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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May 12. 2020

백만 명이 울고 단 한 명만 웃는 전쟁이라는 슬픈 게임

PC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일주일 간의 베트남 출장 마지막 날,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찾아간 하노이의 한 카페. 그동안 어떤 슬픈 사연을 통역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냉철하게 팩트만 전달하던 흐엉 아저씨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고성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커졌다.

  식당 안의 현지인들이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작은 체구의 60대 베트남 노신사가 당신 앞에 앉은 한국 청년들을 향해 호통 치는 장면이 평소에 보기 흔한 광경은 아닐 터였다. ‘너희는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 매주 열리고 있는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출석한 우리 할머님들이 일본 정부를 향해 외치는 말과 완벽하게 똑같은 문장을 베트남 아저씨에게 듣게 되는 순간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30만 명에 달하는 한국군이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다. 우리 군인들은 용맹하게 적과 싸우면서 한편으론 무고한 민간인 또한 많이 죽였다는 사실이 여러 조사와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명백한 전쟁 범죄다. 하지만 아예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낯선 기후의 타국, 상관의 폭언과 폭력, 초 단위로 목숨이 오가는 극한의 스트레스, 앞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민간인인지 총을 숨긴 무장 세력인지 판단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미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었을까? 2년간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대한민국 성인 남성으로서 이 정도의 두루뭉술한 입장을 견지한 채 시작된 베트남 출장길이었다.  


  동남아시아 여행에 별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휴양도시 ‘다낭’. 그 바로 옆에 붙어있는 ‘호이안’ 이라는 예쁜 마을로 향했다. 봄바다는 서핑을 하거나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꺄르륵 소리로 넘실거렸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자 바람 불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허술한 모양새의 판잣집 하나가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통역을 도와주는 흐엉 선생님께서 큰 소리로 인사하자 읍내 5일장에서 손질한 고사리를 다 팔고 기분 좋게 집에 막 돌아왔다고 해도 위화감이 전혀 없는, 우리네 할머니들과 너무나 똑같은 외모의 ‘쯔엉 티 투’ 할머니가 환한 웃음으로 취재진을 반겨주었다.

  ‘아이고, 다 늙어빠진 이 꼬부랑 할매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고 이렇게 먼 길을 고생스럽게 찾아왔어들!’

  굳이 통역해주지 않으셨지만 대강 이런 분위기의 환영인사를 건네신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올해 80살의 할머니는 베트남 전쟁 당시 28살의 꽃다운 새댁이었다. 청룡부대의 주둔지가 근처였던 지라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한국 군인들이 이곳 하미마을로 몰려와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막내를 출산한 지 100일 정도 됐던 할머니는 엉덩이, 허벅지, 팔에 총을 맞았고 특히 오른쪽 발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너덜너덜해졌다. 못쓰게 된 오른발 따위보다 더 아픈 건 가족 12명과 두 아이가 한국군의 무차별 총탄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자식들을 가슴 깊이 묻고 살아온 지난 반 세기. 무려 50년이나 지났기에 어쩌면 잊을 만도 한데 할머니는 지난주 목요일 오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듯 너무나 생생하게, 손마저 부들부들 떨며 당시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눈물은 그렁그렁했지만 쯔엉 할머니는 강했다. 한 시간에 가까운 인터뷰에도 자세 한 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먼저 떠난 마을 사람들과 아가를 위해 자신이 꼭 해야만 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어떤 결기 같은 게 느껴졌다. 그날의 진실만큼은 꼭 알리고야 말겠다는.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영 불편하고 미안스러워졌다. 당시 학살을 벌였던 보통의 한국 아저씨들과 내 얼굴은 상당히 비슷할 텐데, 날 보고 할머니가 지옥 같았던 그날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다시 떠올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목만 남은 불편한 다리로 굳이 주방까지 가서 음료수며 먹거리를 주섬주섬 꺼내 주셨다. 시골집 찬장에서 엄마 몰래 과자랑 사탕 따위를 꺼내 주던 우리 할머니들과 똑같았다. 멀리서 찾아와 준 우리의 손을 한 명씩 붙잡으며 건네는 고맙다는 인사에 차마 더 듣고 있기가 괴로워 깊게 인사를 드리고 마을 구석에 있는 위령비로 향했다.


