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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경희 Nov 13. 2023

어마어마한 식당과  그물 술집

나중에 데려갈게

신혼시절은 강남이 한창 개발되고 있을 때였다.

병태의 직장이 홍릉 근처라 그 근처 아파트에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 하나씩 강남으로 이사 간다.  ' 남편 출퇴근 힘들고, 애들은 강남 8 학군에서 경쟁해야 할 텐데 뭐 하러 강남으로 가는 걸까? 걸어 나가면 바로 숲이고,  저녁마다 태릉 돼지갈비촌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니 밥 만 있으면  반찬 필요 없는 이 좋은 동네를 왜 떠날까?'

영자만 그곳에 오래 남았다. 고기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 밸 때까지.


병태가 강남의 대형 술집에서 회식하고 온 날.

 와~~ 정말 대단하더라  천장 밑에 그물이 있고 그 위에서 여자들이 춤을 춰.  나중에 당신도 데려갈게.



철수 아기  돌잔치가   한 달 후래.  청주니까 여행 삼아 같이 갔다 오면 되겠다.  당신 여행 가고 싶어 했으니까  같이 가면 되겠네.  내가 데려갈게.


강남은 무섭게 변하더라 문으로 나누어져 있는 방이 수없이 많은 한식당인데 시설이 어마어마하더라 나중에 데려갈게.


 강남으로 이사 간 옆 동 살던 지수가 집들이 초대를 한다. 점심식사 모임이다.

병태는 퇴근 후 굳이 홍릉에서 강남까지 데리러 오겠다 한다.   

'드디어 어마어마하다는 한정식 식당과 강남 그물 술집에 데리고 가려나 보네'

 꽃단장을 하고 머플러도 정성껏 묶었다. 애들은 옆 동 언니한테 맡기고,  늦을 테니  씻겨서 재워 달라고 했다.  병태가 데리러 왔을 때, 친구들의 환호와  부러움 속에 차에 오르며 우쭐해졌다.



정작 병태는, 몇 개 되지 않는 옷을  다 꺼내 뒤집어 놓고 두 시간 패션쇼 후에 골라 입은 영자의 옷차림 따위엔  별 관심 없다.  다섯 살과 두 살짜리 딸 둘을 키우느라  몇 년만의 데이트였다.


"집으로 가려면 영동대교 건너야 되지?"

'엥? 강남 구경시켜 준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여기가 바로  그 강남이거든?'

그때 영자는 남편 눈치만 살피는 온순한 새댁이었다.


"저녁은 처형 집에서 먹겠네"

"아냐 저녁 먹고 다 했어"

"그럼 뭐 먹고 가지?"

차는 이미 영동대교를 진입해서 강북으로 접어들었다.


'강남 귀경을 물 건너갔고 강북 경양식 집이라도 가서 난 배부르니 맥주나 한 잔 하고  갈까?'

영자는  엄마가 가르쳐 주신 대로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줄 알았던 풋내기 주부였다.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  여기가 좋겠다."   병태는 오래된 백화점 지하 식당으로 들어선다.

"뭐 먹을래? 난 비빔국수도 먹고 싶고  음~ 쫄면도 맛있겠다"

"난 아직도 배부르니까 두 개 시켜서 당신 다 먹어"  잔뜩 볼 멘 소리로  투정하지만 눈치 없는 병태는 두 개를 다 먹을 생각에 신났다.


비빔국수와 쫄면을  번갈아  가며  깨끗이 먹어치워  기분 좋은 병태는 영자가 한 젓가락도 안 먹었다는  사실 따위는  out  of  안중이다.


애들 봐준 처형이 좋아하는 호떡을 사겠다고 호떡코너로 간다. 기다란 줄이 늘어 선 호떡집엔 예쁜 아가씨 둘이 잽싼 손놀림으로 호떡 빚기 여념 없다. 병태는 영자에게 줄 서 있으라 하고 아가씨 앞으로 가더니  바쁜 아가씨들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 밀가루 한 포대 반죽에  호떡 몇 개나 나와요?"

"하루엔 몇 개나 팔아요?"

아가씨들이 인상을 쓰든 말든 옆에서 질문을 퍼부어댄다.


영자의 인내심은 극에 달한다.

"일루 와!  언니는 식은 호떡은 안 먹어 그냥 집에 가!"  사람들이 보든 말든  병태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때부터였다.

하고 싶은 것은 나  스스로 해야겠다는 것.

가고 싶은 ,  먹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으면 남편은 알지 못한다는 것.

남자의  대화법과 여자의 대화법이 다르다는 것.

 

그 후엔 영자가 병태를 데려간다. 따라오지 않으면 혼자 간다. 결혼 전 70년 대에, 영자는  울릉도, 제주도, 홍도까지 다녀왔고,  병태는  서울 남산도  안 올라가  봤다.   

영자 혼자 간,  시간 동안의 불안함보다 싫어도 같이 감을 택한  병태는 이젠 영자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즐긴다.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영자는 그려본다.

다음을 어디를 걸어볼까? 병태 손을 꼭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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