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하얀 공포
유목, 그 혹독함에 대하여
INTO THE WEST_17 | 조드, 하얀 공포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몽골 테를지 국립 공원 내의 미라지 리조트 캠프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갈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이르쿠츠크까지 약 870km를 가야 합니다.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므로 이틀로 나누었습니다. 첫날의 목적지는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의 울란우데였습니다.
러시아국경(몽골 북부의 알탄불라크(Altanbulag)와 러시아 부랴트의 캬흐타 국경)을 넘어야 했으므로 전날 저녁, 의료인을 캠프로 불러서 PCR테스트를 했습니다. 결과지는 다음날 울란바토르에서 받기로 했습니다.
6월 1일부터 몽골로 입국 시 관광목적으로 몽골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최대 90일까지 비자가 면제되는 혜택을 입고 몽골로 입국했었고 PCR테스트 또한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대원 30명, 크루 6명(여행사 대표 1명, 운전기사 2명, 가이드 2명, 러시아 통역 1명)의 한 명이라도 PCR검사의 양성이 나오면 여정에 차질이 불가피했으므로 울란바트로에서 결과지를 받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새벽 5시에 캠프를 떠났습니다. 울란바트로의 러시아워를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울란바토르에서 알탄불라크까지 4차선 확장공사로 인해 곳곳의 비포장을 통과하는 시간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현재 21개 아이막(우리나라 '도')이 모두 포장도로로 연결된 상태입니다. 다행히 PCR검사는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의 편의점과 커피숍은 거의 한국기업이 점유한 상태였습니다. 4년 전 몽골에 진출한 씨유(CU)가 최근 200호점을 넘겨 70%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2021년 GS25가 진출해 몽골의 유통체인을 한국계가 장악한 상태입니다.
커피전문점도 2014년에 몽골 1호점을 낸 탐앤탐스와 2015년에 1호점을 낸 카페베네가 몽골인의 음료 소비습관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몇 년 안에 몽골의 골목상권은 완전히 사라지지 싶습니다. 음료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으로 몽골은 차를 마시는 문화였습니다. 손님의 접대나 식사 전후 모두 우유에 찻잎을 넣어 끊인 수태차가 늘 함께했죠. 하지만 지금은 식후에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심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흔해지고 있습니다."
몽골에서 20년 사업을 하신 미라지 캠프 장철호 대표님의 예측이었습니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인 도로 주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과 말과 염소와 소. 몽골 인구 330만 명에 사육하는 가축이 6천7백만두에 달하니 단연코 초원의 주인은 그들입니다. 문득 이 가축들의 겨울나기가 궁금했습니다. 수많은 가축들은 무엇을 먹고 추위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장 대표님께 물었습니다.
"견디는 겁니다. 이렇게 많은 가축들에게 겨울용 건초를 분비하거나 곡물사료를 준비할 수가 없죠. 눈을 헤집고 풀의 뿌리를 먹으면서 각자 살아남아야 하고 추위는 서로 모여서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한겨울보다 봄이 무습니다. 극한까지 참으며 봄을 기다리던 야윈 가축들이 봄이 임박한 시점의 허기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몽골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조드'입니다."
조드는 겨울 한파로 가축들이 몰살하는 재앙을 말합니다. 11년에 한 번의 주기로 찾아온답니다. 차강 조드(цагаан зуд, 하얀 조드)와 하르 조드(хар зуд, 검은 조드)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하얀 조드'는 폭설이 동반된 경우이고 '검은 조드'는 건조해져서 물이 없어진 상황입니다. 조드가 오면 800만 마리에서 1천만 마리 이상이 죽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봄에 닥칩니다. 겨울에 얼었던 사체들이 기온이 올라 일제히 섞기 시작하면 온 초원이 사체가 썩는 냄새로 뒤덮이고 전염병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조드의 공포가 초원을 뒤덮은 상상을 계속하고 있을 때 장대표님이 말했습니다.
"몽골에서 지식인의 기준은 다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인의 기준이라면 몽골에서는 얼마나 많은 세상을 보았느냐가 기준이 되지요."
육로로 국경을 통과하는데 가장 큰 장애는 기다림입니다. 차량 한 대를 수색하고 통관하는데 만만찮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간혹 3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는 국경에서의 시간을 우리는 3시간 만에 통과할 수 있었고 밤이 너무 깊지 않은 시간에 울란우데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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