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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04. 2019

겨울에 아이와 부산 가면 뭐가 있는데요?

[엄마의 PLACE]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부산 여행지 5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부러워한다부산 관광지, 맛집 이름을 대며 내게 의견을 묻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돼지국밥도 밀면도 씨앗호떡도 낙곱새도 부산 살 때 먹어본 적이 없다. 부산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생 용돈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건 2000원대 닭갈비와 칼국수 정도? 그것도 친구 생일쯤 돼야 먹었다(여기에 노래방+스티커 사진 코스). 
 
부산이 친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부러워한다아이 데리고 갈 곳 많겠다고. 맨날 바다 보면 되겠다고. 미안하지만 부산도 여름에는 덥고(여름에 해수욕장 갔다가 더위 먹었다ㅠㅠ) 겨울에는 춥다. 서울의 추위만큼은 아니지만 추울 때는 칼바람이 매섭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부산 친정에 와도 늘 가던 곳만 갔다. 고향집에는 쉬러 오는 거니까.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너무 어려서 마땅히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었다. 2018년 연말이번 어린이집 겨울방학에는 30개월 아이와 좀 더 다양한 곳에 가볼 수 있었다
 
여행은 아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아이 덕분에 낯선 곳을 애써 찾아다녔고,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추천한다. 아이도 어른도 즐거웠던 겨울 부산 여행지 다섯 곳


1. 복합문화공간 F1963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F1963(출처 : F1963 홈페이지)


카페와 중고서점이 함께 있는 공간이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나와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애 데리고 카페? 서점? 가당키나 한 소린가요. 그런데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훨씬 넓고 탁 트여있어서 아이와 시간 보내기 좋았다. 종횡무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딱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F1963는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1963은 고려제강이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처음으로 공장을 지은 해를 뜻한다. 운영을 멈췄던 공장은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기존 공장 공간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채 리노베이션한 재생건축이다. 야외에는 초록빛 대나무 숲이 조성돼있어 공장의 금속성을 중화시켜 준다. 

이곳에는 강릉에 본점을 둔 카페인 테라로사를 비롯해 YES24 중고서점, 국제갤러리 부산점, 뜰과숲원예점, 복순도가 등의 매장이 있다. 3월에는 예술전문도서관도 오픈 예정이라고. 
 

테라로사 카페. 왜 저기서 트랙터 장난감을...(출처 : 마더티브)


야외 공간이 넓다. 따뜻할 때 오면 더 좋을 듯(출처 : 마더티브)


테라로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장식 카페라 사실 큰 감흥이 없었다. 특히 좋았던 곳은 YES24 중고서점. 아이들 연령별로 읽을 만한 책이 비치돼있어서 한참을 그림책 읽으며 놀았다. 중고라 저렴하게 책을 살 수 있는데 상태도 좋아서 아이 장난감 책 한 권, 내 책 두 권을 샀다. 
 
한쪽에서는 어린이 전집을 중고로 팔고 있었다. 학창 시절 새학기 시작할 때마다 보수동 헌책방에서 참고서를 사던 기억이 났다. 서점 화장실에는 기저귀 가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아이와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았다. 
 

YES24 중고서점 수영점. 키즈존이 잘 조성돼있다(출처 : YES24 홈페이지)


서점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예 신발을 벗고 편하게 앉아서 책 읽을 수 있는 계단식 마루가 있다. 아이가 낮잠이 드는 바람에 2시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랑 오는 것도 좋았지만 애 없이 혼자서도 다시 오고 싶은 곳.

YES24 중고서점 수영점 영업안내
영업시간 평일 11:00 ~ 20:00
주말 및 공휴일 11:00 ~ 21:00



2. 부산 시립 어린이 미술관


부산 시립 어린이 미술관처음에는 부산 유일의 동물원이라는 삼정 더파크에 갈 계획이었다. 어린 시절 자주 갔던 성지곡 수원지가 폐장했다가 새롭게 문 연 곳이라고 했다. 마침 주민번호에 2018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2018원만 받는 이벤트도 하고 있어서 야심차게 갔는데 웬걸.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너무 추웠다. 겨울에 제일 무서운 건 무엇? 바로 아이가 감기 걸리는 거다. 실내에 갈 만한 곳을 폭풍검색했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부산시립어린이미술관으로 갔다.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1층에 어린이 미술관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었다. 마침 독일 현대 미술가 오트마 회얼’ 전이 열리고 있었다(2019년 2월 2일까지). 

색색의 동물 조각이 아이들의 시선을 잡는다(출처 : 마더티브)


알록달록 닭(출처 : 마더티브)


주차를 하고 입구에 들어서니 알록달록 색색의 동물 조각 작품이 전시돼있었다. 토끼, 닭, 개, 돼지... 친근한 동물들의 모습에 아이 눈이 반짝였다. “엄마, 달기(닭) 보러가자”며 내 손을 잡아끈다. 안내해주시는 분에게 물었더니 쓰다듬는 건 괜찮다고 했다. 아이는 “만지기만 할 거야”하면서 초록색 개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독수리야 까마귀야(출처 : 마더티브)


전시장 모습(출처 : 마더티브)


전시는 세 개의 공간에서 열리고 있었다. 다른 공간에 들어가니 책과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책이나 영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동물 조각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전시장 벽면에는 이솝우화에서 따왔다는 동화 속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나는 왜 지금까지 무조건 날려고만 했을까.
이렇게 걸어서 움직여도 되는데?
머릿속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나서서
그 질문에 대답을 했지.”


