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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의 압도적인 풍경

의족과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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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의 압도적인 풍경

INTO THE WEST_20 | 의족과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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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아내와 나는 이른 아침에 이르쿠츠크의 타이가호텔을 나와 안가라 강변을 걸었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안가라강의 물결은 차고 투명하고 세찼습니다. 이 빛나는 도시의 현재를 있게 한 데카브리스트들(Decembrist)과 그들의 부인들(Decembrist wives)을 생각했습니다. 낡은 체제를 참을 수 없었던 혁명가와 실패한 혁명가들의 고통에 여생을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시베리아 유형을 자처한 그 부인들이 없었다면 시베리아의 유배지가 지금 만발한 라일락의 향기처럼 문화와 예술로 충만한 도시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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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라강 선착장 입구의 공사장 가림막 일러스트가 이 도시 사람들의 일상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깅, 요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 행복의 기준은 세계 어디서나 다르지 않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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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수로 흘러드는 336개의 물길이 있습니다. 나가는 물길은 안가라강이 유일합니다. 안가라 강은 바이칼호에서 북쪽으로 약 1,800km를 흐른 뒤 예니세이강에 합류해 북극해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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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비앙카로 향했습니다. 안가라 강을 70km쯤 거슬러 올라가면 닿는 모래와 자갈이 있는 바이칼 호수의 해변입니다.


산정에 올라 바이칼 호수의 압도적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순종하려면 내 삶의 시간은 어떠해야 할지를 자문했습니다. 바이칼호로 오는 길에 대원들과 함께 리뷰 했던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세 가지 질문'이 지금 이 순간의 의문에 대한 답이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작품 속 왕이 가졌던 세 가지 의문,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도덕적 청결에 대한 번민으로 집을 나와 객사를 택했던 톨스토이는 왕의 은사를 통해 답합니다. '지금'보다 소중한 때는 없으며 '내 곁의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은 없으며 그들과 '선을 나누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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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날(День Росси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1990년 6월 12일 주권을 선언한 독립기념일)’ 공휴일로 이어지는 주말의 리스트 비앙카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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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르쿠츠크로 되돌아오는 숲과 그 언저리에 만들어진 소박한 별장과 텃밭, 다차(Дача)에서 삶의 여백이 읽힙니다.


130지구(130 Kvartal 130-й квартал)에서 저녁을 먹고 젊음으로 가득한 거리를 걸었습니다. 거리공연에 몸을 흔들다가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국의 저녁을 시름없이 즐겼습니다. 홀로였던 여행에서 특별한 밤의 거리는 늘 상념과 함께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를 노동에 방치한 죄책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곁에 아내가 있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옥죄던 마음에서 풀려난 밤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벤치에 앉아 낮이 밤으로 가는 박명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맞은편 바에서 뛰어온 두 남녀가 저희 부부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말했습니다.


"함께 자신을 찍어도 될까요?“


러시아에서 처음 들어보는 능숙한 영어였습니다.


"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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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아내와 나 사이에 앉았고 남자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남자친구인가요?"

"아니요. 제 남동생이에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영어가 유창합니까?"

"저는 영어 선생입니다. 지난 몇 년간 상하이에서 학생들의 영어를 가르쳤죠. 하지만 팬데믹으로 직장을 잃고 귀국했습니다."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인스타그램은 물론, 페이스북과 넷플릭스, 한국의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도 차단되었던데요?"

"하지만 VPN 앱을 깔면 우회해서 접근이 가능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인스타 아이디가 있나요?"

"motif.1 입니다."

"오~ 놀랍습니다. 1만 6천 명이 넘는 팔로워라니... 저도 당신을 팔로우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마 러시아를 벗어나야 당신과 인스타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VPN를 깔 생각이 없어서요."


호랑이 같기도 표범 같기도 한 상상의 동물 바브르(Бабр)가 담비를 물고 있는 동상 앞에서 저를 불러세워 크로키를 해주셨던 거리의 화가도 화구를 챙겨 밤으로 더 기울어진 거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라일락꽃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황홀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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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우리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한 숙녀를 보라고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저 세련된 러시아 미녀들 중의 하명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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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내가 집중한 것은 그녀의 다리였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의 빠른 걸음걸이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 워킹처럼 균형 잡힌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아내가 왜 그녀의 다리에 집중하는지 몰랐습니다.


"의족이잖아요. 오른쪽 무릎을 보세요!"


그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 후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를 불러 세웠더라면 물어야 할 질문들이 허공에 맴돌았습니다.


"당신은 다리를 잃고 찾아온 좌절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오늘처럼 자연스러운 워킹을 위해 재활훈련의 고통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당신의 쇠다리를 드러내는 미니스커트 패션은 당신의 바뀐 정체성에 관한 결과입니까?"

"당신의 다리를 앗아간 사건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Siberian line), 바이칼의 풍경들

https://blog.naver.com/motif_1/220877927274

●두 팔을 주고 행복을 얻다

https://blog.naver.com/motif_1/3014908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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