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잠이 중요하다. 특히 나에겐 더욱. 임신 출산 육아 과정 다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도 힘든 건 잠 잠 잠이다. 나는 임신 전까지 일 년에 한두 번 술을 떡이 되게 마시지 않은 이상, 밤에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가는 일이 결코 없는 사람이었다. 장거리 여행 중 20시간씩 버스를 탈 때도 남들 다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갈 때 나는 그냥 참고 자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임신 초기부터 뇨기 때문에 밤에 서너 번씩 깨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새벽에 깨면 동이 틀 때까지 다시 잠 못 들고 밤을 하얗게 새우기 일쑤였다. 아이를 낳고는 모유수유를 하며 일 년 내내 밤에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젖을 물리니, 출산 후 다이어트를 1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살이 10킬로 빠졌다.
아이가 유리컵이라면 있는 힘껏 바닥에 내동댕이 쳐서 깨뜨려버리고, 누군가 이렇게 오래 나를 잠 못 자게 고문을 했다면 아마 칼로 찔러 죽여버렸으리라, 별의별 나쁜 상상을 했다. 엄마를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타인이 계속해서 나를 위협할 때, 인간이 어떻게 공격적이고 방어적이 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어느 밤에는 새벽에 깨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옆에 두고 나도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안방에서 자다가 놀란 남편이 뛰어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쟤는 악마야. 나를 죽이려고 세상에 왔어."라는 끔찍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요즘 엄마들은 모두 똑똑하게 육아를 했다. 나도 임신을 하고 여러 육아서를 접하면서 '똑게육아'라는 책을 읽고 똑똑하고 게으르게 수면교육을 하는 방법도 미리 공부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막상 실전에 닥치자 나에게는 아이의 울음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죽어라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는 미칠 것 같았고, 바로 달려가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려서 평화를 찾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백일의 기적이 오겠지, 백일까지는 그런 희망으로 버텼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백일이 지나도 똑같이 두세 시간마다 깨서 엄마 쭈쭈를 찾았고,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불침번 수유에 점점 지쳐갔다.
남편에게 이 고통과 피로를 토로하면 그는 늘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왔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어느 날은 6개월도 안된 아이에게 먹일 수면 보조제를 사 오고, 어느 날은 라벤더향 오일 로션 방향제 3종 세트를 사 오고, 어느 날은 식도에서 우유가 역류해서 잠이 깨는지도 모른다며 유아용 가비스콘을 사 왔다.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을 사 왔는데 이제는 일일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것들을 사 오느라 퇴근하고 한 시간 늦게 집에 와서는 아이에게 자꾸 약을 먹이려고 하고, 나는 아이가 아직 그 약을 먹을 수 있는 연령도 되지 않았다며 남편과 싸우느라 피로만 더 쌓였다는 사실만이 기억날 뿐. 남편의 진심 어린 순수한 배려심에 반해 결혼했는데, 이 순수한 배려심 때문에 나는 이혼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호주는 신생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아기 침대에서 혼자 자는 것을 권장한다.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면 동네 간호사가 직접 가정 방문하여 집안 환경 조사를 하는데, 그중에서도 아기 침대의 안전성에 대해 각별히 신경을 쓴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인 만큼, 아기가 부모와 같이 자는 방식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편이다. 육아의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호주 드라마 'The Let Down'에서도 아시아인들의 93%는 아직도 엄마와 아기가 같은 침대에서 잔다는 대사가 나온다. 물론 질식 또는 침대 낙상의 위험이 있음을 미리 경고해준다.
아이가 7개월 무렵, 도무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수면교육을 받으러 갔다. 호주에는 잠자기가 어려운 아기들을 도와주는 여러 수면교육 센터가 있는데, 가서 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 '똑게육아'의 방식 그대로였다. 아이를 혼자 아기 침대에 눕히고 엄마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온다. 아이가 울면 밖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방에 들어가서 아이를 잠시 달래고 다시 방을 나온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며 두세 번 반복하다 보면 아이는 스스로 진정하여 (혹은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혼자 집에서는 참기 힘들었던 아이의 울음소리도 옆에서 내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전문가가 있으니 견딜만했다. 전문가는 집에 가서도 계속 이렇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 잠드는 것에 익숙해지고, 혼자 잠을 자게 되면 새벽에도 깨지 않고 더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오니 혼자서는 아이의 울음을 견디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나는 계속 낮이나 밤이나 무조건 엄마 쭈쭈를 물리고 보는 멍청하고 미련스러운 '멍미육아'를 하게 되었다.
20개월인 아이는 아직도 통잠을 자지 못한다. 돌이 지나고 모유수유도 끊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밤에 최소 한번 이상 분유를 먹어야만 다시 잠이 든다. 그리고 수시로 자다 깨서 손으로 더듬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면 어떻게 해서든 엄마와 살을 맞대고 다시 잠이 든다. 엄마의 단잠을 확 깨워놓고서! 이제는 남편에게도 전문가에게도 더 이상 도움을 구할 수가 없다. 그들의 조언을 다 무시하고 나 혼자 고집스럽게 내 무덤을 팠으니 나도 더는 할 말이 없다.
얼마 전에 읽은 목수정 작가의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책에서 그녀 또한 프랑스에서 출산 후 그곳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아이가 한밤중에 깨어나 젖을 달라고 울면 "저를 부르셨나요?" 하는 기분으로 한걸음에 달려가곤 했다는 글을 읽었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그녀의 다른 책 제목에서나 자발적인 비혼을 선택하고 진보 여성을 대변하는 그녀 또한, 엄마가 되고 나서는 이성적 판단에 전혀 근거하지 않은 내 몸의 반응처럼 기꺼이 밤잠을 설칠 용의가 있었다는 글이 이상하게 나를 위로했다. 다만 그녀의 착한 딸 칼리에게는 백일의 기적이 왔기에 그것은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아이의 잠 때문에 힘들 줄 미리 알았다면, 그래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수면교육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가끔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대답은 'No'이다. 세상 모든 일에 똑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냥 멍청하고 미련스러운 '멍미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이다. 아이와 살을 맞대고 자는 것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편한 엄마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오래된 말을 믿으며 천일의 기적을 꿈꾸어본다. 그리고 가끔 어느 새벽에는 비명도 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