 좀 트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면서, 호주 엄마들과 함께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날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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