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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Nov 25. 2019

퇴사 2년, 상상도 못 했던 변화 4가지

‘퇴사 사유 : 육아시간 부족’, 그 후 2년

워커홀릭을 자처하며 퇴사하는 날까지 출근해 일했다. 높은 연봉에 직원이 주주인 좋은 회사였지만 대행업 특성상 일이 정말 많았다.


팀장과 면담했을 때 육아 때문에 퇴사한다고 했지만 '일이 힘들어서'라고 알아듣는 것 같았다. 회사 경영진 대부분이 남자였고, 아이가 없거나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아 이해와 공감이 안 되는 느낌이었다.


사직서 사유란에 한번 더 정확히 <초과 근무로 인한 육아 시간 부족>이라고 썼다. 회사에서 근무 시간이나 직무의 변화를 제안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궁서체로 썼던 내 퇴사의 변은 진지충 취급을 받으며 외로운 메아리로 남았다.


그렇게 퇴사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아이는 5살이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더 빨리 퇴사했을 것 같다.


여전히 주변에 퇴사를 고민 중인 워킹맘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반문한다. 진짜 퇴사가 옳았나? 방법이 그뿐이었나? 버텼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영화 <82년생 김지영>에도 나오지만 회사가 주는 안정적인 소득 외에 소속감, 존재감, 성취감 등의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럼에도 육아와 일을 저울질하다가 놓쳐버릴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막상 겪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할 만하다^^(여기서 육아를 위해 왜 꼭 엄마인 내가 퇴사를 해야 했나에 대한 논의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너무 길어지니까.)

 




1. 눈물이 줄었다


달리운동장 촬영하러 온 노르웨이 유명 코미디언과 함께 @이수지


최근 회사를 나온 이후에 거의 울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스스로도 놀랐다. 회사 때문에, 팀장 때문에, 고객 때문에, 일 때문에… 참 많이 울었다. 남 탓과 원망으로 가득 찬 이 눈물은 잘 해결되지도 않을뿐더러 자존감마저 훼손했다.


육아를 하면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회식이나 주말 행사 같이 예전에 일상적이었던 일들도 사연이 많아지게 했다. 더 티 나지 않게 또는 더 잘해서 육아와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안 느껴지게 하고 싶은 이중고를 가져왔다. 그래서 계획대로 안 될 때면 너무 억울하고 서러워 감정의 여유나 조절장치를 쓸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영화 보면서 울고, 목을 삐끗해서 아파서 울 뿐이다.(아직 남편 때문에… 라는 지점은 좀 남아있는 것 같다. 하하) 화나서 울지 않는다. 그냥 슬플 때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서 좋다.





2. 아이와의 시간이 늘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이수지


뱃속에서 10개월을 동거 동락한 아기에게 엄마는 인생 최초 최고의 존재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인 아기에게 엄마만큼은 익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7시 출근해서 8시 퇴근하고 주말에도 행사를 나가던 회사원 시절, 아이가 친구들을 자주 꼬집고 할퀴어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일 년에 두 번은 꼭 장염, 폐렴으로 입원했고 자주 병치레를 하는데도 나는 아이가 삼시세끼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 엄마였다. 모든 것이 엄마와의 시간 부재 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연관이 없지도 않았다.


퇴사 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이 절대적인 시간 확보가 너무 중요했구나 깨달았다.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이 회사를 다닐 때는 특별히 노력해야 할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늦잠 자는 아이를 사납게 깨워서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아도 되고, 스마트폰을 쥐어주며 엄마 일 금방 끝나니까 잠깐만이라고 애원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좋다. 잘 놀아주다 보니 TV를 거실에서 치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지 않게 되었다.


아이만 좋은 것이 아니라 내 정신 건강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지금 켜켜이 쌓아가는 안정된 집중의 시간들이 앞으로 아이가 커서 어려운 일을 마주하더라도 헤쳐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을 느낀다.





3.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갔다


달리운동장에서 k-pop 댄스 배우는 중 @이수지


최근에 스스로 자각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 퇴사 후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 회사 다닐 때는 아이가 돌도 안 되었는데도 데리고 무조건 일 년에 한 번, 두 번은 해외여행을 갔다. 힘들게 일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였던 것 같다.


이제 주말과 여행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평일에도 주말처럼 쉬고 싶으면 좀 쉬었다 일하고, 일상이 여행처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넘치니 더 이상 강박처럼 주말을 기다리고 여행을 계획하지 않게 된 것이다. (월요병도 물론 사라졌다.)


다만 천천히 일했을 때 소득도 천천히 따라온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닌 것은 천천히 버는 만큼 천천히 쓴다. 진정한 슬로라이프.


늦잠, 지각, 변덕 등 귀여운 변화도 있다. 조직에 있을 때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평가에 절절매는 비자발적 눈치 백 단, 극소심형 인간이었다. 자책이 잦고 자존감이 낮았다.


이제는 실수나 실패 앞에서도 뻔뻔해졌다. “퇴사도 한 마당에 뭘 못 해”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 아니면 말고”라고 배짱을 부리니 생각보다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가끔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서른 중반이 넘어 알게 되다니…


회사 다닐 때는 오늘 할 일 내일로 미루지 않고 고객의 전화, 업무 메일을 우선순위로 했다면, 이제는 오늘 할 운동, 취미생활, 가족과의 시간 등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꼭 챙긴다.      





4. N잡러가 되었다


포포포 매거진 마케팅 하러 간 교보문고 앞에서 @이수지


마지막으로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직업을 여러 개 얻은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런 일자리가 밖에서 부족해서 창업도 했다.


온라인 쇼핑몰 마케팅, 에어비앤비 호스트, 그룹운동 공간 '달리운동장' 운영자, 독립출판 매거진 발행, 콘텐츠 마케팅 대행 등 다양한 일을 하며 프로N잡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금 같은 내 시간을 들이는 일에 있어서 기준이 명확해졌다. 한 만큼 돈이 되거나, 돈이 안 돼도 그만큼 의미가 있거나. 둘 다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에어비앤비 운영도 하고 있다 @이수지


일과 놀이의 경계가 가끔 모호할 정도로 일을 즐기고 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공부가 더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서로 입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엄마들과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크게 한방을 노리며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려던 조직에서와 달리 잔잔하게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마련해가는 중이다.


퇴사 2년, 퇴사해서도 균형 있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나를 챙기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엄마들이 일과 육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잔인한 기로에 놓이지 않게 직업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있는 하나의 케이스가 되고 싶다.



by. 이수지(포포포 에디터이자 마케터, 달리운동장 CEO, 에어비앤비 달리하우스 호스트)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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