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명단이 뜨면 제일 먼저 처방 넣는 것도 밥이고, 입원하자마자 환자들이 제일 많이 확인하는 것도 밥시간이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삼시 세끼를 다 챙겨 준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밥 차리는 것을 주로 담당으로 하던 어머님들의 호응이 꽤 좋다. (물론 밥이 맛이 없을 때 매서운 시어머니 모드로 변하기도 한다)
밥맛은 집에서 한 압력 밥솥 밥처럼 찰지고 윤기 나는 밥은 아니라서 호평 듣긴 힘든 편이다. 음식 간이 중간이 되는 날이 제일 평화로운 날이지만 그런 날이 종종 있는 경우가 많아, 싱거운 날에는 소금 장사가 오지 않았냐는 돌림 노래를, 소금 간이 조금 센 경우에는 소태가 따로 없다는 소리를 병실마다 환자마다 환청처럼 듣게 되는 매직을 겪게 된다.
병원밥의 특이점은 치료식이란 게 존재하는 건데 그건 병원마다 세부적으로 다양한 편이라 다르긴 하나 일반적으로 일반식, 당뇨식, 연식, 저염식, 케톤식, 통풍식 등이 있다. 이외에도 금식이 존재하는데, 수술 전, 시술 전, 검사 전에 꼭 금식이 필요한 경우 식사 제한이 들어간다.
이렇게 제한적 치료식은 환자의 요구가 아니라 의사 오더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원망 아닌 원망은 간호사가 모두 듣게 되게 된다. 자극적이지 않은 병원식에 더 순한 맛 버전의 식단이 되다 보니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맛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입원 이후 입맛 없는데 더 입맛을 떨어지게 한다는 컴플레인이 이쯤 들어오게 된다. 안타깝지만 간호사는 치료식에 권한이 없을뿐더러 치료라는 이름이 붙은 식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조용히 달래 드리곤 한다.
다른 일례로 코로나가 한참 유행일 때는 보호자의 면회뿐 아니라 외부 식이도 반입 안 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때 정말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가뜩이나 맛없는 병원 밥만 먹고 치료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컴플레인들과 통보 없이 막무가내로 싸 오는 음식들, 그리고 허락 없이 시키는 배달음식들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사정은 다 이해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제한에는 예외가 없어서 힘들었던 경우였다.
나는 병원밥을 급식이라 별칭하고 학교 졸업 후에도 급식을 매일 먹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급식은 영양사님들의 센스에 재미있는 식단과 새로운 맛을 기대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병원밥은 대부분 간이 세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게 대부분이라 재미를 기대하긴 어려워지만 나름 슴슴한 집밥 같은 매력이 있다. 조금 재미없는 급식이지만 영양사님의 식단을 계속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병원 일을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나는 남들보다 꽤 오래 병원밥을 먹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살짝 지겨울법하지만 사실 매번 감사한 마음이 크다. 10년 넘게 일하며 바빠서 8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밥 한 수저 뜨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시간이 되어서 먹을 수 있는 밥이라는 인식이 생겨서인지 병원밥은 항상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른 이야기로 내가 지내던 병원 중 복지가 좋은 편에 속하던 한 병원은 직원들에게 아침밥을 제공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4년간을 먹었는데, 입맛 없고, 밥맛없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지나와서 생각해 보면 속 따뜻하게 일하라는 병원장의 깊은 배려였다는 걸 알게 했다.
병원밥이야기는 병원의 삶과 가장 많이 얽혀있어서 에피소드들이 끊이질 않는 건 같다. 그래서 병원밥 이야기는 해도 해도 부족한 기분이라 한 번 더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