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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단 May 07. 2020

그렇게 그들은 밤하늘의 별이 되었지

PC게임 <콜 오브 듀티2>


  11월의 강원도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밤이었다. 강원도 양구군 남면 청사리에 있는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스무 한두 살 남짓의 까까머리 청년들은 모두 합해 백여 명. 밖에선 분명 신세대, X세대라고 불리며 통통 튀고 개성 넘치는 청춘들이었을 테지만 강도 높은 폭력과 비합리적인 규율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며 잘 규격화된 국방부의 소모품으로 다듬어지는 나날이었다.


  수십 년간의 검증과정을 거친 신병교육대의 커리큘럼대로 일정은 착착 진행됐고 입소 4주 차를 맞아 야간사격훈련의 날이 다가왔다. 가뜩이나 사고도 빈번하고, 한 번 났다 하면 요단강을 건너냐 마냐 할 정도로 위험한 게 총기 사고인 만큼 교육을 하는 자나 받는 자나 스트레스 지수가 극도로 상승한다. 욕설은 물론 구타까지도 상부 묵인하에 버젓이 자행될 정도로 빡센 훈련이 사격인데 그걸 앞이 보이지도 않는 야간에 진행한다는 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저녁 식사가 끝나고 훈련이 시작됐다. 체력단련, 영점사격, 선착순, 실사격, 체벌, 불합격자 재사격, 얼차려 등의 알찬 프로그램은 자정에 가깝게 이어졌다. 몸은 이미 푹 퍼진 물만두처럼 생기를 잃었고 앞에 선 교관의 야간 기도비닉 강의는 달콤한 자장가 같았다.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는 게 나만은 아니었나 보다. 꾸벅꾸벅 고개가 꺾이는 아이들이 영 안쓰러웠는지 교관은 우리 분대에게 20분 남짓한 휴식시간을 줬다.

  다들 적당한 그루터기나 초목 위에 대충 걸터앉았다. 삼삼오오 모여 여자 친구 얘기를 나누거나 내일 아침 식당 메뉴, 걸그룹 컴백 정보 등을 재잘거렸다. 산속이라 그런지 겨울인데도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벗 삼아 살포시 조는 친구들도 보였다.


  깊은 산속의 따스한 밤, 왠지 좀 평화로웠다.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별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 하늘은 정말이지… 예뻤다. 말도 못 하게 아름다웠다. 시골 사람들은 이런 밤하늘을 매일같이 자기들만 감상하면서 살고 있었단 말인가?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새카만 도화지에 은빛 모래알과 하얀 잔돌을 솔솔 흩뿌려놓은 듯 별들이 빼곡했다. 틈새에 더 이상 끼워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별들은 저마다 눈부시게 반짝였다. 주변이 어두울수록 별이 잘 보인다는 걸 처음 알았다.


  수려하게 빛나는 별빛이 쏟아져 내려 온몸을 적시는 경이로운 순간, 내 두 손에는 하필 인명 살상의 대표 브랜드 ‘대우정밀’이 생산한 K2소총이 들려 있다는 사실이 좀 부끄러웠다. 티 없이 천사 같은 다섯 살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한 연쇄살인범의 심정이랄까? 곱디고운 밤하늘 아래서 나는 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의 사용법을 익히고 있는가. 스스로 원한 것도 아닌데 흉악스러운 무기로 상대를 말살시키는 법을 배워야 하는 슬픈 시간들.


  달 밝은 밤, 비극적인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전쟁의 신을 저주해 마지않는 청승을 떠는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니었을 거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무수히도 많았겠지. 1592년 임진왜란, 큐슈를 출발해 쓰시마를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세키부네(関船) 선단 700척에는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수많은 병졸들이 좁은 갑판에서 두 다리도 제대로 못 편 채 밤잠을 설쳤다. 성곽 마을 포목점에서 일하다 징집된 17살의 다케다 이츠키는 어슴푸레 뜬 눈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조선 땅을 정벌해 천황 폐하께 꼭 바치리라!’ 이런 생각을 했을 리 만무하다. 꼭 살아 돌아오라며 뒤돌아서 눈물짓던 동갑내기 연인 하루를 생각하며 손에 쥔 조총만 착잡하게 만지작거렸겠지.


  그저 무사히 숨이 붙은 채로만 돌아가자고 각오를 다졌지만 조선 땅에 상륙해 처음으로 치른 부산진 전투, 성벽 위의 노련한 조선 병사가 날린 화살에 폐를 관통당해 가쁜 숨을 몰아쉬다 불귀의 객이 되었을 터… 이츠키군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건 천황도 다이묘도 아닌 하루의 뽀얗고 동글동글한 웃는 얼굴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청춘들의 생명이 겨울바다의 물거품처럼 부서져 내렸을까.


