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Feb 14. 2019

며느리는 백년손님... 제가 한번 해봤습니다

명절, 시댁에서 손님 코스프레 해봤더니

명절은 참 빨리도 돌아온다. 지난해 추석 보이콧 이후 올해부터 구정에는 원주에 있는 시가, 추석에는 부산에 있는 친정에만 가기로 했다.


결혼 후, 시가와 친정이 멀어 양쪽 다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매번 친정에 못 가는 일이 반복됐다. 아이에게 명절에는 원주에만 가는 게 아니라 부산도 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빠네 가족만큼 엄마네 가족도 공평하게 소중하다는 걸.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남편과 나는 이런 결정을 시부모님에게 알렸고 이내 거센 반발이 있었다. 양쪽 다 마음에 생채기를 안고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다. 지난해 연말 한번 봤고 이번 구정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백년손님


명절에 시가에 가도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보다 훨씬 요리 잘 하는 남편을 도와 충실히 보조 노릇을 하면 될 뿐이었다. 상차림 도와주고 수저 놓고 설거지 하고 과일 깎고 커피 타고. 써놓고 보니 주로 티 안 나는 잡일이다. 그런데 이 티 안 나는 잡일을 수행하려면 늘 눈치를 봐야 했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니까.

언젠가 시어머니는 말했다. 너처럼 시가에서 편하게 지내는 애가 어딨냐고. 겉으로 보기엔 그랬을 거다. 그런데 해가 몇 번이나 바뀌어도 시가는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다. 모두가 익숙한 공간에서 나만 어색하고 뻘쭘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싱크대와 거실 사이를 괜히 왔다 갔다 했다(그러다 물 한 잔 마시고).

에잇, 설거지라도 열심히 하자, 개수대에 서 있으면 내가 왜 여기서 이걸 하나 싶고(남편이 친정에서 설거지한 적이 있던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며느리 도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명절을 앞두고 다짐한 게 있었다. 며느리로서의 부담을 내려놓자고. 남편이 친정에서 그렇듯이 나도 시가에서 손님이라고. 그러니 너무 눈치 보거나 종종거리지 않아도 된다고.

명절 하루 전날 새벽 5시 반에 원주로 출발했다. 다행히 막히지 않고 도착. 밥 먹고 명절 음식을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일찍 일어나서 운전하느라 피곤하면 들어가 자도 된다고 했지만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잠깐의 꿀잠이 가져올 엄청난 파국. 남편은 그 정도 판단력은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투실투실한 손.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남편은 어릴 때부터 명절 음식을 만들어왔다(출처 : 마더티브)


남편은 여느 때처럼 전 부치는 메인석을 차지했다. 시누이가 쉬는 날이라 남편의 보조를 맡았다. 시어머니와 작은어머니는 다른 음식을 준비했다. 시아버지는 아이를 전담 마크했다. 작은아버지는 흔들의자에 앉아 잠들었다.

그럼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산적 재료를 준비해주겠다며 꼬치에 꽂으라고 했다. 꼬치에 손이 찔려가며 열심히 꽂았다. 그러고 나니 또 할 일이 없었다. 모두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고 내가 끼어들 틈은 없어 보였다. 남편 옆에 앉아서 전 좀 주워 먹었다가, 애 좀 봤다가, TV좀 보다가...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피곤하면 들어가서 자.”


시어머니의 말에 잠이 깼다. 다행히 오래 자지는 않은 것 같다. 옆을 보니 작은아버지는 아직도 숙면 중이고, 작은어머니는 여전히 주방에서 열심히 음식을 하고 있었다.


부엌 탈출


왜 남편은 친정에 가면 저렇게 편하게 있는 걸까. 거실 소파에 벌러덩 누워 텔레비전을 보지 않나, 엄마랑 아빠가 주방에 서서 음식하고 설거지해도 눈치 하나 안 보는 걸까. 억울했다. 남편이 친정에서 손님인 것처럼 나도 시가에서 손님처럼 지내리라 다짐했다. 그게 평등한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몸속에 며느리 DNA라도 새겨져 있는지 시가에 가면 늘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남편은 시가에서도 소파에 벌러덩 누워 TV 보는데 나는 시어머니가 과일을 깎아도 눈치, 시아버지가 설거지를 해도 눈치가 보였다. ‘제가 할게요’ 소리가 입에서 맴돌았다.

이번 명절은 달랐다. ‘나는 백년손님이다, 남편처럼 백년손님이다’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남편을 주방에 더 많이 보내고 나는 소파를 차지했다. ‘제가 할게요’ 같은 소리는 입밖에도 안 꺼냈다. 설거지? 한번도 안 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주방에서 탈출한 나와는 달리 시어머니도 작은어머니도 주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책 속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같은 운명의 수많은 여성 동지들이 격렬한 신체적 거부반응과 싸우며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있을 때, 나 혼자 부엌을 탈출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또 다른 착취일 뿐이다.” 박선영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p.202


평등에 대하여




나는 그저 남자들 옆에 서고 싶었던 것 아닐까(출처 : 웹툰 <며느라기>)



어린 시절, 아빠쪽 본가에 가서 차례를 지낼 때면 정작 하루 종일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든 엄마와 큰엄마는 방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큰방에서 차례 지내고 있으면 거실에서 엄마와 큰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왜 여자는 차례 못 지내는 거야?!” 아빠, 큰아빠, 삼촌, 사촌오빠, 남동생 틈에서 기어코 차례상에 절을 올렸다. 방안에 여자는 나뿐이었다. 남자들과 나란히 차례를 지내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게 평등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오직 나 한 사람만 차례상으로 이동한다고 평등이 이뤄질 리 없었다. 나는 그저 남자들 옆에 서고 싶었던 것 아닐까. 명절이 기름 냄새와 설거지로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의 자리에.

명절 문화를 바꾸는 건 단순히 며느리 자리에 아들을 집어 넣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을 명절에 나만 부엌에서 빠지는 건 누군가(주로 여성)의 노동을 가중시킬 뿐이다. 명절 음식은 모두의 입에 들어간다. 대접할 사람과 대접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닌데 나만 홀로 손님이 되는 건 평등하지 않다.

다음날인 명절 아침. 나는 열심히 차례상 차리는 걸 도왔다. 전날 푹 잔 작은아버지도 함께^^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진정한 평등은 남자가 하지 않는 일을 여자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게 아니다. 남자도 여자도 함께 일할 때 찾아온다.


아무래도 손님 코스프레는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죄 지은 것처럼 종종거리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며느리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는 법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예의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찾는 중이다.  


차례와 세배까지 클리어. 길 안 막힐 때 가는 게 낫지 않냐는 시어머니의 말과 남편의 흔들리는 눈빛을 뒤로 한 채 기어코 짐을 챙겼다. 더 있다 가려면 근처에 있는 시어머니의 친정에 가야하고, 그럼 거기 있는 며느리들 할 일이 더 늘어날 테니까. 손님은 어딜 가나 짐이다.

도로는 막혔고 원주에서 서울까지는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마음의 체증보다는 교통체증이 차라리 나았다.

이번 추석에는 드디어 친정에 간다. 나와 남편이 빠지면 시어머니와 작은어머니의 노동총량은 늘어날 것이다. 그 빈 자리는 다른 시가 식구들이 잘 채워주리라 믿는다.

대신 나와 남편은 친정엄마의 명절 노동을 나누려 한다. 결혼 6년 만에 처음으로.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에디터홍 브런치 brunch.co.kr/@hongmilmil/




매거진의 이전글 명절 보이콧 며느리들, 그 다음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