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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May 08. 2020

어둠을 뚫고 도망쳐도 다시 암흑인 세상

PC게임 <롱 다크>


  큰일이다. 판단 미스다.

  10분 사이에 이렇게까지 어두워질 줄 몰랐다. 가로등이나 간판 같은 인공조명 가득한 서울 시내와 이 정도까지 다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경기도 군포시의 인적 드문 야산 한 복판, 살인범이 파묻은 피해자의 시신을 경찰이 가까스로 찾아냈고 수색의 성과를 미디어에 보이기 위해 기자들을 잔뜩 불러 모았다. 그 안에는 이제 겨우 입사 3년 차의 햇병아리인 나 또한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멘 채 심각한 표정으로 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과학수사요원들이 조심조심 유해를 수습해 차에 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향해 차가 출발하는 모습… 까지가 경찰이 현장에서 공개하기로 한 내용이었다. 취재가 끝나자 보도진들은 본격적으로 바빠졌다. 각자의 회사로 취재한 내용, 촬영한 사진, 현장 영상 등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메일이나 메신저 한 통으로 해결되는 텍스트 기사, 첨부파일이나 업로드 한 번으로 끝나는 사진에 비해 동영상은 보내기가 녹록지 않다. 요즘이야 현장에서도 LTE 기술을 활용한 송출장비를 이용해 촬영 즉시 본사로 보내거나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지만 2009년 당시 그런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결국 방법은 촬영한 테이프나 메모리카드를 들고 여의도 사무실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옆에 있던 경쟁사들은 부리나케 서울로 출발했다. 순간, 경찰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아주 높은 위치의 사람이 곧 이 사건에 대한 중요한 발표를 하겠다는 말인 듯했다. 대박. 이런 내용을 놓치면 큰일 난다. 게다가 이미 서울로 돌아간 회사들도 있기에 어쩌면 나만의 단독 취재가 될지도 모른다. 특종은 언제나 달콤한 법. 하지만 지금까지 촬영한 내용도 얼른 본사로 보내야 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당시로서는 최선이라고 여긴 판단을 내렸다.


  방송뉴스 현장 취재진의 기본 구성은 취재 차량 한 대에 <취재기자, 카메라기자, 오디오맨, 운전기사> 이렇게 네 명으로 이뤄진다. 지금부터 뭔가 중요한 브리핑이 시작되면 그 상황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때문에 일단 내가 카메라와 장비를 들고 현장에 남고 나머지 3명은 본사로 출발하기로 했다. “얼른 본사로 가서 메모리카드 전달하고 취재기자는 내려준 뒤 나를 데리러 다시 돌아와 달라. 그 사이에 난 특종을 하고 있겠다!”    


  스타렉스 취재차량이 기세 좋게 떠난 얼마 후, 경찰들은 주섬주섬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폴리스라인도 거둬들이고 감식 장비들을 싣더니 삼삼오오 차량에 탑승한다. ‘경력들 다 철수해’, ‘수고하셨습니다!’, ‘반장님은 서에 들렀다 가시겠어요 바로 퇴근하시겠어요?’ …뭐지? 왜 다들 집에 가는 분위기지? 브리핑은? 수사 중간발표는? 연륜이 좀 있어 보이는 경찰에게 물었다.

  “저기, 곧 현장 브리핑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아까 과장님한테 물어봤는데요 기자들 마감시간 때문에 다들 돌아간다니까 그냥 내일 하시겠대요 회의실에서. 그리고 여기 벌써 완전 깜깜해졌잖아요? 시골이 원래 좀 이래요. 뭐가 보여야 하죠 허허!”


  사람 좋아 보이는 너털웃음을 뒤로한 채 형사기동대 차량은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어 방범순찰대 버스, 관할 순찰차, 감식반 봉고차, 경찰서장 1호차까지 눈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평소에 퇴근 훈련이라도 하는 건지 이 좁은 산길에서 너무나 절묘하게 휘릭휘릭 사라지니 ‘어찌 읍내까지라도 좀 태워주십사…’ 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거의 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바글바글하던 야산에는 이제 정적만이 남았다.     


  고요. 적막. 침묵.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산 한복판에 나 홀로 남았다. 불빛이라고는 아주 멀리, 어림잡아도 십 수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을 민가의 전등 몇 개가 깜박이는 정도. 이렇게 추웠나 싶을 정도로 찬바람은 불어오고 어딘가에서 배고픔에 굶주린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착각 일리 없다. 이 정도의 데시벨은 시골 누렁이의 레벨을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아니 그런 것 따위는 어찌 됐든 상관없다. 내 옆, 움푹 파인 사람 크기의 웅덩이가 어슴푸레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는 정확히 20분 전까지 시신이 묻혀 있었다. 억울하게 숨진 피해자. 잔악한 범죄의 희생양.    