  역사에 기록이 안돼서 그렇지 이렇게 안타까운 사연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서기 180년, 모닥불 앞에 앉아 호밀빵을 으적으적 씹고 통밀 맥주나 마시면서 휘게 라이프를 즐기고 싶었던 게르만 족의 유쾌한 청년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와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제국의 정예군단과 게르마니아의 패권을 둘러싼 일전을 벌여야 했다. 거대한 방패를 단단히 포갠 채 창을 들고 압박해 오는 수만 명의 로마 병사 앞에서 자작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한 몽둥이 하나 들고 있던 청년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다른 나라와의 싸움이 아니라서 서로 말도 통하는 데다가 어린 시절 친구가 눈앞에 적으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1455년 장미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리처드. 높으신 나라님들이야 이교도를 무찌르자느니 성스러운 교회를 지키자느니 번드르르한 말 투성이지만 천애 고아로 먹고살 길이 막막해 어쩔 수 없이 3000킬로미터가 넘는 대장정의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1095년의 프랑스 청년 마르텡. 대량살상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사담 후세인을 없애 중동의 평화를 이룩하자며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라는데 그런 건 뭐 아무래도 상관없고 비싼 등록금과 학비에 답이 안 나와 전역 후 받을 대학 지원금만 바라보고 미 육군에 지원한 2003년의 텍사스 청년 프레드.


  하나같이 딱하고 안쓰러운 젊음이다. 늙은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서 숫자 놀음하듯 정한 게임의 룰대로 움직이다 죽어간 청춘의 장기말들. 이들의 삶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기억조차 해주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한 순간 반짝였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간 이들…




  2003년에 처음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1인칭 슈팅 게임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한 콜오브듀티 시리즈. 모던워페어, 블랙옵스, 인피니트워페어 등 과거는 물론 현대전과 미래전을 넘나들며 흥행을 이어가는 전쟁 FPS 게임계의 슈퍼스타 프랜차이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여운이 남았던 작품을 하나 꼽아보라면 2005년에 발매된 초기작 <콜오브듀티2>의 손을 들고 싶다.


  전쟁, 그 한복판에 선 인간의 공포와 고립감이 어떤지는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그려냈다. 시나 소설, 그림과 음악. 그중에서도 영화 매체는 전쟁이란 게 없었다면 도대체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단골로 다루고 있는 소재이다. 1998년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작품은 소름 돋게 사실적인 전투 장면으로 관객을 충격에 빠트렸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쏟아지는 포격음, 포탄에 사지가 절단되는 충격적인 비주얼에 일반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 할아버지들마저 영화를 보고 나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인정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압도적 재현. 영화는 보는 이들의 멱살을 잡고 1944년의 오마하 해변으로 질질 끌고 가 전장 10미터 앞에다가 앉혀놓는다. ‘보아라, 이것이 전쟁이다!’ 그래, 이게 바로 영화의 힘이다. 그렇다면 게임은? 안타깝게도 10미터 앞이 아니다. 0미터다. 그냥 그 한 복판에 던져 넣는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가슴 졸이며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총을 들고 피로 물든 해안가를 달려야 하는 군인이 되는 것이다.    

  몰입감이 다르다. 계속해서 판단을 내리고 뛰어다니며 극도의 압박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옆에서 농담을 나누던 동료들이 MG42 기관총에 맞아 픽픽 쓰러지는데도 슬픔이나 애도 같은 품위 있는 감정보다 그저 나만은 살아 보겠다며 계속 달려야 한다. 하늘을 뒤덮는 독일군의 해안포에 지면이 흔들리고 모래와 바닷물이 튀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끊어지려는 이성의 끈을 꽉 붙들고 전장을 바득바득 기어 다닌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미군과 함께 <콜오브듀티2>의 엄연한 한 축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소련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만 톤 급 수송선을 8시간마다 한 대씩 뽑아내고, 4만 톤 급의 항공모함은 한 달에 한 척씩 건조할 정도로 물량을 쏟아붓던 미군에 비하면 가여울 정도로 열악한 러시아군. 게임의 첫 시작이 바로 이들이다.

  총을 잡아본 적도 없는 러시아 청년 바실리 코슬로프는 독일로부터 고향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한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정치장교가 시키는 대로 총을 들고 곰인형과 와인병을 쏘면서 기본기를 익히고, 수류탄 훈련을 받을 차례에는 수류탄 대신에 감자를 창문 안으로 던지며 투척 연습을 한다. 옆 동료 페트로프가 진짜 수류탄도 아닌 감자를 던져서 무슨 훈련이 되겠냐며 투덜대자 정치장교는 일갈한다.