라고 적힌 문구를 나는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밖에 나가자 한쪽 공간에 그림을 그리고 놀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종이와 함께 색연필, 사인펜, 가위, 풀 등이 비치돼있어서 아이들은 저마다 작품을 만들어냈다. 

예술세계 펼치는 아드님(출처 : 마더티브)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오트마 회얼은 관객이 단순히 동물 조각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며 새로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저는 개념 미술가이기 때문에 단순히 올빼미나 토끼 모양의 조각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각 조각은 거대한 한 본질의 일부인 거죠. 어린이 여러분, 제 작품을 감상하며 마음껏 생각의 나래를 펼쳐 보세요.” -오트마 회얼


위층에 있는 일반 전시관도 갔는데 아이는 무섭다며 나가자고 했다. 어두운 전시관이 아직은 무섭나 보다. 어린이 미술관만으로도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린이미술관 관람안내
관람시간 :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 부산시립미술관 지하 1층
관람료 : 무료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을 휴관일로 함)



3. 키즈카페


비웃지 마라. 부산 와서도 키즈카페다. 추운데 어떡해ㅠㅠ

중장비 다 내꺼!(출처 : 마더티브)


친정집 근처에 있는 부산 남구 대연동 모넬로 키즈카페를 찾아갔다. 생긴 지 얼마 안 됐는지 깨끗하고 공간도 넓다. 놀거리도 다양하게 많았다. 직원들이 수시로 와서 장난감을 정리했다. 가격은 아이는 2시간에 1만원, 보호자는 3천원. 대신 보호자에게 음료를 서비스로 준다. 

친정엄마와 번갈아가며 아이를 봤다. 커피 마시며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저것은, 바다다! 부산 키즈 카페 클라스오션뷰라고 마더티브 멤버들 단톡방에 올렸더니 다들 환호했다. 

부산 키즈카페 클라스(출처 : 마더티브)


흔한 키즈카페라도 바다가 보이니 뭔가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키즈카페 시설은 만족스러웠지만, 집에 갈 때 기계식 주차장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건 불편했다. 기다리느라 지친 아이는 차 버리고 집에 가면 안 되냐고(그럼 집에 어떻게 가ㅠㅠ). 


4. 광안리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운동장에서는 광안리 바다가 보였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다가 너무 답답할 때는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광안리에 가기도 했다. 서울에 살면서 늘 그리운 건 바다였다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었던 바다. 
 

바다 들어가겠다는 아이, 말리는 할아버지(출처 : 마더티브)


어린 시절 늘 함께 했던 그 바다에 이제는 아이가(출처 : 마더티브)


아이는 생애 3번째 겨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부산 겨울바다를 밟아볼 수 있었다. 여름에 해수욕장 갔던 기억 때문인지 양말 벗겠다고 해서 식겁. 모래 놀이해야 하는데 삽이랑 양동이 어딨냐고 난리쳐서 2차 식겁. 추운데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해서 3차 식겁. 
 
부츠를 신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린 시절 늘 함께 했던 그 바다에 이제는 작은 아이가 있다
 


5. 자갈치 시장


자갈치 시장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구경하러 간 건 처음이었다. 먼저 크루즈 선착장에 들렀다. 바다 너머로 커다란 크레인과 화물선이 보였다. 하늘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녔고 땅에는 비둘기가 갈매기보다 더 많았다. 빠방이도 짹짹이도 좋아하는 아이는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 

전형적인 부산의 모습(출처 : 마더티브)


12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자갈치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가 물고기 좋아해서 보러 온 건데 죽은 고기를 보니 기겁한다. 이날 자갈치 시장 명물이라는 꼼장어 구이를 처음으로 먹어봤다. 꼼장어를 야채와 함께 매콤하게 볶아서 내주는 건데 소주랑 먹으니 꿀맛. 

2018년 12월의 마지막 날, 자갈치 시장(출처 : 마더티브)


사장님은 꼼장어 구이를 초벌해서 각 자리에 있는 연탄불에 올려줬다. 아이가 있어서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어른 셋이나 있어서 방어 가능했다. 북적이는 시장을 보니 생동감이 느껴졌다. 

30년 넘게 살면서 엄마 아빠와 시장에서 꼼장어에 소주 먹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애 키우느라 고생 많았다"고 건배를 했고, 엄마는 "계속 고생"이라고 덧붙였다. 부모님과 어느 때보다 찐한 동지애를 나눴던 겨울방학이었다. 다음 해에는 더 많은 곳에 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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