  세월이 지나 한국과의 활발한 문화 교류와 부드러워진 사회 분위기로 인해 ‘위령비’ 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이름은 ‘증오비’ 였다고 한다. “잊지 말자, 그날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한 끔찍한 행동을, 저 야만인들에겐 천벌이 내릴 것이다” 위령비 뒷면에는 시뻘건 글씨로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

  이 위령비에는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하미마을 사람들 135명의 이름과 출생 연도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가장 위에 쓰여 있는 Pham van tuong 1918 (당시 50세) 님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아래에는 Truong van tan 1964 (당시 4세) 아이의 이름까지.



  그런데 그 아래부터는 Vo Danh 이라는 이름만 있고 출생 연도가 없는 사람들이 줄줄이 있었다. 통역사에게 물어보니 Vo Danh 이란 ‘무명’ 이라는 뜻. 아직 이름조차 없는 사람. 즉 엄마의 뱃속에서 엄마와 함께 그대로 세상을 떠난 아가들이라는 설명에 모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용맹한 청룡부대원들에게 만삭의 산모들은 뭐가 그리도 위협스럽게 보였을까? 따뜻한 아열대 기후에 과일도 풍족하고 바로 옆은 바닷가라 해산물도 풍부하다. 사람들의 성정도 느긋해 항상 여유가 넘치는 하미마을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하루아침에 몰살당해야 했는지 대답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있을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이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우리 기억 속에선 희미해졌지만 피해자들의 시간은 학살의 아침, 그날 그 순간, 시침이 송곳에 콱 찍힌 듯 멈춰버렸다. 시간은 흐르지 않아도 눈물은 흐르는 반백년의 세월이었을 테지.




  2014년 폴란드에서 작은 게임이 하나 만들어졌다. <This war of mine>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전쟁… 정도로 번역될까? 규모는 작은 게임이지만 울림은 상당히 컸다. 전쟁 게임이야 이제껏 무수히 많았지만 대부분 군인이나 특수요원, 국가 원수 등의 입장에서 상대를 제압하고 승리하는 내용들뿐이었던 것에 비해 이 게임은 거대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력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일반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요리사였던 사람, 축구 선수 출신, 초등학교 선생님, 창고 근로자, 빈민가의 소매치기, 음대생, 변호사… 너무나도 일반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게 전부인 게임이다. 슈퍼 히어로 같은 건 없다. 총 하나로 적 10명을 괴멸시킬 수도 없다. 낮에는 폭격이나 저격수의 공격 때문에 집안에 꽁꽁 숨어 있어야 하고 밤이 되면 피난을 떠난 이웃들의 빈집이나 영업을 중지한 슈퍼마켓 등을 기웃거리며 뭐 남겨두고 떠난 게 없나 찾아보고 암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물물교환 하는 게 일상의 전부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한밤중에 몰래 들어간 조용한 집에는 하필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냥 나갈까 했지만 주방에 놓인 의약품과 음식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며칠 전, 불침번을 서다가 강도들에게 총상을 당해 집에 쓰러져 있는 동료 마르코를 생각하면 눈앞의 물건을 챙겨야 한다. 약이 없으면 앞으로 며칠을 못 넘길지도 모른다.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한 명의 동료가 아쉽다. 하지만 약과 식료품을 가져가면 이 노인들 또한 일주일도 채 못 넘길게 분명하다. 고민하던 중 부스럭대는 소리를 너무 크게 냈는지 노인이 거실로 나왔다.

  “제발 우리 할멈 약은 가져가지 말아 주게, 그녀가 많이 아파…”

  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물건들을 가방에 담는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당황한 나는 서둘러 도망치려다 오히려 그를 밀치게 됐고 가구에 세게 부딪힌 할아버지는 이내 가쁜 호흡이 멎는다.



