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말총의 영기 일상이 전쟁이다.
"바이칼이잖아요. 바이칼이 제 눈앞에 있잖아요."
INTO THE WEST_18 | 검은 말총의 영기, 일상이 전쟁이다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몽골국경 알탄볼라그(Altanbulag)에서 두 나라의 두 겹 철책 너머로 보이는 캬흐타의 성당지붕(Воскресенская церковь 부활의 교회). 캬흐타는 몽골과 대극의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서도 여전히 몽골이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그 사람의 정서도...
1727년 8월 캬흐타에서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맺은 국경 조약에 의해 국경선이 그어지기 전에는 국가권력이 미칠 이유가 없었던 변방이었습니다.
'붉은 우데 강'이라는 뜻을 담은 울란우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텔에서 달라이라마가 모셔진 모습은 여전히 몽골문화 속에 있는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몽골의 국교, 라마교의 달라이 라마께서는 비폭력, 평화, 평등의 상징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먼 길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잔뜩 주눅이 든 마음에 구루와의 대면은 큰 위로였습니다.
이르쿠츠크까지 450km를 가야 하는 일정에 서둘러 호텔을 떠났습니다. 울란우데를 벗어나기 전 막 문을 연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씩으로 운무 속 아침을 깨웠습니다.
입구에 말총을 묶은 세 개의 영기 (令旗)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장철호 대표님께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일종의 신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마가 죽으면 언덕에 묻는 몽골의 천마사상이 있어요. 그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연결의 희원을 담은 거죠. 하늘과 땅의 연결이에요. 말총의 색깔로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고도 하는데 검은색 말총의 경우는 전쟁을, 흰색 말총의 경우는 평화를 상징한다고 해요."
검은색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현 상황을 반영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 영기는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백마의 말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매일의 일상이 전쟁이라는 깨우침을 담았을 지도... 버스정류소에 서서 버스가 당도하기를 기다린 한무리의 주민들이 하루치의 분투를 위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검은 연기를 내 품으며 시내로 향하는 버스가 전차처럼 보였습니다.
도중의 주유와 식사를 위해 정차하는 시간을 합해 9시간쯤을 달려야 하는 이르쿠츠크까지 길의 2/3 이상이 셀렝가강변과 바이칼호수의 남쪽 강변을 달리는 길입니다. 자작나무 숲과 강과 호수를 달리는 내 인생의 시닉로드(Scenic route)는 우중의 안개에 가려버렸습니다. 어젯밤 모든 것을 가지려고 했던 나의 욕심을 탓했습니다. 시계 무한대의 청명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자 비로소 유역 길이 1024 km을 흘러 바이칼호로 가는 셀렝가강의 인도와 그가 때때로 굽이치며 내는 소리가 가슴을 타고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던 셀렝게강이 호수에 인접해서 방향을 바꾸어 수십 갈래로 흩어져 땅을 적시는 동안 우리는 직진을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자작나무 사이로 바이칼 호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함성을 질렀습니다.
참았던 숨을 내쉰 것처럼 허기가 느껴졌습니다. 길가의 외딴 식당에 차를 세웠습니다. 대원중 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대신 의자 위의 가방을 겨안고 흐느꼈습니다.
나는 그녀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나는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그녀의 울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식사가 막 끝나고 그녀가 온전한 표정으로 되돌아왔을 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럽게 흐느꼈나요?"
"바이칼이잖아요. 바이칼이 제 눈앞에 있잖아요."
그녀는 제일 먼저 이 원정대의 소식을 접했던 사람이었고 제일 늦게 완주를 결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이 여정을 위한 마지막 워크숍에서 그녀의 완주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에게 물었었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합류하셨나요?"
"우리 가족 모두의 잔고를 탈탈 털어야 가능한 경비라서요."
"돌아오면 현실이 될 빈 통장이 두려웠던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2년을 망설였던 거고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떠나지 않으면 평생 후회될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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