  어쩌면 범인을 잡지 못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덮여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신은 영영 발견되지 못했을 테고 가족들의 애틋한 작별 인사도 받지 못한 채 차가운 야산 중턱에서 외롭게 영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경찰이나 미디어가 오늘 한 일은 망자의 한을 풀어드리고 편안한 안식을 드린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무섭긴 무섭다. 주변의 환경 때문에 더 그렇다. 겨울밤의 짙은 어둠에 시각이 차단되다 보니 청각과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기괴하게 엇박을 타는 풀벌레 소리, 바람결에 나무들이 버스럭대는 소리조차 으스스하게 들린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산속 내음과 민가에서 나는 낙엽 태우는 냄새도 불쾌하게 콧등을 간질인다.

  후배에게 연락해보니 아직 서울 본사에도 도착 못했단다. 갔다가 이곳에 다시 오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더 남았다는 뜻이다.    


  카메라와 트라이포드 등 장비들이 너무 무거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조차 없다. 장비가 없다고 해도 이동하긴 글렀다. 주변이 모두 험한 산길이라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어차피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차이가 없다. 너무 무섭다 보니 이제 공포감이 뭔지조차 애매해진다. 내가 어둠인지 어둠이 나인지 의식은 몽롱해지고 정체모를 들짐승의 발소리는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2014년 캐나다에서 제작한 오픈월드 생존 게임 <롱 다크>. 경비행기로 우편물을 배달하던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으로 거대한 숲 속 한가운데 추락한다. 심각한 부상. 본인이 어디에 추락했는지조차 알 수 없고, 흉포한 늑대와 곰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홀로 대자연에 맞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 게임은 한없이 불편하다. 최소한의 정보조차 제공해주지 않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화면상의 맵 같은 것도 없고 시간조차 알 수 없다. 땔감을 구하러 나무를 조각내거나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버린다. 산속의 밤은 일단 장막이 한 번 내려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어두워져 침낭과 장비를 두고 온 동굴 입구가 어디였는지 찾을 수가 없다. 동굴 입구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발밑조차 보이지 않아 길로 이어지는지 낭떠러지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다.    


  마치 고대인이라도 된 듯 살기 위해선 불을 피워야 하지만 불 피우기도 간단치 않다. 행여 입고 있는 옷이 젖거나 찢어지면 찬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며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된다. 또 모든 행동에는 칼로리 소모가 뒤따라 걷든 뛰든 움직이든 체력은 쭉쭉 떨어지고 가만히 서있는다 해도 피로, 갈증, 배고픔 같은 곤란한 수치가 계속 증가한다. 인간이라는 개체의 작동방식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이지만 지금까지의 게임들에서는 못 보던 상황이라 적잖이 당황스럽다.



  ‘살아남는다’ 라는 서바이벌 게임의 본질을 무서울 정도로 충실히 재현해낸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나무들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슬슬 숙소로 돌아가는 게 맞지만 패딩까지 홀딱 젖으며 강 건너 힘들게 찾아온 마을 외곽 주유소에는 쓸 만한 땔감과 식료품이 풍부했다. ‘이것만 더 챙기자, 저것도 가지고 가야겠다’ 계속 욕심부리다 황급히 밖으로 나오니 주변은 탁한 어둠이 묵직하게 내려앉아있었다. 어젯밤에는 별과 달이라도 떠있어서 희미한 하늘빛에 의지해 숙소로 되돌아올 수 있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껴서 그런지 별빛 하나 안 보인다.


  설상가상, 눈마저 내리기 시작한다. 낭패다. 코앞에서 내뿜는 입김조차 안 보인다. 휘잉휘잉 눈바람 소리, 사락사락 나무가 강풍에 흔들리는 소리, 절망감 가득한 헉헉대는 숨소리, 가방에 욕심부리며 담은 통조림들이 서로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 자박자박 눈 밟는 걸음소리, 야행성 동물들의 활동 시작을 알리는 으르렁대는 소리… 보는 세상은 사라지고 듣는 세상만 남는다.     



  산길을 헤매고 또 헤맨다. 피로감이 극에 달하니 잠이 온다. 탈수증은 한참 전 시작됐고 위장은 텅텅 빈 지 오래다.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너무 추워 얼어붙은 몸뚱이의 감각은 무뎌졌고 정신은 몽롱하다.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시야도 좁아진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호흡이 아주 천천히 멎는다. 이렇게 떠난다. 사이버 임사체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충격적인 죽음이었다. 메이플 시럽의 나라,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무의미하고 덧없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곧이어 화면에는 한 줄의 문장이 처연하게 남는다.

  [ 당신은 4일 7시간 8분 29초 생존하였습니다 ]    


  거창한 목표나 어마어마한 대의가 아니라 그저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 <롱 다크>. ‘긴 어둠’ 이라는 제목이 이 얼마나 적절한지.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지만 그 캄캄함에 잠식당하지 않고 단 몇 분, 몇 초라도 더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지독한 이야기.     


  얼핏 선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무서워서 기절을 한 건지, 너무 추워서 뇌가 약간의 기능정지 모드에 돌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남은 야산에 쪼그려 앉아 2시간 넘게 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을 살짝 잃었던 것 같다.

  꿈결 속을 떠다니던 중 멀리서 그르렁거리는 4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회사의 은빛 스타렉스는 마녀의 숲에서 길을 잃은 아더왕을 구하러 은빛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한 마리의 암사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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