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한 바위를 닮은 남자
극복할 수 없는 두 여성, 어머니와 아내
INTO THE WEST_19 | 부르한 바위를 닮은 남자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바이칼 호수의 수면은 해발 456m입니다. 서울 남산의 정상은 해발 265m입니다. 남산보다 높은 초승달 모양의 바이칼호의 남쪽 200여 km를 달리는 동안 바이칼이 낳은 문학과 영화를 얘기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소환되고 이광수의 '유정'이 언급되었습니다.
몽골 테를지국립공원에서 러시아 이르쿠츠크까지 937km의 이동과 3박 4일간의 숙식을 책임진 미라지캠프의 장철호 대표님과 함께하는 동안 14년 전 밤낮으로 서성 됐던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 후지르 마을 뒤의 부르한 바위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20년째 홀로 몽골과 러시아를 100번도 넘게 오가며 유목민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좀처럼 말을 아끼던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때 이만기 선수와 같은 길을 가던 씨름선수였습니다. 4학년 때부터 1교시만 끝나면 체육관에서 샅바만 잡았기 때문에 대학 들어갈 때까지 문맹에 가까웠습니다. 단지 어머님의 노력으로 곱셈 정도만 익혔죠. 이만기 씨는 자신의 길을 정말 잘 가신 분이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운동부는 선배들에게 맞는 것이 일과였죠. 고등학교 2학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스킬을 잘못 사용하는 바람에 선생님께서 제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어버렸습니다. 사춘기의 울분이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그 스킬을 선생님께 사용해버린 겁니다. 선생님을 내동댕이친 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몰래 섬으로 도망쳤습니다. 어머님께서 행방이 묘연한 아들을 수소문하다가 찾지 못하자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군 입대를 해야 하니 제발 돌아오라'는... 저는 당시 그 섬의 나이트클럽에서 기도를 보고 있었는데 어머님 친구분과 연락이 닿아 어머님에게로 돌아가게 되었죠. 어머님의 간절한 소원으로 검정고시를 마치고 정원 미달인 대학을 찾아서 겨우 대학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운 좋게 대학의 추천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뒤 몇 개 회사를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아들 장가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어머님의 소원에 따라 38세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아들을 얻자 아들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아내가 친정식구들이 있는 캐나다 이민을 추진하게 되었죠. 저는 사표를 내고 전별금도 받고 송별회까지 끝낸 상태에서 캐나다 이민이 취소된 것입니다. 다시 캐나다 이민을 추진할 생각을 그만두었죠. 다른 건 몰라도 처갓집으로 가서 산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때 몽골이 황금을 캘 수 있는 엘도라도라는 얘기를 듣고 앞뒤 생각 없이 몽골행을 택하게 되었죠.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함께 온 사람이 한국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있는 돈 모두 빌려주면 3일 만에 해결하고 오겠다고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저만 홀로 호텔방에 남게 되었죠. 그는 일주일이 나지도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 2만 불을 가지고 왔는데 그렇게 1만 5천 불은 털리고 5천 불로 몽골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0년 전이었죠. 제 어머님과 집사람과 아들은 지금도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참 좋아보입니다.'라며 각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모습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도 두 분처럼 집사람과 여행을 해보는 것이 소원인데... 집사람은 몽골에 딱 3번 왔었습니다. 첫 번째 왔을 때는 때마침 제가 얼마나 바빴는지 아내 혼자만 숙소에 있다가 돌아갔고 두 번째는 한겨울에 왔었는데 영하 40도에 질려서 다시 몽골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죠. 세 번째가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인데 아들과 함께였죠. 그때 이후로는 오지고 가지고 못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돈은 좀 벌어서 이렇게 미라지 캠프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들의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생일에도 한 번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올가을에 입대한다는데 그때는 한번 가야지요."
많은 사람들은 20년을 각기 다른 나라로 떨어져 살아도 남이 되지 않은 것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동서 집으로 보내고 홀로 미국 미시간의 겨울을 견뎠던 시간이, 13년을 떨어져 산 시간이 절로 장대표님의 홀로의 시간 관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영하 40도의 초원을 견디게 하는 것은 두 여성이라는 것을... 어머니와 아내. 남자는 결코 여성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르쿠츠크에는 밤 8시가 되어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르쿠츠크의 밤은 저물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고향 그리움의 바다, 바이칼
https://blog.naver.com/motif_1/30033452785
●누구나 흠뻑 젖는 날은 있게 마련입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30145114394
●<아내의 시간>
https://blog.naver.com/motif_1/222587036747
#바이칼호 #울란우데 #유라자원 #트랜스유라시아 #뉴휴먼실크로드 #컬피재단 #사색의향기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라시아자동차원정대 #유라시아평화원정대 #국제자동차여행지도사 #CULPPY #여행인문학 #세계시민정신 #마을연대 #향기촌 #모티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