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홀로 해변을 걸으며 태평양을 만났고 오늘은 남편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라 태평양과 만났다.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의 삶을 살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내가 떠나온 곳이 무시로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의 기일이나 아이들의 생일, 친구들이 대소사를 알려올 때 더욱 그렇다.
저녁식사 때 엄마와 아버지 얘기를 오랫동안 했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간혹 술을 드시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자식들을 모두 불러 앉히고 긴 말씀을 하셨다. 큰언니보다 10살이나 어렸던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고 평소와는 다른 어조와 표정이 무섭기만 했다.
두려움에서 나를 구해주는 이는 엄마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엄마의 말씀에 순종하는 분이었고 엄마는 취기의 아버지를 바로 잠들게 할 수 있는 분이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마을 어귀에 걸어오시면 나는 아이들과 놀던 일을 즉시 멈추고 엄마를 찾아 동네를 뛰어다녔다. 아버지가 엄마보다 20년 먼저 세상을 떠나시면서 하신 유언이 '네 엄마 잘 모셔라!'였다.
멕시코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은 아즈텍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망자의 날'은 바로 그런 날이고 그래서 이날은 기쁜 날이었다.
나는 태평양을 마주하면서 아즈텍 사람들같이 생각했다. 엔세나다 지평선으로 가려진 태평양 너머의 그리운 사람들과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해변에서, 그리고 뒷산에서 모두 만났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나기
20231102
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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