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Sep 27. 2018

결혼 6년차, 명절을 보이콧하다

우리는 짐을 싸서 호텔로 향했다 

"세상이 바뀌었잖아. 우리 세대는 달라야지."


어렵게 입을 뗀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내년부터 설날에는 시댁, 추석에는 친정. 번갈아 가겠다고. 그리고 이번 명절에는 양가 어디도 가지 않겠다고.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명절문화. 엄마 세대가 그렇게 살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잘못된 유교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하지 않겠냐고. 당장은 힘들더라도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명절에 차례 안 지내고 여행 다녀도 좋을 것 같다고. 


옆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울컥 뭔가가 올라왔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웹툰 <며느라기> 중에서


1984년생인 나는 여자도 남자와 다를 게 없다고 믿으며 자랐다. ‘우리 집에는 남녀 차별 같은 거 없어.’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실제로 3살 아래 남동생보다 내가 공부도 잘 하고 부모님의 기대를 더 많이 받았다. 


그런 내게 명절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여자도 남자와 다를 게 없는데, 남녀가 평등한데 왜 명절에는 늘 아빠 집 먼저 가야 하는 걸까. 왜 여자들만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옆에서 여자들은 기름 냄새 맡으며 허리 끊어지게 일하는데, 왜 남자들은 누워서 TV 보고 술 먹고 고스톱 치고 있는 걸까. 왜 여자들은 남자들 술상까지 차려야 하는 걸까. 음식은 여자가 했는데 왜 차례는 남자들만 지내는 걸까. 


외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는 한시라도 빨리 엄마 집에 가고 싶었다.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나면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아빠는 한참이 지나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술 먹고 고스톱 치다가 엄마와 내가 재촉하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형제들에게 “금방 갔다 올 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남녀가 평등한데 엄마 집은 아빠 집의 곁다리 같았다. 


결혼 6년차. 9번의 명절을 보낼 때마다 우리 부부는 매번 싸웠다. 시댁과 친정은 거리가 멀어 둘 다 가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더 그랬다. 친정 부모님은 힘든데 뭐 하러 명절에 오냐고 괜찮다고 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곱게 한복을 입고 시댁 식구들과 함께 웃고 있는 아이 사진을 보며, 언젠가 친정 엄마는 쓸쓸하게 말했다. 


“너네는 명절 기분 나서 좋겠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명절에는 당연히 시댁 먼저 가야 하는 걸까, 왜 나는 눈치 보며 시댁 부엌을 서성대야 하는 걸까, 왜 친정 부모님은 딸을 가졌다는 이유로 손주와 함께 화목한 명절을 보낼 수 없는 걸까. 명절은 설명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영화 <초행> 스틸컷. 동거중인 남자친구 수현의 집에 간 지영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을 부친다


시댁의 명절 풍경은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집에서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 나는(대신 다른 가사노동은 대부분 내 몫이다) 전 부치는 남편 옆에서 조수 노릇만 할 뿐이었다. 


누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 이렇게 편한 시댁이 어딨냐고? 일을 많이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명절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며느라기’ 시절, 차례상에 올릴 탕국을 끓이는 시어머니와 작은 어머니 옆에 어설프게 서서 음식 배우는 시늉을 하던 나. 어느 명절 아침, 남편도 아이도 시누이도 자고 있는데 나만 깨우던 시어머니, 어리둥절해하며 부엌으로 향하던 나. 


남녀평등과 페미니즘을 외쳤지만 사실 나는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친정 엄마가 있던 자리, 지금 시어머니가 있는 자리. 


시어머니에게는 죄가 없었다. 며느리의 운명은 다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시어머니의 엄마,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도 그렇게 살았으니까. 어쩌면 지금 시어머니는 내게 묻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왜 너만 다르게 살아야 하느냐고.


정해진 운명을 온전히 따르지도, 그렇다고 거스르지도 못한 채 나는 괴로워했다. 1년에 2번, 며느리 역할극을 하고 있는 나는 도무지 나 같지 않았다. 존재의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니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민사린의 대사처럼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들”이었다. ‘생각을 버리자, 생각을’ 영혼 없는 얼굴로 시댁 소파에 앉아 있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소화불량은 덤이었다. 원망은 자연스레 남편을 향했다.


남편은 천천히 바꾸자고 했다. 내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명절에 아들이 차례를 지내는 건 부모님에게 종교와도 같은 일이라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들이 평생 지켜온 삶의 방식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 않냐고. 


나중에 남편은 솔직하게 말했다. 기존의 명절문화가 불합리하다는 건 알지만 자신은 명절이 하나도 불편할 게 없었다고. 본가에 가면 가족들이 애도 봐주고 맛있는 것도 먹고 편히 쉴 수 있으니까. 명절문화를 바꾸는 건 자신에게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고. 남편은 명백한 기득권자였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면 



시부모님에게 명절문화를 바꾸자고 이야기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효도는 돌려받아야 할 채권도, 훗날을 기약해 발행한 어음도 아니”(<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p.92)건만. 남편은 패륜을 저지르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시부모님은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분들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투쟁’하기로 한 것은 이 문제가 우리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남편과 남편 집안에 종속된 존재로 살아가면서는 행복할 수 없다. 


김은덕, 백종민 부부가 쓴 책 <사랑한다면 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부부 사이에 ‘내가 힘들고 말지’ 하고 자신의 감정을 묵인하거나 원하는 바를 외면하는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난다. 타협일 수도 있고, 희생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사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선은 아니다. 건강한 부부는 싸움을 회피하지 않는다. 사소하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일을 이야기하고, 그 와중에 분노와 슬픔이 속절없이 흘러나오더라도, 지금 당신은 상대방을 가능성의 존재로 수용하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p.161 


남편과 내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하지만 시부모님 생각은 달랐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는 날, 우리 세 식구는 짐을 싸서 호텔로 향했다.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에디터 홍 브런치 brunch.co.kr/@hongmilmil/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호캉스, 달콤할 줄만 알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