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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Oct 25. 2020

300년 후를 생각해야 하는 직업

<우드잡> 2014


“조금… 일찍 오셨네요.”

퇴근하고 방문한 꽃집의 여사장님은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고 지금은 늦은 저녁 8시인데? 의아하면서도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풀내음 가득한 꽃집 안 한 걸음씩 들어섰다.


작디작은 원룸에서 불편함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숨을 쉬는 존재가 방 안에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플라스틱, 알루미늄, 유리 따위의 무기물 덩어리뿐. 생명체는 나 밖에 없다. 아니 나조차 확실히 살아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극도로 고독한 순간을 견디지 못해 결혼했다는 친구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휑한 집안이 적막하게 느껴져 화분이라도 하나 놓고 싶어 졌다. 식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무리하지 않고 꽃이나 작은 나무 아니면 선인장 쪽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퇴근길에 집 근처 꽃집에 들러 사장님께 요구 사항을 말했다. 식물 초보자다, 집이 적적해 뭔가를 하나 두려고 한다, 불사조급의 생명력을 갖춰 기르는 난도가 높지 않았으면 한다… 까지 말했을 때 사장님이 내게 말한 것이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오셨군요’


영문을 몰라 눈만 끔뻑이는 내게 그녀는 좀 더 살을 붙여 설명해줬다.

“주로 40~50대 전후의 남자 고객님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회사 다니면서 사람에 치이고 말에 질리다 보니 조용하면서 한결같은 나무로 눈을 돌리시나 봐요. 여기서 이제 조금 더 나가면 그거, 수석이라고 하죠? 예쁜 돌 같은 거 가꾸고 애지중지하는 쪽으로 발전하시더라구요. 많이 봤어요. 그런데 고객님은 아직 그 정도 나이는 아니신 것 같은데… 조금 일찍 오신 편이세요.”

그랬구나. 중년 남성들이 우리나라 화훼 농가를 먹여 살리는 거였어.


어떤 반려 식물을 원하는지 듣고 난 사장님의 맞춤형 추천은 고무나무였다. ‘강인한 생존력! 우수한 공기정화능력! 병충해에도 강하고 온도나 물에도 민감하지 않은 입문용 나무의 최강자! 선인장을 죽이는 사람은 있어도 고무나무를 죽이기는 쉽지 않다! 고무나무조차 클리어하지 못하는 애송이라면 그 위의 고급 수종은 꿈도 꾸지 말지어다!’ 거의 불사신과 다름없다는 말에 고민할 것도 없이 뱅갈고무나무를 한 그루 분양받았다.


삭막하기만 하던 차가운 도시남자의 집에 살아있는 생명이 등장했다. 채 1미터도 안 되는 조그마한 아기 나무 한 그루일 뿐인데 집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교통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아무 의욕 없이 폐인처럼 살아가는 중년의 뉴욕 형사 프랭크가 퇴근 후 TV 앞에 앉아 위스키나 마실 것만 같은 느낌의 음침하던 우리집이 파스텔톤 필터라도 덧씌운 듯 순식간에 화사해졌다.



특히 물주는 날이 가장 기다려졌다. 욕실에 갖다 놓고 여우비라도 맞히듯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듬뿍 물을 주고 나면 고무나무에서는 말도 못 하게 좋은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소나기가 매섭게 쏟아지는 여름날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흙 냄새, 풀 냄새, 엽록소 냄새 등 자연의 향기가 온 집안에 넘실거렸다.


집에 돌아오면 날 반기는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하나의 작은 우주인 것이다.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느껴지는 위로와 안식. 긴 해외출장으로 집에 가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 나무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일정이 더 길어지면 안 되는데, 물 줄 때 다 됐는데, 여름이라 평소보다 더 흠뻑 적셔줘야 하는데 어떡하지… 고작 뱅갈고무나무 한 그루가 이 정도로 내 삶을 바꿀 줄 몰랐다. 나무란 이런 것이었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 보듬어주는 존재였구나.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살의 히라노 유키.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고 여자친구에겐 이별 통보를 받는다. 친구들이랑 노래방에서 밤새 술이나 퍼마시고 노래를 불러도 앞날이 불안하기만 한 그의 눈에 띈 팸플릿 한 장. [임업연수생 모집: 숲에서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푸른 숲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반해서였을까? 그는 곧장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면서 미에현의 첩첩산중으로 향한다.   