  새벽녘이 되어 피신처로 무사히 돌아간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행 모두를 위해서였다. 안 먹어도 죽고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지 않는가. 그러나 입수 경위를 설명하자 동료들의 얼굴은 흙빛이 됐다. 한 명 한 명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살아남기 위해 범죄까지 저질러야 하는 걸까?’, ‘그들은 아마 얼마 살지 못할 거야. 우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필요한 걸 얻었는데 무슨 상관이야, 방법은 신경 쓰지 마’, ‘내가 저지른 짓이지만 혐오해…’

  배고프고 슬프고 피곤한 데다 점점 질병과 부상에까지 시달리는 일행들. 희망이 보이지 않자 술과 담배에만 의지해 하루하루 힘들게 버틴다. 살기 위해 한 어쩔 수 없는 행동들이지만 극도의 죄책감에 정신이 무너져 내리다 못해 목을 매는 동료까지 나오기 시작하면 게임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디스 워 오브 마인>은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 게임이라고 하지만 남에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만으로 재주껏 생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에게 해치거나 훔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밀물처럼 몰려오는 후회와 죄악감은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리얼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전쟁이라는 생지옥에서 고귀하고 품격 있게 살아남기란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한 마리의 들짐승처럼, 나보다 약한 자를 물어뜯으면서, 양심 따윈 버려가면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보라고 끊임없이 극한으로 몰아세운다.    



  문 밖에 찾아온 동네 아이들이 통조림 몇 개라도 나눠줄 수 없냐며 도움을 청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있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있다. 밀고자를 알려주면 보상을 하겠다며 찾아온 군인들에게는 이웃을 팔아치울 수도 있고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계속되는 선택이다.

 

  하루는 근처에 사는 이웃 부부가 찾아왔다. 밤중에 약탈자와 강도들이 극성이라 집 출입구와 창문을 판자로 막는 걸 도와달라는 부탁이다. 시간도 없고 우리 땔감으로 쓸 나무도 부족한 상황이라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얼마 후 그 집에는 약탈자들이 들이닥쳤고 남편은 저항하다가 살해당한다. 다음 날 아내 홀로 찾아와 이번엔 남편의 장례식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이 정도면 인간의 탈을 쓴 존재로서 당연히 도와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제 와서 무슨 위선이냐며 끝까지 나만을 생각하는 게 맞는지 갈팡질팡의 연속이다. 사람 되기는 힘들어도 괴물 되기는 참 쉽다.



  이게 바로 전쟁이다. 저격총과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특수부대원이 겪는 액션 활극이 아니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게 될 전쟁의 아픔을 소름 끼치도록 정교하게 그려 낸 작품 <디스 워 오브 마인>. 전쟁 게임의 탈을 쓴 채 반전을 부르짖는 아이러니한 게임.

  나라 간의 분쟁이나 트러블 따위는 총과 탱크로 시원하게 해결해버리자는 초강대국 수뇌부들에게 한 번씩 플레이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그들은 이런 게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다. <땅따먹기> 같은 게임을 더 좋아하겠지.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더 키우는 영원한 제로섬의 굴레.    


  베트남에서 담아온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9시 뉴스 시간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됐다. 방송 후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지만 이 분들의 용기 있는 증언에 귀 기울인 사람들도 꽤 있었는지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더니 얼마 후인 2018년 4월 20일, 두 명의 베트남 아주머님들은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한국의 국회의사당까지 찾아오게 된다.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는 많은 국회의원과 취재진 앞에서 조금 떨리긴 해도 강단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군은 왜 끔찍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50년이 넘도록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나요. 우리는 서로 사죄하고 용서함으로써 이 전쟁을 끝내고 후손들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줘야 합니다.”

  가해자들의 나라, 그 심장부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일갈하는 티 탄 아주머니의 모습은 그 어떤 전쟁 영웅보다 위엄 있었고, 어떤 총칼보다도 날카롭게 마음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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