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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14. 2019

죄 없는 자, 곽미향에게 돌을 던져라

 [엄마의 VIDEO] <SKY 캐슬>의 사회학

JTBC 드라마 <SKY 캐슬> 15화 초반. 대놓고 PPL인 어느 죽집에 엄마들이 모여 예서의 내신 만점을 축하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정작 예서는 없다. 예서의 엄마인 한서진(aka. 곽미향)만 있을 뿐이다. 축하인사를 건네는 다른 엄마에게 한서진은 목에 힘을 빡 주고 웃으며 말한다.


“앞으로 더 갈 길이 멀죠. 다들 호시탐탐 제 자리 노리시잖아요.”


자신이 시험을 친 것도 아닌데 한서진은 전교 1등을 자신의 자리라고 여긴다. 전교 1등 엄마가 밥숟가락 뜰 때까지 다른 엄마들은 눈치 보며 기다린다. 아이의 성적은 곧 엄마의 서열, 나아가 가족의 서열이 된다.

이 기이한 풍경을 보며 얼마 전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렸다. 한국 사회의 연애-결혼-출산 문화를 사회구조적으로 들여다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오찬호 지음).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은 이들이 어떻게 '이상한 부모'가 되어가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통해 들여다 보았다. <SKY 캐슬>의 사회학.




내 새끼의 성공이 엄마의 성공


한서진은 예서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이미지 출처 : JTBC)


결국, ‘나쁜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엄마는 모성 가득한 사람이 되어 육아에 전투적으로 매진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해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유달리 집착하는 건 모성의 힘을 강요하는 사회의 끔찍한 결과일 뿐이다. p.86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사회학자 오찬호는 말한다. “단언컨대 모성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남용되는 단어”(p. 75)라고. 결혼한 여성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좋은 엄마’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엄마’가 된다.

나 자신은 사라지고 아이만 남은 삶. 자연스레 엄마는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집착하게 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클리셰는 여기에서 등장한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니 보상심리가 생길 수밖에. 정작 아이가 뭘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 널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한서진을 비롯한 엄마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영재 엄마 이명주는 자식이 서울 의대에 합격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향한 복수심을 이용해도 좋다고 말한다. 한서진은 예서 공부에 방해될까 봐 남편의 혼외자식인 혜나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는가 하면, 우주를 혜나 살인범으로 모는 데 동조하기까지 한다.

한서진의 목적은 오직 하나. ‘예서 서울의대 합격’. 그다음은 없다. 그녀는 예서의 성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사람들 각자의 인생철학이 다를 터인데 어찌 ‘모두의 레이스’가 가능할까? 이유는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부모에게, 특히 자녀 교육을 책임지는 여성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중략... 엄마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를 거부하다가는 ‘모성애조차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별 수 없다. 그러니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엄마답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워 이들은 경쟁에 뛰어든다. p.74~75


이수임은 캐슬에서 유일하게 엄마가 아닌 작가라는 정체성을 먼저 내세우는 사람이다. 입시 경쟁에 뛰어들지 않는 이수임은 한서진으로부터 “지 뱃속으로 애도 안 낳아 본 주제”라며 비난받는다. 모성이 있는 엄마라면 당연히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데 이수임이 그러지 않는 것은 그가 친모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우주의 성적이 떨어지자 이수임은 혹 자신의 탓이 아닐까 자책한다.

그런가 하면 ‘줏대 없는’ 진진희는 입시 경쟁에 과감히 뛰어들지도, 그렇다고 자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지도 못한 채 매일 갈등한다. 노승혜는 딸이 가짜 하버드생임이 드러나자 자신의 인생이 빈 껍데기가 된 기분이라고 한다. 아이의 성적표가 곧 엄마의 성적표가 되는 사회. 이 미친 경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엄마는 없다.

물론 자식의 성적에 사활을 거는 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엄마에게 있다. 그게 엄마의 일이니까. 강준상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손녀의 성적을 관리한다. 아빠들에게 자녀의 성적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라면, 엄마들에게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다.




자식으로 인생 역전


지금까지는 어딘가 손해 본 듯한 내 인생, 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잘 길렀어요?”라는 부러움의 질문을 받는다면 지금까지의 상실감은 만회되고 나아가 숱한 우여곡절 끝에 내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이 증명된다. 그렇게 9회 말 대역전극을 꿈꾸는 부모들, 이들은 철저히 ‘타인의 시선’에 구속된 육아에 자신을 헌신한다. p.23


모든 엄마들이 자녀 교육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만 한서진은 특히 절박하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시가에서 며느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3대째 의사 가문’이라는 타이틀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예서의 서울의대 합격은 그녀에게 신분 상승의 유일한 수단이다. 도축장 옆에서 선지 팔던 술주정뱅이 딸 ‘곽미향’에서 자식을 보란 듯이 성공시킨 ‘진짜 한서진’이 되는 마지막 관문.