핸드폰이 손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귀에는 언제나 이어폰이 꽂혀있으며 바삭한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시티보이 히라노가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외진 산골 마을로 찾아가 임업연수생으로 1년을 보내며 겪는 좌충우돌의 기록.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삶. 나무에 부딪히고 인간과 얽혀가며 조금씩 커가는 소년의 성장통을 담은 2014년도 영화 <우드잡!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코앞에 닥친 문화제에서 싱크로나이즈 공연을 해야 하는 남학생들이나 (워터보이즈), 식중독에 걸린 합주부원들을 대신해 재즈를 연주하게 된 낙제 여학생들 (스윙걸즈), 발표 1주일 전에 망가진 로봇을 대신하기 위해 기계 탈을 쓰고 로봇 흉내를 내야 하는 노인 (로보G) 등 우여곡절 속에서도 아등바등 최선을 다하는 작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듬뿍 보여준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답게 이번에는 광고 전단에 속아 정글이나 다름없는 오지로 떠나게 된 청춘을 향한 응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숲 속 사람들, 나무꾼들에 대한 헌사를 담은 작품이다.


이름조차 낯선 임업의 세계에 발을 담근 히라노. 매듭 묶는 법, 나무에 오르는 법, 전기톱 사용법, 목재 자르는 법 등을 배우지만 뭐하나 쉬운 게 없다. 실습에 열중하기는커녕 주변 연수생과 껄렁대다 다치기나 하는 모습에 강사로 참여한 프로 임업러, 터프한 산사나이 요키에게서 불벼락이 떨어진다.

“산을 우습게 보다간 그냥 죽는 거야! 이래서 도시 놈들한테 임업은 무리라니까!”



괜한 오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히라노는 한 달간의 기초교육을 무사히 마친 뒤 가장 고되고 낙후됐다는 나카무라 임업에 소속돼 1년간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나무와 함께 하는 삶을 이어간다. 수십 년간 이 일만 해온 전문가들에 비하면 모든 게 미숙하고 서툴기만 하다. 더구나 편안하게 교실 안에서 배운 것과 실제 현장은 너무나도 다르다. 폭우는 쏟아지고 통나무는 말도 못 하게 무거운 데다가 기계소리 엔진소리 빗소리에 선배들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넘어지고 굴러 떨어지기 일쑤인데 나무꾼 선배들은 또 어찌나 괴팍하고 거칠기만 한지.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변하며 히라노도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선배들과 함께 올라간 깊은 산속. 수백 년은 족히 살아왔을 거대한 삼나무에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고요하면서도 장엄한 자연의 풍경. 귀엽게 지줄대는 새소리. 개울물 소리. 울창한 숲을 스치는 청명한 바람 소리. 수목이 건강히 잘 자라게 하기 위해 잔가지를 치고 불필요한 나무를 솎아낼 때 나는 망치와 도끼질 소리가 나무 사이로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수백 년 동안 마을의 선조들이 정성껏 관리한 수십 미터 높이의 삼나무를 자를 때는 몸과 마음 모두 경건히 하고 작업에 임한다. 뭐 하나 허투루 하는 것 없이 정성을 다해 벌채작업을 진행하는 산사나이들의 모습에서는 일종의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삼나무 한 그루를 원목 경매장에 판매하고 받은 금액은 무려 천만 원. 히라노는 흥분한다.

 

“나무 한 그루 잘랐는데 80만엔이라구요! 산에 있는 나무를 전부 베면 수십억은 벌 수 있잖아요. 뭐 하러 이런 고물차를 탑니까. 벤츠 타자구요 벤츠!”

“야! 너 바보냐? 너 살 생각밖에 안 해? 전부 잘라서 팔면 우리 다음, 또 그다음 세대는 어떡하라고? 100년도 못 가서 끝장난다구.”

“베는 만큼 묘목을 심어서 소중하게 키우는 게 우리 일이란다. 농부라면 자기가 열심히 키운 채소가 얼마나 맛있게 자랐는지 먹어서 바로 알 수 있지만 임업은 달라.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결과가 나오는 건 우리들이 모두 죽은 다음이거든. 사는 게 그런 거지.”



꼬장꼬장하게만 보이던 선배들이 이제는 장인으로 느껴진다. 눈앞에 놓인 이익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임업을 이어가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나무를 지켜가며 이용하는 산골 마을 사람들. 그들과 함께한 1년의 시간, 처음 심은 묘목의 키가 자라는 동안 히라노 또한 많이 자랐을 게 분명하다. 나무는 이렇게 곁에 있는 사람을 자라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효율성의 시대. 먼 훗날의 처리비용 1000만원 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의 1만원을 아끼겠다며 원자력발전소 수백, 수천 기를 서슴없이 지어대는 시대에 수백 년 후를 생각하며 작은 묘목을 심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고루하고 한심해 보이는가. 사고가 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게 분명한데도 안전장비에 들어가는 비용 몇 푼 아끼려고 두 명이 해야 할 일을 한 명이 몰아서 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게 올 해에만 몇 명이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효율신의 숭배자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소중하다. 나 하나 배부르게 먹고 곧바로 밥상을 치울 게 아니라 다음에 올 사람들을 위해 충분히 씨를 뿌려두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유쾌하고 명랑하게 풀어내는 잔잔한 작품. 아,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화면을 통해서 눅진하고 찐득한 나무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텐데 놀라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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