  “진짜 수류탄은 비싸기 때문이야! 너희 같은 것들보다 훨씬 가치가 있지!”



  눈 내리는 영하 15도의 모스크바.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면서 감자를 던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훈련을 한다. 무기나 지원은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만큼은 활활 타오른다. 주인공 바실리를 비롯해서 훈련소에 모인 이들 대부분이 독일군의 포격에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잃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기에 붉은 군대로 들어와 모신나강 소총을 들고 일어선 것이다.

  처음엔 어수룩하고 부족하기만 한 바실리와 동료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곰국 소련의 기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영하 40도의 스탈린그라드, 티거 탱크를 앞세운 독일군의 공격에도 ‘얼어 죽는 거나 파시스트 총에 죽는 거나 그게 그거지’ 라면서 용감하게 뛰어드는 동지들. 독일 저격수가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 노리고 있는데도 가족과 애완견의 복수라며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    


  싸우다 보면 내가 바실리인지 바실리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감정이입이 된다. 대부분이 시가전이기에 건물 곳곳에 숨어있는 독일군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 대신 사방에서 들려오는 건 총성과 다급한 독일어 외침들. 어디든 독일어가 들린다 싶으면 일단 그쪽으로 총을 갈기고 본다. 쏘다보면 반대편 건물 창가에 있는 독일군이 내 총에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애매한 순간이 온다. 위험하니 섣불리 먼저 나갈 수도 없다. 그 순간 창문 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입김. ‘이 녀석 아직 살아있구나. 그리고 저 입김이 나는 방향 쪽에 놈의 머리가 있겠구나’ 모신나강의 조준경을 입김 쪽으로 조심스럽게 향한다. 슬금슬금 이쪽을 보기 위해 독일 병사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 곧바로 총을 발사한다.



  게임 상에서 적 한 명을 사살한 거지 뭐 별것도 아니다. 수천 명에 가까운 적을 죽여야 끝나는 게임이니까.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다. 평소였으면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는, 조금은 낭만적이면서도 따뜻한 단어인 ‘입김’ 인데, 그 뽀얀 입김을 보면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찬스라며 신나 하는 비정함이 착잡할 뿐이다.

  이런 순간은 비일비재하다. 먼발치에서 맞서던 독일 병사가 총에 맞아 쓰러졌기에 안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는데 피를 흘리며 다 죽어가면서도 독일어로 욕을 내뱉고 이를 악물며 권총을 쏘아댄다. 무시무시한 증오와 복수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전쟁이다.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스탈린그라드의 소렌치냐 야전병원을 가까스로 탈환했다. 한숨 돌리는 것도 잠시, 압도적인 병력의 독일군이 멀리서부터 몰려들고 있다. 초라한 장비의 동지들에 비해 독일군의 첨단 무기는 이 얼마나 강력해 보이는가. ‘Made in Germany’ 의 무지막지한 화력과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걱정스레 바라본 광장에는 이미 죽어 있는 동지들의 시체가 수두룩하다. 나도 곧 저들을 따라가게 될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지휘관 레오노프 중위가 목청을 높인다.

  “동무들! 우리의 영광스러운 조국을 위해, 돌격!”

  ‘For mother Russia!’ 라는 구호와 동시에 모두 ‘우라(만세)!’를 외치며 달려 나간다. 무섭지만 혼자는 아니다. 옆에는 보리스도 있고 안드레이도 바로 뒤따라 뛰어오고 있다.



  살면서 해왔던 수많은 게임 중에 소름 돋는 장면이 몇 번 있었는데 바로 이 ‘우라 돌격’은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순간이었다. 모든 게 열악한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내 나라 지키겠다며 모두 함께 무모하게 진격하는 모습이라니… 바보 같은 우직함에 조금 감동했는지 손이 떨려서 마우스 클릭이 잘 안될 정도였다.
   실제로 1942년 12월, 저 날의 소련 청년들은 얼마나 복잡한 심정으로 독일군의 총구를 향해 달려 나갔을까. 공장 일 끝나면 친구 놈들과 보드카 한 병 나눠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게 인생의 낙이었을 텐데. 같은 작업장의 타냐에게 언제 고백할지 정도가 인생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이 순진한 청년들은 왜 죽어나가야 했을까.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소련에선 무려 2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높으신 분들의 야욕 때문에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낙화한 젊음들. 소련, 미국뿐 아니라 베를린의 청년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수많은 시대, 수많은 들판 위에서 힘없이 바스러져 먼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불꽃같은 청춘들에게 애도의 꽃 한 송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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