자녀교육 문제를 단순히 엄마들만의 욕심으로 치환하지 않는 것은 <SKY 캐슬>의 성취다. 캐슬에서 자녀 교육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부모는 한서진과 차민혁이다.


한서진도, 차민혁도 '흙수저' 콤플렉스를 자식의 성공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이미지 출처 : JTBC)


2대째 의사 가문인 강준상, 육군 참모총장에 여당 국회의원까지 지낸 아버지를 둔 노승혜와 달리 한서진과 차민혁은 흙수저 출신이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세상은 더욱 잔혹한 정글의 세계다. 두 사람은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상류층에 진입했지만 성골은 될 수 없다.


자본주의의 쓴맛을 아는 부모는 아이를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기르고 싶어 한다. 노골적으로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게 모든 부모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실패하면 끝장이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상황 인식은 같다. p.8


차민혁은 서울대 출신 로스쿨 교수지만 여전히 출신성분이 콤플렉스다. 한서진도, 차민혁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식의 성공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특히 차민혁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자본주의 논리를 자식들에게 내면화하고자 한다. 친구를 짓밟고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가라고.


하지만 세리의 일갈처럼 정작 차민혁도 피라미드 꼭대기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다. 공부로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해졌는가


김주영의 말처럼 서울의대 간다고 해서 성공과 행복이 담보되지 않는다(이미지 출처 : JTBC)


자신을 비난하는 이수임에게 김주영은 이렇게 항변한다.


"자식을 망가뜨리고 가족을 파괴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 부모들입니다. 나도 묻고 싶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의대, 의대 하는지. 서울 의대에 합격하면 성공과 행복이 담보되는지."


김주영의 말처럼 서울의대 간다고 해서 성공과 행복이 담보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김주영의 코디로 서울의대에 합격했지만 결국 가정이 파탄 나고 만 영재네, 본과 1학년 때 자살을 택했다는 또 다른 아이.


강준상의 인생은 과연 성공한 걸까(이미지 출처 : JTBC)


학력고사 1등을 훈장처럼 생각하는 강준상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대만 가면 끝인 줄 알고 공부했지만 그 위에는 또 다른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었다.

강준상은 자신이 서울대가 아닌 주남대 병원에서 일하는 것을 인생의 오점이라 여긴다. 그는 의사가 가져야 할 윤리의식은 개나 줘버린 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잉진료를 일삼는다. 자신의 심복인 의사조차 그의 수술 실력을 믿지 못한다. 사랑 없는 결혼, 아빠를 증오하는 두 딸. 그는 과연 성공한 걸까.

캐슬에 살고 있는 이들은 공부로 올라갈 수 있는 정점인 의사,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산층일 뿐 재벌만큼 압도적인 부를 가진 것도 핵심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수밖에.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진다. 바로 자식농사.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성공시켜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는 것이 가족 전체의 목표이자 꿈이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현실을 직시하라고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따져봐야 할 현실은 ‘그렇게 했는데 도대체 어떤 세상’이 등장했냐는 거다. 모두가 비싼 전화기를 손에 들고 있으니 행복한 사회인 것일까? 삶이 전투가 된 세상에서 우리는 전쟁이 없는 사회를 희망하지 않고 더 강력한 무기로 무장했다. 그 결과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비열한 경쟁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p.282~283


혜나의 죽음으로 촉발된 캐슬의 지옥도를 떠올려 보라. 그렇게 자녀 성공에 목매던 부모들은 행복해졌는가.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성적과 경쟁밖에 모르는 바보(예서)가 되거나, 공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도둑질을 한다(예빈). 심지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거짓말을 넘어선 사기극도 서슴지 않는다(세리). 오직 공부와 성공만 강요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병들어 간다.


하지만 “죽도록 노력해야 겨우 평범해지는 세상”(p.88)에서 다른 선택지를 찾기란 요원하다. 무한경쟁, 과잉교육 사회에서 자녀 문제에 쿨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다. 서울의대 가면 성공과 행복의 담보되냐고? 그조차도 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설령 그것이 빈껍데기일 뿐이라도 다른 성공과 행복의 방식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바로 거기에 사회의 비극이 있다.

책에서 오찬호는 고백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자신도 이러한 경쟁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자신도 다른 부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그럼에도 그는 용기 내어 말한다. “현실을 ‘버틸’ 아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버티지 않고도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p.283)이라고, 그것이 "사람의 육아"라고. 참 쉽지 않지만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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