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태와 영자의 집짓기.-1

끄적거린 낙서들로 집을 지었다.

by 임경희

중학교 1학년 때 대한극장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단체로 보았다. 영화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로 꼽힐 정도로 감동적이었고 마리아와 일곱 남매가 뛰놀던 저택은 꿈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부터 전원주택을 동경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되도록 살면서 넘치도록 감사한 것이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거의 이루어졌다는 것. 그건 아마도 강렬한 긍정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힘을 믿고 예순을 훌쩍 넘긴 영자는 집 짓기에 도전한다. 필요할 때엔 어디선가 항상 귀인이 나타났다는 근거 없는 믿음과 함께.


기존 집들은 맘에 꼭 들지 않았다. 목조주택은 기초공사부터 단열재, 방수, 마감재 등 건축주가 직접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직접 짓겠다고 마음먹은 후 검색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만난 첫 번째 귀인. 블로그에서 발견한 그의 글을 정독하며 자신감을 키웠다.

너무나 꼼꼼하게 준비하고 공부하며 집을 지은 그 사람만 따라가면 행복한 집 짓기는 가능할 것 같았다. 언젠가 리버마켓에 와 보곤 양평이 어쩐지 맘에 들었는데 그 사람도 그 지역을 최고로 꼽았다. 딸 둘이 살고 있는 곳에서도 각각 한 시간 남짓 거리이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비 오는 날 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드라이브는 환상적이었다.

병태가 직장을 이전하면서 26년 동안 살았던 대전생활을 정리하고 2년 동안 양평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아파트에 길들여진 몸이 가끔 튕길 때도 있었지만 장점이 더 많았다. 전원생활을 반대하던 병태는 손주가 셋이 되니까 100% 손주를 위해서라며 손을 들어주었다.
얼굴마담 정도로 함께 다녀주기만 한다는 전제 하에.


일 년 동안 양평 구석구석을 찬찬히 훑었다.

남한강변 자전거 길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편의시설과 교통, 그리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남한강변 산책로. 양평읍 근처가 최적지라 생각했다. 전세 살고 있는 국수리보다 서울에서 더 멀어져 딸들이 다니기 불편한 점이 걸리긴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두물머리가 있는 서종면 양수리 쪽 땅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갑자기 확 꽂히는 땅이 있었다. 2차선 도로에서 150m 정도 제법 경사가 있는 외길을 올라와야 했지만 그만큼 전망이 좋아 사방으로 틔어 있는 땅이었다. 서종면은 땅값이 비쌀 것이라고 지레 겁먹었는데 예산에 들어맞아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글로만 보던 첫 번째 귀인에게 정성껏 이메일을 보냈고 그분은 기꺼이 우리를 만나 도움이 될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자기 집까지 구경시켜 주었다.

그 후 더욱 용기를 갖게 된 영자는 귀인의 절차를 따라 양평동네 건축가 W소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W소장님이 두 번째 귀인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건축가님에 대한 신뢰가 생기자 행복한 집 짓기가 시작됐고,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토목 설계와 건축 설계를 시작했다. 토목설계는 토목설계사님이 따로 진행하고 허가 과정까지 책임지니까 건축주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건축설계는 석 달쯤 진행되었는데 미팅시간은 항상 설레고 즐거웠다. W소장님이 만드신 도면에 영자 생각을 붙이고, 자르며 다듬었다.

중학교 때부터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영자의 꿈이 오롯이 담긴 집. 안방 창 아래 작은 나무 벤치를 놓아 책을 읽고, 해가 잘 드는 남쪽으로 배치한 거실과 다이닝룸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서쪽으로 놓인 큰 창가 밑, 아담하고 예쁜 꽃나무가 보이는 긴 나무책상에선 글을 쓰고 싶었다. 순조로웠다고 했지만 거저 얻은 것은 아니었다. 틈만 나면 건축이란 생소한 분야를 공부했었다. 건축 공법, 기초, 단열, 방수, 내, 외장재, 지붕, 인테리어, 조명등 쉽지 않은 단어들과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단열과 친환경, 지진에 대한 내진 등 장점이 많은 경목구조로 결정했다. 대신 경목구조는 방수와 환기, 통풍 등이 중요하므로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어설프지만 어렴풋이 목조주택의 구조를 알고 설계과정에 들어가니까 설계사님께 뜻과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수월했다.

그리고 두 귀인들이 무한 신뢰하는 Y소장님과 시공계약을 했다. 일단 견적서를 보았는데 영자가 원한대로 꼼꼼히 적어주시고 건축주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 주실 것 같아 어렵지 않게 계약서에 사인했다. 기꺼이 세 번째 귀인이 돼 주실 것이다. 건축 선배들이 견적은 세 군데쯤 받아보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냥 앞 선 두 귀인과 영자느낌을 믿었다.

마지막 귀인 토목시공 J사장님. 이 분 역시 W소장님이 추천하셨는데 시원스럽고 거침없이 일을 처리하셔서 참 고맙다. 토목과 주차장 우, 배수관로 정화조 지하수까지 공사해 주셨다. 집이 완공된 후의 조경까지 책임지시겠다니 귀인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웃집들의 사소한 불평까지 알아서 해결해 주시니 정말 인복은 타고났나 보다. 하필이면 역대급 폭염 속의 공사라 더욱 죄송스러운데 생각처럼 현장에 자주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이렇게 토목공사는 잘 마무리되었고. 본공사를 앞두고 있다. 모두들 반은 마무리된 것이라 한다. 남들은 우여곡절이 많던데 여러 귀인들 도움 덕분에 편안하게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마지막 준공검사까지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자의 집짓기 2막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